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 제주4.3, 당신에게 건네는 일흔한 번째의 봄
허영선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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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4월 3일.

한창 꽃이 피어나 아름다울 이 시기에 제주는 아팠다.

부끄럽게도 제주 4.3 사건을 처음 접하게 된 건 TV 예능을 통해서였다.

<알쓸신잡>에서 사건을 처음 다룬 현기영 작가님의 <순이 삼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바로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이유 없는 황망한 죽음과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공포에 얼마간 후유증을 겪었다.

나는 왜 몰랐을까.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등 근대사에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안타까운 일들이 아직도 많이 있고 그들의 아픔이 진행 중이라는 게 마음이 아프다.

제주 4.3 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7년이 넘는 이 기간 동안 제주 주민 중 10%인 3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추정한다.

희생자의 가족까지 더해지면 제주 도민 중에 아픔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그 당시의 제주를 기억하는 책이 나와서 반갑다. 아픈 역사이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기 때문에.

책에는 제주 4.3사 건뿐이 아니라 제주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정뜨르 비행장.

당시의 지역 주민들이 비행장 부지를 ‘정뜨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정뜨르 비행장’으로 불리던 제주 국제공항은 4·3 당시 대규모 양민 학살이 이뤄졌고, 약 500∼800여 명의 양민이 군, 경에 의해 총살돼 비행장과 그 주변에 암매장되었다. 제주에 도착하면 설렘을 주었던 그 장소. 70년 전 피로 물든 곳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한 구덩이에서 완전 유해 261구를 수습했다. 한 구덩이에서만 261구로 대량학살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가족은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을 평생토록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광주 5.18도 그렇고 제주 4.3도 피해자의 증언만 가득하고 그 당시 가해자들은 말이 없다.

그 당시 경찰, 군인 중에 관련된 사람 중 단 한 명도 살아있지 않다고는 생각 안 한다.

그 끔찍한 일에 대하야 조금이라도 사죄하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용서를 빌고 유해발굴이라도 진행될 수 있게 나서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온갖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내야 했던 그들에게 4.3 오늘은 무엇이던가.

"난 폭도였수다." 이 산 저 산 달아나다 보면 어느새 ‘폭도‘가 돼 있었다는 할머니는 생을 떠났고, 남편 얼굴 사진 한 장 남겨놓았어도 혹시나 사상에 걸릴까 봐 다 불에 태웠다는 팔순 여인이 어디 한둘이랴. 오랜 이념의 족쇄에 칭칭 묶여 있던 수많은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온전한 명예 회복은 이뤄진 것일까
- P57

"어떻게 잊을 수 있나요. 4남매와 여섯 손자들한테 전해줘야 할 의무감이 더 나옵니다."

광풍의 섬을 떠나 낯선 땅에서 희망을 피워낸 이들은 이제 후손들이 이 역사를 알았으면 했다. 기억은 엷어지고, 동강나므로. 정신의 유산만은 남겨야겠기에.
4.3 경험자들은 아무도 4.3을 잊지 않았고, 절대 잊을 수 없었다. 언젠가 진실은 드러난다고 믿었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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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세계사 - 교양으로 읽는 1만 년 성의 역사
난젠 & 피카드 지음, 남기철 옮김 / 오브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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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저널리스트 모임인 <난젠 & 피카드>에서 성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모아서 낸 에로틱 세계사.

워낙 내용이 방대하다 보니 인류의 출현과 섹스의 시작부터 시대별로 정리가 잘 되어있다.

철기시대, 로마, 중세 시대, 르네상스 등 시대별로 세계사 공부를 할 때만 해도 성에 대해 시대별로 정리가 되어있는 책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여러모로 흥미로운 내용이 많이 있었다.

 


P.33

이집트인들이 남긴 파피루스에는 피임약에 관한 정보도 적혀있다.

"식물의 점액을 발효시킨 후 악어의 똥을 넣어 섞어서 만든다."

그런데 이렇게 만든 피임약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식물의 점액과 악어의 똥을 섞어 좌약을 만들어 피임약으로 사용했는데, 이것이 질의 수소 이온 농도를 낮춤으로써 정자를 죽게 했다.


이집트인들은 어떻게 악어 똥을 섞어서 피임약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효과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뭔가 세균이 많아서 몸에는 안 좋았을 것 같다.

마조히즘부터 마스터베이션, 트랜스젠더 등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꾸준하게 등장하는 건 오르가슴이었다.

로마의 오르가슴 교과서나 수녀회 원장의 오르가슴, 영화 역사상 최초로 오르가슴을 연기한 배우.

수천 년 동안 여러 오르가슴에 대한 내용이 있는 걸로 보아 오르가슴이 얼마나 성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모아놓고 보니 이렇게 흥미롭고 재밌는 소재가 없는데 왜 이런 책이 이제서야 나왔을까 싶고, 우리나라의 성에 대해 나와있는 책도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아무래도 독일에서 만든 책이다 보니 유럽 위주의 내용이어서 세계사라고 하기에는 조금 아쉽지만

한국어판 후기에서 아시아나 한국 성에 대해 궁금해하며 관심을 갖는 걸 보니 언젠가는 이 책에 실리지 않은 다른 나라성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담긴 책이 또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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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인자에게
아스트리드 홀레이더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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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홀레이더르

가부장적인 문화가 지배적이던 1965년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알코올중독자에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를 꼭 닮은 오빠로 인해 위태로운 삶을 살았다.

가정폭력, 여성차별, 각종 범죄 등 불우한 환경을 딛고 변호사로 성장한 그녀는 치밀한 준비 끝에 네덜란드 최악의 범죄자이자, 다수의 살인을 교사한 친오빠 빌럼 홀레이더르를 법정에 세운다

<나의 살인자에게>는 그녀가 폭력과 범죄로 얼룩졌던 성장기의 상처를 안고 변호사가 되기까지 강인한 삶의 의지를 전하는 동시에, 주도면밀한 준비 끝에 변호인이 아닌 증인으로 법정에 서서 친오빠를 단죄하는 고통스러운 심정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빌럼은 교도소 안에서 아스트리드의 살해를 지시했다.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고 살해 위협을 피해 숨어서 살아가고 있다.


책날개에 적혀있는 지은이 소개를 읽고 소름 끼쳤던 적은 처음이었다.

<나의 살인자에게>라는 제목과 어린 동생을 목마 태운 오빠의 사진이 정말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실화였다고 생각하니 사진 속 어린 소년의 눈빛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살인자의 가족 입장에서는 본 적이 없었다.

불행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 아버지에게 벗어나지 못하고 쩔쩔매는 어머니.

어머니가 아이들에 해줄 수 있는 건 아버지가 아이들을 때릴 때 몸으로 막아 대신 맞아주는 것뿐이었다.

아버지만 없었다면 그럭저럭 웃음도 나고 행복했었는데, 안타깝게도 사 남매 중 빔은 커가면서 점점 아버지를 닮아갔다.

가정폭력에서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던 오빠는 오히려 아버지보다 더 폭력적이고 잔인한 사이코패스가 되어버렸다.

빔은 1983년 네덜란드의 유명한 맥주회사 하이네켄의 사장을 납치하기에 이른다.

하이네켄 사장이 납치되었던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미 <미스터 하이네켄>이라는 영화도 나와있었다.

몸값으로 600억을 요구하고 그 외에도 살인과 나쁜 짓을 일삼는다.

가족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다. 여동생 소냐의 남편도 죽이고 희생만 했던 어머니에게도 폭언을 퍼붓는다.

가족 중 공부를 잘했던 저자 아스트리드는 변호사가 되었지만 변호사가 아닌 증인으로 친 오빠를 법정에 세워 그동안 모아두었던 증거로 감옥에 보내고, 빔은 감옥 안에서 동생들 살해를 청부한다.

아무리 살인자라고 해도 가족은 가족. 위험하게 증거를 모아가면서 마음속으로 괴로워하는 아스트리드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빔이 감옥에 들어갔어도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몰라 아직도 숨어서 살아야 하는 살인자의 가족.

읽는 내내 숨이 막히고 영화보다 끔찍한 이 소설이 실화라는 것에 마음이 무겁다.

아스트리드와 그의 가족들이 마음 편하게 웃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빔 오빠, 내가 왜 오빠에게 이런 일을 했는지 궁금하다면, 이게 내 답이야.

코르를 위해서, 소냐 언니를 위해서, 리히를 위해서, 프란시스를 위해서, 오빠 때문에 아빠를 잃은 모든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그 고통에서 구해주고 싶은 모든 아이를 위해서.

이제 살인을 멈출 때야.

우리 언니와 산드라, 나는 오빠를 상대로 증언을 했고 우리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

오빠도 알고, 우리도 알아, 오빠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 목숨을 빼앗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그런 확실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오빠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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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 오늘 하루는 어땠어?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고주영 옮김 / 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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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보노보노를 보면 눈이 간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라는 책을 읽고 <보노보노> 만화책이 읽고 싶어졌다.

30년이 넘게 장수 연재를 하고 있는 터라 권수는 30권까지 나와있었다.

1권부터 한 권씩 모아서 보면 되지만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부담스럽기도 했다.

사야지 사야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던 중 지금까지 나온 에피소드 중에서 제일 사랑받는 에피소드를 모아놓은 책이 나왔다.

 

 

좋아하는 것과 취미의 다른 점은 어떤 걸까? 평소라면 생각하지 않았을 것들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만든다.

 

이 에피소드를 보고 포로리는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노을 감상은 취미지만 노을을 보면 잠이 잘 오는 건 숙면법이라니! 명쾌하다.

보노보노에게 고민이나 생각할 거리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이야기를 나누는 건 포로리 인것같다.

때로는 엉뚱한 질문을 해도 자기의 생각을 차근차근 말해주는 포로리.

 

작가의 말에 쓰여있듯이 보노보노와 친구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모여있다.

때로는 바보 같기도 하고 때로는 뭉클해서 나를 웃게 하기도 가슴이 찡하기도 한 날들.

보노보노와 포로리 너부리말고도 숲속 마을의 여러 친구들이 많이 등장해줘서 더 좋았다.

마을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하니 갑자기 응가 강아지가 생각이 난다.

어렸을 때 보노보노 애니메이션을 많이 봤었는데, 보노보노가 지나갈 때마다 길에서 응가를 하고 있었던 귀여운 강아지가 있었다ㅎㅎ

응가 강아지, 동굴 아저씨, 홰내기등 보노보노에게도 친구들이지만 어린 시절 나에게도 친구였던 마음 따뜻하고 개성 넘치는 동물들이 생각나면서 보는 내내 예전 생각이 많이 났다.

원래 책 속에는 더 많은 것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렌다.

내가 지금보다 더 어른이 되고 할머니가 되어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을 보노보노.

책 마지막에 "다들 즐겁게 읽었으려나?"라는 그림이 있다.

아쉽게도 작가님이 내 글을 볼 수는 없겠지만 이곳에 대답을 해본다.

" 읽는 내내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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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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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베어 타운> 그 후의 이야기.

베어 타운을 읽지 않았더라도 <우리와 당신들>을 읽는 데는 문제가 없다.

이 내용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하지만 우리와 당신들을 읽는다면 저절로 베어 타운을 집어 들 수밖에 없다.

그저 시골 마을 하키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었던 베어 타운에서 인간들의 민낯을 만나게 되고,

우리와 당신들에서도 마을 인물 하나하나에 다가가며 선과 악에 대하여 다시 곱씹어 보게 된다.

지역 특성상 폐쇄된 느낌이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요즘 뉴스에서 보게 된 내용과 다르지 않아서

사실 읽기가 힘들었다.

제일 좋았던 부분은 마야와 아나에게 벤 이 알려준 섬 아지트에서 지낼 때이다.

현실을 잠시 미뤄두고 기타 치며 수영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베어 타운이 성폭행당한 소녀로 인한 마을의 이야기라면 우리와 당신들은 성소수자로 인한 이야기다.

여전히 피해자는 고통받고, 깨끗해야 할 스포츠는 정치가 개입되면서 여러 더러운 얼룩이 묻어난다.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가 된 아이들의 앞날이 걱정 없이 행복한 날이 되기를.

P.581

잠시 후에 둘은 각자의 길로 간다. 친구도 아니고 적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각자의 길로 간다.

P. 616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쓰레기를 벗겨내고 애초에 그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들만 남기면 단순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다들 스틱 하나씩 들고. 골문 두 개를 두고. 두 팀으로 나눠서.

우리 대 당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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