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1인용 식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1인용 식탁
윤고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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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땐, 즐거운 상상을 하곤 한다. 상상한다고 돈 드는 것도 아니니까, 혼자 상상하고 혼자 키득거리다 보면 큰 현실의 무거움도 조금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런 위안을 주는 상상이 어떤 실재를 만나면 현실을 지탱해주는 삶의 희망까지도 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컨대 직장을 다니면서도 아이슬란드를 가길 바라는 이 책 속의 여자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삶의 희망을 넘어서 집착이 되고, 오로지 그 집착만이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집착이 어긋났을 때 심지어는 누군가를 죽이는 일도 있을지 모른다. 이 소설집에서는 그런 내용을 차례로 모두 모아놓은 듯했다.

예전에 처음 취직을 했을 때 혼자 점심을 먹어야 했었다. 작은 사무실에 사장과 나 둘뿐인데, 사장은 자주 외근을 나가 점심은 언제나 나 혼자였다. 그래서 그때 식당은 엄두도 못 내고 컵라면으로 몇 주일을 지탱했었던 일이 있었다. 다행히 근처 사무실의 언니가 그런 나를 안쓰럽게 여겨, 그다음부터는 같이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만약 그때 그 언니의 손길이 없었다면 나는 계속 컵라면만 먹었을지도 모른다. 뭐 아무튼 그런 나이기에 이 소설집의 <1인용 식탁>처럼 혼자서 식당에 들어가는 것을 배우는 학원은 조금 관심이 갔다.

총 아홉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은 특이했다. 혼자서 식당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원이 있는가 하면, 꿈을 파는 사람, 돈만 아는 모든 게 기계로 움직이는 모텔 등 현실에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읽으며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 어느 정도 집착의 모습이 보인 거 같았다. 어느 날 이유없이 점심때 혼자 남은 오인용. 혼자 식당으로 갈 수 없어 찾아야 했던 학원. 그 학원에 다니면서 동료와 다시 같이 점심을 먹지만, 결국 혼자서 먹는 식탁의 편안함에 빠져 다시 혼자서 식사를 하게 되는 <1인용 식탁>, 여기서는 1인용 식탁에 대한 집착이 엿보이는 듯하다.

일을 그만두고 모처럼 휴가를 맞은 남자는 여행을 계획하지만, 우연히 들은 빈대에 집착하며 여행 내내 빈대에 대한 불안과 불편함을 느낀다. 집에 와서도 그 불편함은 가시지 않는다. 오히려 빈대를 온몸에 붙이는 숙주가 되어서야 편안함을 느낀다. 빈대에 집착하는 남자를 볼수록 나의 온몸은 간지러웠다.<달콤한 휴가>, 그리고 꿈을 파는 남자가 꿈을 잃고 꿈에 집착하는 <박현몽 꿈 철학관>, 어느 인터넷에서 나에게 맞는 나라를 재미로 본 뒤 그 결과가 아이슬란드로 나와 아이슬란드를 꿈꾸며 현실을 등에 지고 살아가는 <아이슬란드>, 드센 아내와 이혼하고 새로 사귄 여자친구의 피어싱에 자신도 중독되어 결국 살인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짓까지 저지르고만 <피어싱>, 유기농을 집착하는 엄마, 정작 딸은 불량 식품을 사먹으며 엄마와 총각 선생을 연결하려고 하지만 잘 안 되고, 막상 엄마가 남자를 데리고 오니 불편함을 느끼는 딸 홍도의 이야기<홍도야 울지 마라> 까지. 어느 정도 조금은 집착의 느낌은 있었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모두 현실을 이겨내는 하나의 장치일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이 없는 세상은 너무 삭막할지도 모르니까.(물론 피어싱에서의 살인은 빼고)

윤고은의 작품은 이번이 두 번째다. <무중력 증후군>에서도 어떤 특이한 스토리를 기대했고, 여기서도 내용상 좀 더 특이한 상황들을 기대했지만, 언제나 현실이라는 걸림돌은 소설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나를 압박했다. 빈대를 마주하고서야 진정으로 편안함을 느낀 소설 속 남자처럼 우리 현실도 현실을 마주하고 나서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닐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책을 펼쳤고, 글의 집착이 조금 조바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뭐 대체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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