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읽었던 <보트>(남 레, 에이지21, 2009)도 난민의 이야기가 있었다. 난민이라는 지구 상에는 존재하지만,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그들의 삶을 <보트>에 이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는 아프리카 난민이다. 어린 여자아이. 석유전쟁으로 말미암아 한 마을을 초토화되었고 그곳으로의 목숨을 건 탈출을 했던 리틀 비. 그 때문에 영국에서 난민으로 불법체류자로 머물러야 했던 그녀. <보트>에서 짧은 이야기에도 마음이 아팠는데 이제 이 긴 이야기는 읽는 내내 내 마음을 아프게 후려 팠다. 영국에서의 잡지 편집장을 하고 있던 새라. 칼럼니스트인 남편 앤드루. 앤드루는 잘난 체함으로써 새라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일쑤였고, 새라는 앤드루에게 점점 소원해졌다. 취재차 들렀던 내무부에서 로렌스를 만난 새라는 그와 불륜의 관계가 된다. 안전할 리 없던 그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부부의 정을 돋우기 위해 휴가차 갔던 나이지리아. 거기서 그 부부는 리틀 비를 만났고, 리틀 비를 통해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들 부부는 나이지리아에서의 일 때문에 조금씩 파괴되어가고 있었고 나이지리아 휴가사건으로부터 2년 후 리틀 비가 다시 나타나고 또 다른 일이 벌어진다. 1파운드가 되고 싶었고 늘 자살할 방법을 먼저 생각하는 리틀 비.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새라 부부를 만나고 겨우 목숨을 건졌다. 2년 동안 영국의 수용소에서 지냈던 그녀는 불법체류자라는 이름으로 새라의 집으로 간다. 그녀가 아는 영국은 그곳뿐이었기에. 어렵게 간 그곳에서 새라는 그녀를 맞이하지만 리틀 비는 언제나 불안하다. 마을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그녀를 끝까지 쫓아왔던 그들이 언제 어디서 쫓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어느 장소에 가든 자살부터 생각했다. 그리고 뜻밖의 사건으로 다시 아프리카로 가고 만다. 인생에서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그런 만남. 나는 가져본 적이 없는 듯하다. 나이지리아 해변에서 가족과 살던 리틀 비와 나이지리아 해변으로 휴가를 온 새라. 전혀 달랐던 두 여인의 만남은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 그들의 삶에도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만나야 될 사람이 만난 것이고 두 사람도 꼭 만날 사람이었다면 두 사람의 인생에서 두 사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두 사람의 조화, 흑과 백의 조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에는 새라의 아이 찰리와 나이지리아의 아이들이 같이 노는 모습이 나온다. 그 모습은 흑과 백의 조화. 같은 사람끼리의 어울림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 소설은 나이지리아에서의 목숨 건 탈출을 했던 리틀 비가 난민이 되어만 했던 그 상황들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며 또 그 도망쳐야만 했던 난민들을 불법체류자로 만들고 다시 그들의 나라로 돌려보내야만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고발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흉터의 의미는 '생존'이고 그래서 아름답다고 했던 어린 리틀 비의 말이 마음속 깊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