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가끔 그런 때가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아는 누군가가 뜬금없이 떠오른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그 사람이 떠올라 그 사람 뭐 하고 있을까 싶은 생각에 멍하게 있을 때가 있다. 이 책이 나에겐 그랬다. 처음 책을 다 읽고 나서 떠오르는 누군가 때문에 한동안 멍하니 있어야만 했고, 그렇게 쉬운 책은 아니지만 난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어야만 했다. 왜 그 사람이 떠올랐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구스티나를 다 안다는 듯한 말투와 언제나 너를 생각해라는 말과 이름을 자주 불러주는 것 등. 미다스의 작은 행동과 말투에서 그 사람이 떠올랐음을 짐작하며 이래서 소설은 재미있다고 입술을 찡긋 올리며 웃어버린다.

광기. 미친 듯이 날뛰는 기질을 속되게 이르는 말, 사전적이 의미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병원에서였다. 제법 큰 병원이었기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그들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왔을 것이다. 저마다 아픔을 가진 채. 이 사람들은 병원에서 아픔을 치료할 수 있었을까.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었으면 다행이었겠지만 그 아픔이 감당할 수 없는 아픔으로 돌아설 때는 어떻게 될까. 마음속에 있던 광기가 살아나서 그 기억들을 지워줄까. 그 기억을 치료해줄까. 병원 한 커피숍에서 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광기에 사로잡힌 아구스티나가 등장한다. 그녀의 남편 아길라르가 나흘간의 짧은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을 뿐인데 그 나흘 동안 그녀가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며 책을 읽어내려가야만 했다. 그랬기에 책을 읽는 속도는 빨랐지만 익숙하지 않은 지문 때문에 조금 한눈을 팔면 다시 돌아와 읽어야만 했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 따옴표가 없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때처럼 황당했다. 그뿐 아니라 이 책은 1인칭과 3인칭을 아무 예고 없이 왔다갔다한다. 따옴표도 없고 갑자기 바뀌는 인칭과 이야기의 주체를 바로 알아야 하는 이 책은 내겐 쉽지 않은 책이었다. 그렇지만, 그 내용은 하나라도 놓치기 싫어 하나하나 제대로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아구스티나가 왜 미쳐야 했는지 서서히 그 전모가 밝혀진다. 폭군이었던 아버지, 미모의 엄마 에우헤니아, 아버지를 닮은 오빠, 아구스티나의 잘생긴 동생 비치 그리고 아구스티나. 이 단란한 가족은 겉으로는 집을 3채나 가진 엄청난 부자이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뭔가 정상적이지 않는 구석이 몇 개 있다. 여자 같다며 비치를 괴롭히는 아버지, 자기가 꿈꾸는 이상을 갖다 붙이기 바쁜 그럼으로써 모든 부정을 모른 채 고개 돌리는 엄마, 동생 남편과의 불안전한 관계를 맺었던 에우헤니아의 언니 소피아, 동생을 사랑하면서도 광적으로 아버지를 따르던 아구스티나. 비치를 괴롭히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밖에 없었던 아구스티나.

그리고 아구스티나의 옛 애인이며 부자를 동경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았지만,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던 미다스. 그리고 음악가이지만 늙어서는 정신에 이상이 생긴 아구스티나의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누나의 이상한 병까지.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광기를 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은 아길라르의 정성이 통했는지 해피엔딩이다.

저자가 기자였기 때문인지 콜롬비아 부자들의 불법마약 거래와 돈세탁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그렇지만, 나는 "난 인생은 모두 꿈이고 꿈은 꿈일 뿐이라는 구절을 자주 곱씹어보곤 해.(379쪽)"라는 미다스의 말이 뇌리에서 계속 맴돈다. 부자가 되고 싶었고 그들의 삶에 한 발짝 다가갔다고 생각했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그에게는 빚과 지명수배자라는 끔찍한 타이틀만 남았다. 여전히 부자들은 미다스가 없어도 또 다른 미다스를 찾아서 똑같은 짓을 하며 돈을 모을 테지만, 돈과 겉모습을 쫓기 바빴던 미다스만이 무너져버려 안타까웠다.(물론 부정적인 방법으로 돈을 긁어모은다는 게 나쁜 방법이며 그것을 편드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로지 돈만을 쫓았기 때문에 돈에 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내가 생각났던 그 사람 때문에 미다스에 좀 더 마음을 줘서 미다스에 대한 안타까움이 클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도 나도 모를 광기가 있을지 궁금해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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