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미초 이야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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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친구 집에 갈 때면 항상 지나게 되는 사진관이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아이의 사진, 누군가의 기념일에 추억을 남겼을 만한 사진이 걸려 있었던 사진관. 가끔 사진을 찍거나 찍은 사진을 현상하기 위해 필름을 들고 갈 때가 있었다. 커튼이 있고 침침한 분위기 때문에 항상 사진관은 들어가기가 조금 내키지 않았던 장소였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어색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여러 가지 자세를 요구하며 분위기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 농담을 던지시던 아저씨.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풍경이 이 책을 읽으며 하나씩 떠오른다. 내가 떠나기 전 그 사진관은 디지털카메라 현상소로 바뀌어 있었는데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처음으로 만나본 아사다 지로의 책은 참 따뜻하다. 이 책은 은행나무가 있는 벤치와 그 속의 이야기들이 가을에 딱 어울리는 책인 거 같다. 날 추운 날 이불 덮어쓰고 읽기엔 딱 좋다. 이불 속의 따뜻함과 책 속의 따뜻함이 전해져 마음속에도 따뜻함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이 책은 소설집이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르지 않다. 그저 시간대가 조금씩 다르지 사진관을 하고 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아들의 눈으로 적은 연작소설집이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총 여덟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은 도쿄에서 사라진 가스미초(안개마을). 그 가스미초에서 사진관을 하시는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의 데릴사위이자 제자인 아버지, 어머니와 이노와 있었다. 이노는 고등학생이고 소설 속에서 '나'로 등장한다. 로터리 쿠페를 끌며 미스티에서 친구들과 여가를 즐긴다.<가스미초 이야기>, 노망든 할아버지의 사진실력을 다시 한번 확인도 하고<푸른 불꽃>, 영어교사 해리와 리사의 사랑을 보고<굿바이 닥터 해리>, 할머니의 못다 핀 사랑 노신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평지꽃>, 학급친구를 사랑하기도 하고 또 잃어버리기도 한다.<해질 녘 터널>, 평지꽃에서 잠시 궁금증만 일으켰던 할머니와 노신사를 둘러싼 집안의 비밀들도 알아가게 되고<유영>, 여름 야쿠자인듯한 대학생과의 우정을 느끼며<여우비>, 할아버지의 마지막 작품을 남기고 떠나는 모습까지<졸업사진> 볼 수 있다. 이 책 한 권의 소설집으로 할아버지의 인생격동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듯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것들을 우리는 잊어버리고 산다. 저 멀리 기억 한 곳에 묻어버린 채. 그러다 이런 소설로 덕분에 가끔 그래 그랬었지, 라며 생각이 나게 되는 것 같다. 잃어버린 추억 한 다발을 찾은 느낌이다. 노란 은행잎으로 싸여 있는 표지그림은 그 그림만으로 따뜻함과 뭔지 잘 모를 향수 같은 것이 흘러나오는데 책을 읽고 나서 표지그림을 다시 보면 할아버지의 그림 속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낀다. 카메라가 자신인 듯 언제나 목에 걸고 다녔던 할아버지,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며 사진이란 이런 것이구나 느끼며 책을 덮었다.
청춘소설, 성장소설은 언제나 나의 옛 기억을 생각나게 해주고 내 인생은 하나이기에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누군가의 젊었던 시절을 이야기해줘서 좋은 것 같다. 나와는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 이런 느낌 계속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