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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박스 세트 - 전2권
이정명 지음 /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총 1권과 2권으로 나누어져 있는 바람의 화원.
그렇다. 내가 게을러서 그렇다.
분명 다른 독자분들은 하루이틀 아님,
늦어도 일주일안에는 완독일터인데.
미안해요.이정명님,신윤복님,김홍도님,정향님 기타등등(응?)
솔직히 제목만 보고는,
뭐야. 화원이 바람에 휘날리는거야? 라면서,
꽃이 마구 휘날리는 상상을 했었더랬지...
푸헤헤. 얕은 지식으로 내 자신을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김홍도와, 신윤복이 나온다.
그런데, 이토록 매력적이어도 되냐는 말이다.
감히 두 천재화가님께 가슴이 콩닥콩닥 떨린다.
물론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지만.
정말 그러할까, 정말 그럴 꺼 같다는,
다빈치코드 보다 더, 믿지않을 자신 있다는,
허구는 허구일 뿐이라는 내 자신만만함을 비웃고
있는 것처럼, 난 그들과 함께인 내내,
가슴 벅찼고, 눈물이란 것도 찔끔 흘려봤다.
실제의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진 자세히 모른다.
역사속의 그들이 그들의 모든 것을 말해 줄 수 없는 것처럼.
과연, 그들은 행복했을까.
제1권
프롤로그
나는 하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한 얼굴에 관한 아주 길고도 비밀스런 이야기를. 가르치려 했으나 가르치지 못한 얼굴,
뛰어넘으려 했으나 결국 뛰어넘지 못했던 얼굴. 쓰다듬고 싶었으나 쓰다듬지 못했던 얼굴, 잊으려 했으나 결코
잊지 못한 얼굴..... 나는 그를 사랑했을까? 아마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니,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도청
홍도_ "그린다는 것은 무엇이냐?"
윤복_ "그린다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림움은 그림이 되고, 그림은 그리움을 부르지요.
문득 얼굴 그림을 보면 그 사람이 그립고, 산 그림을 보면 그 산이 그리운 까닭입니다."
얼굴 없는 초상화
정조_ "사람은 죽고 산천은 변하나 그림은 천 년을 간다. 그림을 아는 그대라면 화원들의 죽음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홍도_ 얼굴이 없는 인물화, 인물을 그리지 않은 인물화.....
누구를 그리려 한 그림일까? 얼굴 없는 초상화 속의 사내는 누구일까?
화원이 되다
윤복_ "모든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리고 싶습니다. 하늘, 구름, 바람, 새, 물.... 그리고 사람들....
웃는 사람과 찡그린 사람과 싸우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 남자들과 어린아이들, 그리고 여인들....."
홍도_ "너는 혼을 담은 그림을 그리는 아이다. 양식을 거부하고, 규율을 무너뜨리며, 마음가는 대로 그리지. 하지만 화원이
되지 못하면 그건 천재가 아닌 미치광이의 그림에 지나지 않아"
영복_ "눈을 감아. 그러면 색이 보일거야"
그림으로 겨루다
정조_ "예술은 머릿속에도, 서안 위에도, 도화서의 낡은 양식에도 있지 않다. 거리의 물 긷는 아낙의 미소에, 봇짐을 진
장사치의 어깨 위에 있다. 그러니 너희는 거리의 화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윤복_ "화원이 그리는 거은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이 아니올지요. 그려진 것은 화원이 본 거이 아니라 화원 자신의
꿈과 욕망과 희노애락일 것입니다."
왕을 그리다
김조년_ "갖고 싶다. 갖고 싶다. 얼마를 들여서라도 저 여인의 가락을 가지고 싶다. 내 앞에서만 가야금을 타고,
나의 앞에서만 웃고, 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여인으로 만들고 싶다."
윤복_ "안개와 서리가 사람에게는 하찮을지 모르나 그림에는 생명이라 할 만큼 중요합니다. 종이가 물을 너무 많이 먹으면
퍼짐이 심하고, 물을 덜 먹으면 발색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홍도_ "널 내 곁에 잡아두는 건 나를 위한 일이지만, 널 이곳에서 떠나보내는 것이 진정 널 위한 일이겠지."
제2권
사화서
홍도_ "천하의 재능을 쓸 데가 없어 이렇게 속된 그림을 그리느냐. 뇌물과 향응이 오가고 오입질이 횡행하는
더러운 풍경을 말이다."
윤복_ "이 장면은 일부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기막힌 그림소재입니다. 어떤 양반이 그림쟁이 앞에서 기생년의 치마를
들추고 샅을 까겠으며, 어떤 양반이 은밀한 향연이 벌어지는 자신의 후원을 그림쟁이에게 내보이겠습니다."
비밀의 그림
홍도_ "빛이 있어 그림자가 있으나 빛은 실체를 왜곡시킬 뿐이다. 형상에 따라 왜곡되는 실체를 어찌 실체라 하겠느냐."
윤복_ "왜곡된 형상 또한 실체의 한 변형입니다. 실체가 없다면 왜곡 또한 일어나지 않겠지요.
그러므로 왜곡된 형상을 좇으면 실체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달빛의 연인
윤복_ "색이 난잡하다는 것이 곧 색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증거입니다. 색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하고
애통하게 하는 스산하게 하지 않는다면, 평상심과 중용의 도를 하늘같이 떠받드는 선비들이 그토록 극렬하게 색의 사용을 금할
이유가 없겠지요"
홍도_ "너의 그림에는 늘 여인들이 등장했고, 여인들은 웃고 울며 슬퍼하고 즐거워했다. 우물가에서 빨래터에서 기방에서
여인들은 거침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삶을 즐겼지. 지금껏 어떤 화인도 그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지는 못했다."
그림의 얼굴
윤복_ "그림으로 글씨를 삼아 뜻을 전하는 방법.... 그런 방법이 있다면 모든 그림은 다른 방식으로 읽히겠군요.
보통사람의 눈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뜻이 숨어 있겠지요."
홍도_ "우린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놈이 모르는 사이에 놈을 일격에 쓰러뜨릴 그런 방법."
김조년_ "이 싸움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할 것이다. 오로지 나의 감식안과 나의 예술적 조예로 이겨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뿐. 걸어온 싸움이니 이기는 수밖에."
마지막 그림 대결
김조년_ "이기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칼을 들고 피를 튀기는 것도 아니고 땀냄새로 얼룩진 몸으로 힘을 겨루는 것도
아니다. 힘의 대결도, 기예의 대결도, 지력의 대결도 따르지 못할 궁극적인 혼과 혼의 싸움이 아니더냐."
윤복_ "인간은 늘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뛰어오르려 하고, 건널 수 없는 강에 몸을 던지려 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을 꿈꾸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그곳에 손이 닿고, 그 강을 건너고, 그것을 가진다면 가슴속에 들끓던 불덩이는 곧 재가 되고 말겠지요?"
홍도_ "그저 아름다운 그림이라면 그리는 화인이 많고, 그저 뛰어난 그림을 그리는 화인은 별처럼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조선을 아껴 후대의 후대에 어떤 천재화인을 내어도 이 같은 걸작을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에필로그
그녀는 바람의 화원이었다. 바람처럼 소리없고, 바람처럼 서늘하며, 바람처럼 자신을 보여주지 않았다. 바람을 찾아 떠나는
그 길을 나는 차마 나설 수 없었다.
평생을 그녀가 남긴 그림을 마주보며 나는 늙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