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만나 기뻤고, 그들을 더이상 만날 수 없음에 슬픕니다.
어떻게 이 내 마음 속 이야기를 시작해야할까요.
키보드를 느리게 치기 시작한 손가락은 아직도 조금은 떨려옵니다.
정확히 9월 24일 이였습니다.
그리고 12월 4일, 스페셜을 포함한 총 22화로 마지막을 알렸습니다. [바람의 화원]을 알게 된 건 이정명 작가님의 책
이었습니다. 빠른 전개와 탄탄한 스토리, 상상을 뛰어넘는 상상력, 정갈한 느낌, 가슴시림의 또 다른 시림, 그리고
동양화를 이토록 재미있게 가르쳐 준 책은 없었습니다.
[바람의 화원]은 평소 책읽기를 즐기던 저에겐, 처음 책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이영도 작가님의 [드래곤 라자]를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김홍도와 신윤복에 관한 이야기라 길래, 그저 지루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넘김과 동시에 무언가가
가슴팍을 묵직하게 누르는 기분 이였습니다.
그리고 이내 조금 눈물을 흘렸던 거 같습니다.
후에 확인결과 그 묵직함에는 수많은 것들이 담겨있었지요.
그리고 아끼는 책만 포장하는 버릇이 있는 저는, 어느새 책 [바람의 화원]을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의 화원]이 드라마화 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책 속 그 표현법들을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하려
는지, 원작을 망쳐놓는 것은 아닌지, 물론 박신양님과 문근영양은 모두가 인정하는 배우임에 틀림없는데도,
전, 도대체 사극은 처음인 박신양님과 원작과는 생김새부터 다른 문근영양을 데려다, 무얼 찍겠다는 것인지, 전 흥분 반
미심쩍음 반을 가슴에 안고, 9월 24일만을 기다렸습니다.
드라마 시작 전 텔존 게시판에 들어온 것은 당연 [바람의 화원]이 처음 이였습니다. 아직 몇 개 없는 게시물을
보며, 드디어 시작한다며, 짧게 글을 남겼던 것이 기억납니다.
제1화, 첫 방송.
원작을 읽으며, 머릿속에 그렸던 김홍도와 신윤복이 아니었습니다. 드라마 속 김홍도와 신윤복은 그저 박신양님과 문근영양
이었습니다. 조금은 아쉽고, 조금은 실망했던 첫 화였습니다.
하지만 믿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그리고 그들의 연기도 궁금했고, 무엇보다 김홍도와 신윤복을
믿었습니다. 그렇게 2화 3화 4화를 빠짐없이 챙겨보며, 저는 조금씩 달라져가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색안경은 점점
투명하게 변해갔고, 삐딱하게 틀어 앉아 있던 제 자세는 어느 새, 텔레비전 앞 정자세를 하고 있었지요.
그들은 김홍도와 신윤복이었습니다. 설마, 어쩌면, 정말, 그 시대에, 저렇게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이 들만큼,
그들은 김홍도와 신윤복이었습니다.
전 그렇게 [바람의 화원]하는 날에는 약속도 잡지 않았고, 회사 회식도 절대 수, 목은 안된다며 목 박아 두었습니다.
결국 그 시간에는 전화까지 받지 않는 상태까지 이르렀지요. 그 뒤로 그 시간만큼은 아무도 절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이였습니다. 저의 오랜 의문점이 풀린 날.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잠자리에 든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윤복이는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해준 그림을 '그깟' 그림이라 표현했을까. 윤복이가 힘든 건
알겠다만, 왜 굳이 표현을 '그깟'이라 했을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다 죽임을 당한 친아버지,
자신이 그린 그림 때문에 장파형을 당할 뻔 한 스승님, 자신이 그린 그림 때문에 단청소로 간 형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리라는 양아버지. 화원이 되어야만 했고, 어진화사를 수행해야만 했던 윤복. 그림은 자신에게 행복보단 아픔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 뭐가 그리 대단하길래, 왜 그림 때문에 자신의 주변사람들이 상처를 입어야 하는지
윤복이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친아버지를 따라 처음 붓질을 하게 되었을테고, 그림 그리는 재미를 알기도 전에, 양아버지에게서 억압 아닌 억압을
받았을테고, 또 도화서는 빡빡한 틀 안에 가둬놓고, 똑같은 것만 그리라 합니다. 윤복에겐 ‘그깟’ 그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였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다, 정향을 만났습니다. 마음을 준 정인이기 전에, 같은 예인으로써 정향에게서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윤복이의 그림엔 항상 정향이가 있었지요. 그렇게 그린 그림, 모두들 이건 아니라 합니다. 자신의 진심이 아니라
합니다. 잘못된 것이라 합니다. 윤복이는 그림이 조금 미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스승 김홍도를 만나게 됩니다.
든든한 아군을 만난 것처럼 스승 김홍도는 윤복이의 힘이 되어 줍니다. 자신을 믿어주고, 자신의 그림을 믿어주고,
자신의 그림을 인정해주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지요.
그렇게 새로운 그림을 배우며, 점점 그림에 대한 재미를 찾게 되었지 않나 조심스럽게 예측해봅니다.
사춘기소년마냥 일을 치던 윤복이는 어느 순간, 어른이 되어 있습니다. 어진화사를 찢고 도화서에서 내쳐진
윤복이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김조년의 서화서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아무런 도움 없이, 자신이 벌인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 속에는 항상 스승 김홍도가 있었습니다. 다른 길로 빠지지 않게, 붓을 손에서 놓지 않도록.
어느 순간 윤복이는 ‘그깟’ 그림이란 말을 하지 않지요.
그리고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을 보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똑바로 쳐다봅니다.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자신이 여인임을 처음으로 인정해준 스승 김홍도와 함께.
드라마가 마지막을 알리고, 그 다음 드라마 예고편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전 울고 있었습니다.
소매를 길게 내려 얼굴을 감싼 채 말입니다.
정향과 윤복이 헤어질 때 즈음인가요. 정향과 윤복의 아쉬움과 슬픔이 가득한 눈이 교차하고 있을 때
즈음인 거 같습니다. 그때부터 울었던 거 같습니다.
정향과 윤복의 그 마음에 내 마음도 아팠습니다. 서로에게 다시없을 정인이라 말하며, 그들은 진심으로 마음을
통하였지요. 정향이 말했던 것처럼, 예인만이 볼 수 있는 것, 예인만이 들을 수 있는 것, 예인만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을
그들은 서로를 통해 보고, 듣고, 느꼈을테지요. 그래서, 아마 그들의 오늘이 끝이 아닐꺼란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선, 그 어느 땅에 발을 내딛고 있더라도 그들은 보고, 듣고, 느낄테니까요.
처음인 것 같습니다. 드라마 속 배우와 눈이 마주쳤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신윤복과 눈이 마주쳤다는 느낌이 들었을 땐 안타까움에 울었고, 김홍도와 눈이 마주쳤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는,
그 마음이 전해져와 울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너와 그림을 그리며 살겠다는 김홍도와, 더 이상은 스승을 위험에 빠트릴 수 없었던 신윤복의 엇갈린 마음.
서로를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미인도를 만지며 우는 김홍도와, 떠나가는 배 위에서 김홍도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신윤복.
그들은 서로 같은 생각을 했겠지요?
비록 이정명작가님이 쓰신 픽션이라고는 하나, 그것이 살아나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는 것은 논픽션임에
틀림없지요. 이것이 끝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평생 서로를 그리워 하며, 붓을 들고, 소리를 냈을꺼라 생각합니다.
이 수많은 감정들을, 글솜씨없는 제가 어떻게 다 표현할까요.
여러분이 느끼신 그 감정, 그대로 제 감정이라 생각하시면 쉬울 꺼 같습니다.
그렇게 3달여, 전 그들만 생각하며 살았던 거 같습니다.
텔존 게시판님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며, 공유하며, 그렇게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을 기억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이 마지막화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전 지금 기쁘고도 슬픕니다.
그들을 만나 기뻤고, 그들을 더이상 만날 수 없음에 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