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를 읽다
황영미.김시무 지음 / 솔출판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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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올해 초 아카데미 주요상 4관왕에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봉준호 감독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독보적 존재가 됐다. 이런 센세이션을 일으킨 봉준호 감독을 평론가들이 가만 내버려 둘 리가 없다. 먼저 잡는 놈(?)이 임자라고 아카데미 수상 후 이동진 평론가를 필두로 발빠르게 몇 작품이 나왔다. 영화는 즐겨봐도 평론서까지 챙겨 읽을 정도가 아니기도 했고 온갖 미디어에서 봉준호 기생충 봉준호 기생충 하도 떠들어대는 바람에 질리기도 하여 사볼 생각을 안 했다.
그런데 한 달 전쯤인가. 페친 김시무 선생의 타임라인에서 황영미 평론가와 함께 봉준호 감독을 다룬 평론서 『봉준호를 읽다』를 공저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평소 페북에서 김시무 선생의 글을 즐겨 읽던 나는 그 책이 다른 건 몰라도 서술방식이 어렵지 않고 진솔해 읽기에 부담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짐작대로 황영미, 김시무 평론가의 공저 『봉준호를 읽다』는 전공자가 아니어도 술술 읽어내릴 수 있을 만큼 평이한 용어로 써진 평론서였다. 두 저자는 책머리에서 기생충이 거둔 어마무시한 성과에 놀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답을 찾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봉준호 감독이 미국에서 제법 한다 하는 감독도 받기 어렵다는 아카데미상을 어떻게 받을 수 있었는지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과정은 간단하다. 감독론, 작품분석, 심층분석, 기생충의 국제적 현상 등 네 개의 단계를 밟아간다.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이나 평론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봉 감독의 일곱 편 작품에 대해 황영미 김시무 두 평론가가 각자 7개의 평론을 내놓은 ‘2장 개별작품론:두 개의 시선’과 ‘3장 심층분석’에 먼저 눈이 갈 것이다. 꼼꼼히 읽어보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전공자도 아니고 전공할 생각도 없지만 영화를 고급지게 향유하고픈 부류라면 ‘1장 감독론’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다른 감독과 차이나는 봉 감독만의 태깔이 어디서 어떻게 연유하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시나리오나 소설 등 서사문학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 팁이 될 내용이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이건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보일 것이니 꼼꼼히 읽기 바란다.
마지막 ‘4장, 기생충의 국제적 현상’은 영화의 대중성과 예술성을 놓고 고민하는 콘텐츠 제작자 및 관계자들이 참고할 만하다고 본다.
다양한 부류 사람들이 각자 필요에 따라 요긴하게 참고할 수 있는 이 책에서 내가 무척 공감한 것 가운데 하나는 봉 감독이 세상을 보는 시각에 대한 두 평론가의 진단이다.
“봉준호 감독은 <플란다즈의 개>에서부터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순성과 이로 인한 사회의 모순성을 말하고 있다. 모순을 지닌 부족한 인간들이 모여 불러일으키는 오해가 봉준호 감독이 삶과 세상을 보는 시각이다. 진실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진실을 볼 수 없게 만드는 오해나 편견이 영화를 출발시키고 있다. <플란다즈의 개>에서 시끄럽게 짖는 강아지라고 생각해 지하실에 가두었던 강아지는 성대수술을 시킨 강아지였으며… (중략) 이뿐인가. 인간은 모순덩어리며 그런 모순덩어리가 모인 사회 역시 모순덩어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라고 진단을 내리고서 바로 이어 “이런 모순덩어리들이 극적인 위기 상황에서 뭉치면서 하나가 되는 재미가 바로 봉준호 감독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결론에 백퍼 동의한다.
이 책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은 내용 가운데 또 하나를 고른다면 <기생충>의 결말에 대한 해석이다. 두 저자 가운데 아마 김시무 선생이 쓴 거 같은데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계급 간의 차별이 파국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 계급 간 차이의 소멸이 비극적 결말을 초래했다고 생각했다. 감독은 특이하게도 외관상 지하, 반지하 등으로 계급을 나눈 것처럼 보이지만 그 차이를 무화한 것은 다름 아닌 냄새였다. (중략) 기택이 동익을 칼로 찌른 것은 계급 연대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자신을 근세와 동류로 본 것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의 복선은 (인간 감각 가운데 가장 본성적인) 냄새에 있었다는 것이 우리의 해석이다.”
저자의 이러한 해석은 봉감독이 배치시켜 놓은 관계망 안에서 인간 심리의 바닥을 엿본 매우 날카로운 지적으로 보인다. 이런 분석을 한 다음 저자는 영화 <기생충>이 “차이가 있는 계급 간의 공존의 모색과 그 화해의 어려움을 조명하고 있다”고 결론내린다. 그리고 ‘욕망의 주체는 대상을 직접 선망하는 것이 아니라 중개자의 욕망을 모방함으로써 그렇게 한다’는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이라는 이론적 개념을 끌어들여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의 관계가 어떻게 경쟁적 모방관계로 발전하는지, 거기서 나아가 왜 비극적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지를 다룬다. 인간의 욕망을 통해 관계를 조망하고 관계의 파국으로 이르는 과정을 짚어가는 분석은 꽤 흥미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이 책이 지닌 매력을 거론치 않을 수 없다. 이번 독서에서 내가 유념한 것은 두 저자가 책머리에서 던진 질문에 대해 내놓은 답변들이었다. 마지막 답변이 4장의 한 꼭지인 ‘미국아카데미가 <기생충>을 선택한 이유’에서 나온다. 아마 이 꼭지를 쓴 사람은 황영미 평론가로 보이는데, 그는 “몰입감 있는 스토리 전개와 예측을 불허하는 결말처리”라는 답을 내놓는다. 봉 감독이 100여 회의 GV로 쌍코피 흘려가며 오스카캠페인에서 뛴 노력도 무시 못 하겠지만, “이 영화는 기존 장르영화의 관습에 익숙한 미국 관객들에게 매우 신선한 이야기로 다가갔다”는 것이다. 이견 없이 설득되는 답변이었다. 책의 서두 부분에서 봉준호 감독이 스스로 밝힌 내용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1장 감독론에서 인터뷰이로 나온 봉준호는 시나리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게 ‘집중력’이라고 말했다. 모든 장면 모든 사건을 다 끌고갈 수 있는 사건, 집중력을 유지시키며 끝까지 따라오게 하는 이야기! 그것이 아카데미에서 <기생충>을 본 미국 영화관계자들을 감탄케 했던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봉 감독은 인터뷰에서 집중력과 함께 ‘최초충동’이라는 걸 잊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어떤 장르이든 창작을 하는 이라면 이 집중력과 최초충동의 비밀을 알 것이라 본다.
정리하자면 장르 편향적이긴 하나 부조리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봉준호 감독 영화의 성공은 결정적인 집중력과 최초충동 유지, 예측불가 결말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새로운 이야기에 답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크게 새로운 답이 아닌 것은 이 책의 두 저자가 더 깊이 파고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봉준호의 자리가 딱 거기까지 와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책을 읽은 내 소감이다. 일독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었다. 특히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끝으로 봉감독에게 전하는 오지랖 메시지 하나. ‘이미 벽에 구멍을 뚫은’ 감독이니만큼 이제부터 열어갈 영화세계에 대해 온세계가 주목할 것이다. 주목의 무게를 가볍게도 무겁게도 받지 말고 자유롭게 예측불허하게 봉준호표 영화를 만들어 던져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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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우산 글라이더 청소년 문학 5
김민혜 지음 / 글라이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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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혜 작가를 개인적으로 아는데 성격이 온순하고 부드럽다.  작가의 성격이 온유해서인지 '너의 소설'은 문젯거리가 많은 인물이나 거칠고 긴장감 넘치는 갈등보다는 내면의 심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관찰과 성찰로 인물들의 관계와 사건을 전개해 나간다. K팝 스타인 윤지완을 우러러보는 지나에게는 말못할 비밀이 있다. 윤지완과 한때 사귀는 듯 마는 듯한 관계였으나 사소한 오해로 인사조차 헤어지고 그 때문에 지나는 마음의 빚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다 지완의 노래가사에서 자신과의 사연을 은유하는 내용을 접하고서 용기를 내게 된다. 지완을 서운하게 하면서 헤어진 빚을 갚기로 마음먹고 단짝과 함/게 그를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지완을 찾아가는 여행에서 지나는 만남의 의미와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예의, 친구들과의 관계, 엄마에 대한 자신의 마음과 이해의 깊이와 폭을 넓혀간다. 그리고 윤지완과 이별하기 위한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 청소년 소설 가운데 좋은 만남을 갖기 위한 팁(?)은 많지만 현명한 이별에 대한 팁은 쉽게 본 거 같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이 닥쳤을 때 상대에 대해, 자신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보내야 하는지 김민혜 작가는 따뜻한 음성으로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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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고양이 푸른사상 소설선 27
송지은 지음 / 푸른사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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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번 합평모임에서 어쩌면 이렇게 단편을 잘 쓸까, 속으로 얄미워했던 송지은 작가가 첫 소설집(푸른사상)을 냈다. 작가는 '섭씨 4도의 냉장 창고 안, 화천의 오지, 예술마을, 실험실 캐비닛, 문이 잠긴 7층 발코니, 침대 밑 등 폐쇄된 공간'에 등장인물을 밀어넣고, 정신의 벼랑 끝에서 한 인간이 겪는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정으로 쪼듯 파고든다.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은 매번 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한 편 한 편 단편이 갖춰야 할 미학과 완성도를 확인하면서는 다른 의미의 통증이 인다. 왜 난 이렇게 못쓸까, 하는.
'작중화자는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끝장에서 비로소 부도덕하게 오염된 세상, 혹은 방치된 폭력에 빌붙어 살아온 자신의 너절한 인생을 발견한다는 데 『푸른 고양이』의 소설적 품격이 보인다.'-전상국(소설가)
'송지은의 소설은 일부러 극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배경과 인물이 맞물려 아주 독특한 상황을 그려내며 작품 앞머리부터 흡입력을 자아낸다. 삶의 위기가 닥치거나 멈추려 할 때 한 생의 의미가 제대로 드러나는 법...'-이순원(소설가)
추천사로 올라온 평에 백번 공감한다. 좋은 단편을 읽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독자라면 송지은 작가의 소설집 '푸른 고양이'를 집어드시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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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밖에 난 자들
성은영 지음 / 아마존의나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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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애초에 남자를 무시하지 않았으면 여자들이 살해당할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그들도 사람인데 오죽했으면 사람을 죽일 생각까지 했을까. (중략) 남자들이 여자들의 몸을 좋아해서 보고 만지는 것도 여성혐오라고 몰아붙이니 말 다했다. 내내 나자들 보호 아래 애낳고 살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잘만 살아오다가 별안간에 무슨 권리를 찾겠다고 난리들인지 모르겠다.'(P83)


책 한 권 안 읽는 주제에 추리작가를 꿈꾸는 백수 귀랑의 독백이다.  온갖 간난신고를 이겨내고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독립적 인간으로 우뚝 선 할머니 유정과 엄마의 애정에 기대어 하는 일 없이 지내면서 저런 한심한 생각이나 하는 것이다. 

하는짓도 가관이다. 유정의 호의로 엄마 식당에 취직한 꼭지를 만만하게 보고 희롱하다가 오히려 창피를 당하자 껄렁한 군대동기 석태와 만나게 하고 석태가 꼭지를 강간하는 장면을 훔쳐보며 동영상으로 담는다. 당연히 강간범죄를 말리고 범죄신고를 하는 게 상식일진데 귀랑에게는 그런 상식이 없다. 석태 또는 상식 없는 건 물론이고 인간 이하의 수컷이다. 작가는 이 적나라하게 한심하고 인간 같잖은 남자들을 등장시켜 우리 사회에 출몰하는 상식 이하의 인간들, N번방의 미친자들,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자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유정의 삶을 통해 작가가 드러내려는 페미니즘을 간단히 뛰어넘는 삶이 유정 자신과 꼭지의 삶을 통해 흘러드는 느낌이었다. 펄펄 뛰는 문장 때문인지 여성의 삶아 당하는 사건들에 대한 작가의 절실한 분노 때문인지 남아선호 사상에 찌든 할머니 때문에 어린 나이에 온갖 고생 다하고 강간까지 당하는 꼭지와 간난신고를 극복한 후 못나고 폭력적인 남자들을 응징하기에 나선 유정의 삶이 소설속 인물이 아닌 내 주변에서 살아숨쉬는 인물로 다가왔다. 심지어 남자들을 응징하는 유정과 꼭지의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싶었다. 너무 생짜의 삶으로 다가와서 아프고 그래서 속시원하고 그래서 아직도 미망속에 헤매는 귀랑과 같은 자들의 미래가 여성과 겹쳐가야 하는 것이 답답하고 우울하지만, 아방궁이 등장하는 소설의 결말을 읽고 나니 속이 다소 후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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