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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밖에 난 자들
성은영 지음 / 아마존의나비 / 2020년 5월
평점 :
'그러게 애초에 남자를 무시하지 않았으면 여자들이 살해당할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그들도 사람인데 오죽했으면 사람을 죽일 생각까지 했을까. (중략) 남자들이 여자들의 몸을 좋아해서 보고 만지는 것도 여성혐오라고 몰아붙이니 말 다했다. 내내 나자들 보호 아래 애낳고 살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잘만 살아오다가 별안간에 무슨 권리를 찾겠다고 난리들인지 모르겠다.'(P83)
책 한 권 안 읽는 주제에 추리작가를 꿈꾸는 백수 귀랑의 독백이다. 온갖 간난신고를 이겨내고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독립적 인간으로 우뚝 선 할머니 유정과 엄마의 애정에 기대어 하는 일 없이 지내면서 저런 한심한 생각이나 하는 것이다.
하는짓도 가관이다. 유정의 호의로 엄마 식당에 취직한 꼭지를 만만하게 보고 희롱하다가 오히려 창피를 당하자 껄렁한 군대동기 석태와 만나게 하고 석태가 꼭지를 강간하는 장면을 훔쳐보며 동영상으로 담는다. 당연히 강간범죄를 말리고 범죄신고를 하는 게 상식일진데 귀랑에게는 그런 상식이 없다. 석태 또는 상식 없는 건 물론이고 인간 이하의 수컷이다. 작가는 이 적나라하게 한심하고 인간 같잖은 남자들을 등장시켜 우리 사회에 출몰하는 상식 이하의 인간들, N번방의 미친자들,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자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유정의 삶을 통해 작가가 드러내려는 페미니즘을 간단히 뛰어넘는 삶이 유정 자신과 꼭지의 삶을 통해 흘러드는 느낌이었다. 펄펄 뛰는 문장 때문인지 여성의 삶아 당하는 사건들에 대한 작가의 절실한 분노 때문인지 남아선호 사상에 찌든 할머니 때문에 어린 나이에 온갖 고생 다하고 강간까지 당하는 꼭지와 간난신고를 극복한 후 못나고 폭력적인 남자들을 응징하기에 나선 유정의 삶이 소설속 인물이 아닌 내 주변에서 살아숨쉬는 인물로 다가왔다. 심지어 남자들을 응징하는 유정과 꼭지의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싶었다. 너무 생짜의 삶으로 다가와서 아프고 그래서 속시원하고 그래서 아직도 미망속에 헤매는 귀랑과 같은 자들의 미래가 여성과 겹쳐가야 하는 것이 답답하고 우울하지만, 아방궁이 등장하는 소설의 결말을 읽고 나니 속이 다소 후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