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연주하는 사토라레 - 양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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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방언 - Pan O Rama - 재발매
양방언 연주 / 씨앤엘뮤직 (C&L)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양방언 - Pan O Rama
이름 : 양방언 (梁邦彦)
출생 : 1960년 1월 1일
데뷔앨범 : 1996년 1집 앨범 [Gate Of Dreams]
인물소개 : 재일교포 2세인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인터넷으로 양방언을 검색해보니 위와 같이 간단한 그의 약력이 떴다. 우선 몇 가지 미리 밝혀둘 것이 있는데, 나는 이 음반을 내 돈 주고 사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에게 선물 받지 않았다면 이 음반과 나의 인연은 평생을 가도 맺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듯 인연이란 종종 타인에게서 주어지는 선물이다. 음반을 받고도 나는 당일 이 음반을 듣지 못했다. 게으른 천성 탓이라 해도 좋고, 그저 일이 너무 바빴던 나머지 차에 가지고 가서 들어볼 기회를 놓쳤다고 해두자. 그렇게 며칠간 잊고 있었다. 인연이란 그렇게 타인에게서 내게로 와서 새로운 인연이 되기 까지 몇 차례의 우여곡절을 겪는다. 인간과 사물 사이의 인연이 이럴진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인연엔 또 얼마나 많은 곡절이 숨겨져 있겠는가? 어찌되었든 나는 퇴근길에 잊지 않고, 이 음반을 가지고 차에 탔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이 음반을 틀어놓았다.
그리고, 이 음반을 선물해준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건 의례적인 감사를 표현하기 위한 건 아니었다. "고맙다"는 말이 미치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 영화 중 "사토라레"란 것이 있었다. 영화 속에서는 '사토라레'를 규정하는 정확한 말(의지전파과잉증후군)이 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영화 속 설정을 빌어 말하자면 '사토라레'란 뇌파 '사념파(思念波)'가 일반인들에 비해 과도하게 증폭되어 일정한 반경(10km) 안에 있는 사람에겐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 생각이 전달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1000만명 중 1명의 확률로 존재하는데 그들은 예외 없이 IQ180 이상의 놀라운 천재로서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국가에 지대한 기여를 하고 있으므로 국가가 이들을 대상으로 특별 관리를 하고 있다는 설정이다. 영화는 그런 특별한 능력 혹은 고통스러울 수 있는 능력을 두고 발생하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통해 나름대로 감동적인(?) 휴먼스토리로 만들어냈다. 우리는 여러가지 경로로 마음을 타인에게 전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언어일 것이다. 그외에도 우리는 많은 상징 수단을 만들어 타인에게 마음을 전한다. 이때 인간이 만들어낸 고도의 상징수단이란 결국 예술을 의미한다.
나는 소리로서 인간의 말(sound)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에 대해선 고금의 수많은 명언들이 증명하고 있으니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새삼스럽게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소리로서의 음악이 내게 전하는 감동만큼은 신뢰할 수 있다. 음악은 음표와 음표 사이의 시간차로 만들어지는 예술이란 점에서, 한 번 흘러가버린 소리는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시간의 낭비이자, 소리의 낭비이다. 그런데 인간은 어째서 음악을 듣는가? 나는 어째서 음악을 듣는가? 그것은 이 낭비를 통해 내 마음의 균형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은 그렇게 시간차에 의한 예술로, 시간의 터널로 흘러가버리지만 그 음악을 통해 나는 내 마음을 다스리고 감화된다. 그것으로 음의 낭비는 균형을 얻는다.
난 양방언의 음반을 이 한 장만 들었으므로 그의 음악세계를 논하기엔 아직 많이 미흡하다. 그럼에도 이 한 장의 음반 "판 오 라마(파노라마의 장난이라 생각되지만)"는 걸작이다. 다시 앞서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뉴에이지풍의 음반은 되도록 잘 구입하지 않는 편이다. 조지 윈스턴, 데이빗 란츠를 비롯해 한동안 뉴에이지 음악들을 즐겨 들은 적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음악들이 듣기엔 편하지만 뭔가 부족하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마도 나의 음악듣기 성향이 매끄러운 음악보다는 좀더 비트가 강한 선율을 선호하는 탓인지도 모르겠으나 그 매끄러움이 지나치게 의도되고 있다는 생각에서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양방언 역시 상당히 매끄럽지만 조지 윈스턴, 데이빗 란츠와 같은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의 선율과는 차이를 보인다. 우선 이 음반 "Pan O Rama" 하나만으로 집중해서 이야기해보자. 이 음반은 일정한 기획의도를 지닌 컨셉트 앨범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부산 아시안 게임 공식 음악으로 사용되었던 12번 트랙 Frontier의 부제가 voices from the east인 점을 고려해볼 만하다. 양방언의 앨범 "Pan O Rama"는 1번 트랙부터 13번 트랙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하나의 컨셉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아시아로부터 유럽에 이르는 길에 대한 헌사이다. 이때의 길은 침략이나 지배를 위한 의미에서의 길이 아니고 소통과 화해를 위한 길이다. 처음 1번 트랙은 소규모 악기 구성으로 시작되어 점차 다양한(동서양을 넘나드는) 악기들이 참여해 가다가 결국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까지 참여하는 대편성으로 넘어간다.
그의 음악이 뉴에이지적 피아노 선율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의 음악에서는 월드뮤직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거기엔 한국인으로 태어나 일본에서 나고 자라면서 체득한 부분들도 있을 것이고(그는 5세 경부터 동경 예술 대학원 교수 타끼자끼 시즈요꼬에게 피아노를 사사했다), 의대를 졸업하고 1년간 의사로 병원에 근무하면서 자신이 나아갈 길은 음악이라고 결심한 뒤에 체득한 음악적 결심의 소산일 수도 있다. 종종 퓨전이란 것은 '도가니(melting pot)'이기 보다는 이것저것 섞여 있지만 따로노는 '따로국밥'일 때가 종종 있는데, 양방언의 음악에서는 국적으로 치자면 일본, 한국, 중국, 몽골의 동양적인 분위기에서 나아가 켈트음악의 아이리쉬한 분위기까지 한데 어우러져 녹아 있음에도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의 음악에 동요처럼 소박한 멜로디로부터 장대한 오케스트레이션까지 한데 어우러져 있음에도 그것이 억지스럽게 들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양방언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 어려운 음악, 어려운 사람, 어려운 분위기를 싫어해요. 제 안에서 음악은 하나의 말이고 표현이기 때문에 쉽게 전달해야 한다고 믿어요. 다만 듣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상상의 여지는 남겨두고 음악을 만들죠. 음악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를 얘기하는 것이거든요. 제 음악이 좋은 관계 설정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영화 "사토라레"에서 주인공 '사토미 켄이치'의 마음은 늘 타인들에게 생중계된다. 영화에서처럼 한 인간을 그가 가진 능력에 따라 특별관리한다는 것은 다소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종종 TV 기획시리즈에서 재외한국인을 취재하면서 그들이 우리 민족의 자산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영 틀린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좀더 넓은 세계를 보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우리 인재들을 세계에 내보내는 것이라면 이미 세계에 나가 그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인재들이 우리의 자산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양방언은 일본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1년간 `마취의` 로 일했다. 게다가 얼굴까지 잘 생겨서 소위 '얼짱' 뮤지션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음악에서 묻어나는 사람에 대한 사랑, 그리고 소통에 대한 의지와 인간에 대한 그리움은 숨길 수가 없다.
그는 마치 우리들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다.
". . . . . . . . . . . . . . . .지금, 당신도 내 마음이 들립니까?" 하고 말이다.
양방언/ Pan O Rama/ 12번 트랙 - Frontier : voices from the e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