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주
박향 지음 / 강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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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향 소설가의 신작《희주》를 읽다가 문득 생각난 건데... 새삼 세어보니 십수 년 전의 일이네. 아이구 세월아~
암튼 당시 떠들썩하게 어울리던 무리에 쫌 유명한 화가가 있었다. 전시회를 한다기에 가서 둘러보고 그림 하나는 사야하는 거 아닌가 싶어 마음에 드는걸 고르고는 가격을 물었다. 화가가 좀 비싼데 살수있겠냐고 해서 내가 그림을 사는 데 치를 수 있는 최대한의 액수 30만 원을 불렀다 화가가 웃으며 xx식당에 가있으라고 했다.
술자리에서 옆에 앉은 사람들에게 화가의 그림값 얼마정도하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몰랐다. 다들 쉬쉬하며 액수를 소근거리기에 화가에게 물었더니 다소 불편한 표정으로 내가 말한 것(30만 원)에 스무 배는 받아야 하지않겠냔다. 그림의 가격을 묻는것도, 바로 대답하는것도 불경스럽거나 천박한 행위라도 되듯이 어물쩡 답하는 게 이해가 아주안되는건아니지만 좀 꼴값스럽게 보이기도 했더랬다. 그림이 그 가격에 실제로 팔렸는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그림도 문학도 그외 다른 예술도 스스로를 지키려는 포즈가 취해지는 순간 꼴스러운 누명을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것도 같다

책에 그림 사는 장면 읽다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다시 《희주》로. 앞서말했듯《희주》는 박향 소설가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다 읽고 리뷰를 올려야 하는데... 말이 난 김에 살짝만 소개하자면, 《희주》는 항암 치료의 고통을 겪었던 작가가 어깨힘 풀고, 예술적 포즈 따위 다 버리고 투병 경험과 고통속에서 깨달은 삶의 비의를 주인공 희주가 더듬어가는 기억여행으로 채운 장편소설이다. 희주는 항암의 고통이 파도처럼 자신을 덮칠 때 스스로에게서 벗어난 목격자로 물러선다. 그리고 파도와 함께 찾아온 또다른 희주의 생을 추적한다.
몇달전 내 동생이 겪은, 지금도 겪고있는 투병의 경험을 같이해서인가. 희주의 뒤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희주》의 독서 여정은 아프고 힘들고 먹먹하지만, 오늘은 희주를 읽는, 희주와 함께하는 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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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주의보 걷는사람 소설집 15
김담이 지음 / 걷는사람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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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담이 작가가 보내준 책 <경수주의보>를 앞에서부터 한 편씩 읽다가 배신감을 느끼고 말았다. 예쁜 사람에 대한 내 무식한 편견 때문이다.  어어... 이 친구 왜 이래. 하얀 고니 같고, 고고한 학 같고, 아름답고 신비한 새 같은 친구가 왜 이렇게 깊고 어두워. 씻은 듯 말갛고 담담하고 선하던 얼굴로 이런 세계를 그리고 있었단 말이지. 한 편씩 읽어나가며 김담이 작가를 문득문득 떠올리며 멍한 눈을끔벅인 게 몇 번이었던지. 참았던 숨을 토해낸 건 또 몇 번인지. 
<경수주의보>는 김담이 작가가 등단하고 처음 내는 소설집이다. 습작시절부터 지금까지 쓴 단편 중편을 선별해 넣어서인지 책이 두껍다.(장편동화를 낸 동화작가이기도 함) 두꺼운 소설집에 여덟 편의 작품이 어느 하나 엉성한 게 없이 단단히 들어차 있다. 단편집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나름 바빠서) 완독은 힘들고 표제작을 비롯해 적어도 두세 편 정도 읽는데 이 소설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여기까지만 읽자 했다가 다음 편이 궁금해 읽기 시작하고, 시작하면 끝을 보기 위해 달리듯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 무섭고 슬프고 습쓸하고 지독한 이야기들이 늪처럼 발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사적 공적 연금을 받는 나이에 이르러 쓰는 루틴을 팽개치고 넷플릭스의 드라마에 빠져있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네 진창을 보라고 속삭이는 듯한 소설에서는 낯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마지막 단편 '종점만화방'을 덮고 나자 이 소설집이 가진 힘의 근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경수주의보>는 한 편 한 편의 이야기 자체도 완결성을 갖고 목소리를 내지만, 여덟 편의 소설이 한 편씩 열리면서 김담이가 상상해낸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연작소설도 아니고 옴니버스구성도 아닌데 그런 느낌이 들었다. 각기 전혀 다른 개별의 작품인데 장편소설처럼 어떤 세계관을 깔고서 모양과 색깔이 다른 결과물(꽃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어두운)을 피워내고 있다고 할까. 그렇게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경수주의보>는 좋은 소설집이다. 좋은 단편소설의 기준을 어떻게 잡든간에 독자를 깨워 부끄럽게 하고 작가가 내미는 손을 잡고싶은 소설이라면 좋은 소설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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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초대
이현숙 지음 / 산지니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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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소설이 하나같이 극단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다루어 어둡고 칙칙하게 보인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거칠게 부대끼고 사는 사람들이 마지막에 선택하는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품는 쪽이다. 

'여행의 한 방식'에 나오는 아버지의 횡포는 아무리 노인이고 병자라고 하지만 선을 넘었다고 할 수 있다. 자식을 인간이 아닌 소유물로 보는 정신나간 늙은이인데 작가는 끝까지 그 망종 같은 늙은 아버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태풍의 집'에서 티켓을 팔아 성매매를 하는 소녀 제지는 태풍으로 다방이 물에 잠기는 날 자신에게 몸을 맡겼던 지체장애자 소년을 위해 쿠션을 사들고 그에게로 간다. '검은색 스키니진'에서 어린 이주민 여성과 결혼한 남편은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고 옷을 바다에 던져버리는데 알고보니 아내는 생계를 돕겠다고 선박에서 버려진 생선을 줍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다. '로티스'에서 화자인 나는 맞춤구두 장인인 남편이 사실은 고교 때 친구와의 사랑을 잊지못하는 동성애자임을 알고 충격받지만, 남편의 지극한 사랑앓이를 연민해 화장을 도와주고 그 자신이 만든 구두와 친구 구두를 내밀며 가서 사랑하라고 보내준다. 

'비트의 세상'과 '수상한 초대'에서는 동생의 죽음, 골수이식을 기다리는 동생이 나온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완성하려는 동생의 자살과 골수이식을 기다리는 동생을 버리고 떠나는 주인공의 상황이 매몰차 보이지만, '비트의 세상'에서 화자는 동생이 보냈던 그림을 보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직면하고 자아를 찾는다. 그리고 '비트의 세상'의 나는 늘 동생과 가족에게 피해자로 살면서 스스로 팽개쳤던 자신을 품고 새로운 미래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섯 편의 소설을 보면서 이현숙 작가가 다루는 세계가 한결같이 불안하고 위태롭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작가가 살아낸 세상이 그만큼 굴곡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소설은 작가의 삶을 다루는 게 아니지만 작가의 인생관과 심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는 거니까 말이다. 

그렇게 불안한 상황을 펼쳐놓고, 여섯 개의 단편을 완성함으로써 이현숙 작가가 끌어낸, 끝까지 잃지 않은 인간에 대한 다정함,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는 시선에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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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시간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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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과 광주는 무겁고 아프다. 삼풍과 세월호와 이태원은 끔찍하고 비통하다. 한국전쟁은 내 경우, 안타깝고 슬프지만 심정적으로는 가장 멀리 있는 비극이다. 가까운 친인척 중에 이산가족이 생겼다든가 집안살림이 망했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어 그럴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유령의 시간>이 나왔을 때 골라 들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번에 <유령의 시간> 개정판을 읽은 것도 한국전쟁보다는 김이정 작가의 개인사에 궁금증이 생겨서였다.
알다시피 <유령의 시간>은 김이정 작가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자서전 원고를 발견하고 그 일기를 완성하려는 염원으로 완성한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아버지의 이름은 김이섭이다. 이섭과 함께 화자의 역할을 하는 딸 지형이 김이정 작가의 분신이고.
나한테 <유령의 시간>을 한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인연에 전력하다 스러진 한 남자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맑은 이마를 가진 진과 결혼해 세 아이를 낳은 이섭은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어 활동한 게 발각되어 감옥에 가면서 가족을 다 잃게 된다. 소문에는 진이 북으로 간 남편 이섭을 따라 북으로 가는 행렬에 끼었다고 한다.
이섭은 지형 남매의 엄마가 되는 박미자와 결혼한 뒤에도 북으로 갔다는 첫 아내 진과 세 아이를 잊지 못해 박미자와는 혼인 신고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박미자와 지형 남매를 위해 몸이 쓰러질 때까지 일한다. 온 마음과 몸을 바쳐 자신이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심지어 진과 헤어졌으면서도 그녀의 아버지인 장인과도 평생 연을 끊지 않고 서로 끔찍이 생각하고 위한다. 미련하달까 지극하달까, 암튼.
더 나아가 이섭은 어린 시절 부잣집 도련님이라고 괴롭히는 운식이가 “네가 나뭇가지 거둬가는 바람에 내가 주워갈 게 없다”는 억지스러운 말에 가진 자로서의 잘못(?)을 크게 깨닫는데 세월이 흘러 선박회사 사장이 된 운식을 만나서는 “내가 가졌던 것을 운식이가 가지게 되어서 마음이 편하다”라고 마음을 토로한다. 운식과의 만남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풀어야 할 숙제로 간직했던 셈인데, 이것은 자신의 운명을 통째로 말아먹게 한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마음에서도 드러난다. 이섭은 자신이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공산당 조직에 합류한 것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유령처럼 살아왔지만, 가진 것을 나누어 다 같이 잘살자는 사회주의 사상이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었다는 생각을 놓지 않는다. 물론 대학교수가 되어 자기 인생을 깔끔하게 정돈해서 살아가는 친구 앞에서 자신이 몽상주의자였을 뿐이라고 자학하긴 하지만 그건 고통 속에서 지르는 비명일 터다.
이 소설의 서두에서 새우양식업을 하는 이섭은 새벽녘 바닷가에 서서 혹시라도 올지 모를 그들을 기다리며 두려움과 설렘으로 떠는 장면이 나오는데, 소설이 끝나갈 때는 막내딸 지우가 죽는 장면이 나온다. 이 두 장면은 서로 연관성이 없는 것 같은데 독자로서 나는 이 두 장면이 하나의 비극으로 뭉쳐서 다가왔고 지우의 죽음에 이르러 무너지는 이섭처럼 마음이 무너져 눈물을 쏟아냈다. 이섭이 살아낸 시간에 ‘유령의 시간’이라는 타이틀을 스스로 붙였는지 작가 김이정이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이 이섭만의 시간이 아니었던 거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이섭은 사회안전법이라는 국가폭력에 뇌혈관이 터지면서 쓰러진다. 이 소설의 화자로서 아버지 이섭의 생을 지켜본 지형은 바람부는 호지(새우양식장으로 물 고인 웅덩이) 밑에서 온 몸으로 물결을 버텨내던 새우를 떠올린다. 이섭을 차갑고 어두운 곳에 갇혀버린 한 마리 등 굽은 새우였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소설을 끝낸 김이정 작가는 후기에서 자신이 아버지를 너무 작은 사람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염려한다. 염려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섭의 생애는 멀어졌던 한국전쟁의 비극을 이 시대로 소환한 소설적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이섭은 마음을 저미게 하는 한 시대의 주인공이었고.


거리는 온통 잿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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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초대
이현숙 지음 / 산지니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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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소설도 재밌지만 ‘태풍의 집‘ 은 아주 실감나고 생생해서 재미를주는 작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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