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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주의보 ㅣ 걷는사람 소설집 15
김담이 지음 / 걷는사람 / 2024년 11월
평점 :
김담이 작가가 보내준 책 <경수주의보>를 앞에서부터 한 편씩 읽다가 배신감을 느끼고 말았다. 예쁜 사람에 대한 내 무식한 편견 때문이다. 어어... 이 친구 왜 이래. 하얀 고니 같고, 고고한 학 같고, 아름답고 신비한 새 같은 친구가 왜 이렇게 깊고 어두워. 씻은 듯 말갛고 담담하고 선하던 얼굴로 이런 세계를 그리고 있었단 말이지. 한 편씩 읽어나가며 김담이 작가를 문득문득 떠올리며 멍한 눈을끔벅인 게 몇 번이었던지. 참았던 숨을 토해낸 건 또 몇 번인지.
<경수주의보>는 김담이 작가가 등단하고 처음 내는 소설집이다. 습작시절부터 지금까지 쓴 단편 중편을 선별해 넣어서인지 책이 두껍다.(장편동화를 낸 동화작가이기도 함) 두꺼운 소설집에 여덟 편의 작품이 어느 하나 엉성한 게 없이 단단히 들어차 있다. 단편집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나름 바빠서) 완독은 힘들고 표제작을 비롯해 적어도 두세 편 정도 읽는데 이 소설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여기까지만 읽자 했다가 다음 편이 궁금해 읽기 시작하고, 시작하면 끝을 보기 위해 달리듯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 무섭고 슬프고 습쓸하고 지독한 이야기들이 늪처럼 발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사적 공적 연금을 받는 나이에 이르러 쓰는 루틴을 팽개치고 넷플릭스의 드라마에 빠져있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네 진창을 보라고 속삭이는 듯한 소설에서는 낯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마지막 단편 '종점만화방'을 덮고 나자 이 소설집이 가진 힘의 근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경수주의보>는 한 편 한 편의 이야기 자체도 완결성을 갖고 목소리를 내지만, 여덟 편의 소설이 한 편씩 열리면서 김담이가 상상해낸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연작소설도 아니고 옴니버스구성도 아닌데 그런 느낌이 들었다. 각기 전혀 다른 개별의 작품인데 장편소설처럼 어떤 세계관을 깔고서 모양과 색깔이 다른 결과물(꽃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어두운)을 피워내고 있다고 할까. 그렇게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경수주의보>는 좋은 소설집이다. 좋은 단편소설의 기준을 어떻게 잡든간에 독자를 깨워 부끄럽게 하고 작가가 내미는 손을 잡고싶은 소설이라면 좋은 소설이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