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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그리기 - 소소한 오늘을 특별하게 만드는 일상 드로잉
심수환 지음 / 산지니 / 2023년 2월
평점 :
그림은 그리고 싶은데 재능이 없어서 그림과 담 쌓고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
어마 얘는, 너 그거 완죤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다~
어깨를 살짝 치며 알려주는 책이 나왔다.
화가이며 미술교육 연구가인
심수환의 『일상 그리기』이다.
부제가 '소소한 오늘을 특별하게 만드는 일상 드로잉'이다.
그림을 짝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아이들이 처음 글을 배울 때처럼 그림에 접근하라고 말한다. 글을 배우기 시작할 때 한 자씩 글자를 배우듯, 가까운 주변 물체들을 하나씩 그리고, 다음으로 사람 그리는 것을 순서대로 배우면 누구나 일정 수준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조그만 수첩 하나에 펜 한 자루를 가지고 내 곁에 있는 화분이나 꽃 한 송이, 심지어는 식탁에 놓인 숟가락 하나만 그려도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화가들이 커다란 화폭에 풍경이나 사람을 그리고 온갖 기교를 더하여 채색을 하는 것에 비하여 그야말로 가볍게 내게 익숙한 물체 하나만 그리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상 그리기는 그림이라기보다는 이야기에 가깝다. 어떤 이들은 일기 쓰는 것과 같다고 한다. 왜냐하면 겨우 숟가락 하나만 그리고도 그 속에 숟가락에 담긴 사연이나 숟가락과 나의 관계에서 생긴 이야기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수환 화가가 이 책을 쓴 의도가 담긴 말이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대목이기도 하다.
"자세히 본다는 것은 그저 관념적으로만 알던 대상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생전 처음 보듯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렇게 들여다보면 전에 못 봤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저절로 감탄하며 신기해하게 된다. 이 사랑스러운 존재 같으니라고…. 우리는 얼마나 바쁘게 살며 이 세상을 관념적으로만 보아 왔는가. 지금부터 내 주위에 있는 가까운 대상들과 새롭게 관계 맺으며 사랑하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일까? 사랑스러운 이 세상과 함께 교감하는 나 자신도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일상 그리기를 하는 이유다."
심지어 이런 대목을 접했을 때는 '아, 진작 그림 그리기를 했어야 했던 거였어!' 하는 후회와 깨달음의 충격이 이마를 쳤다.
그는 '일상 그리기'를 통해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삶에 대한 이야기! 사물에 담긴 이야기!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를 더해가는 마음공부와도 같은 일상 그리기는 문학하는 마음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소설을 쓴답시고 허리를 작살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내 주변의 사물과 사람에 대해 과연 편견 없는 맑은 눈으로 본 적이 몇번이나 있었던 걸까. 화가의 글과 그림으로 정성껏 채워진 이 책을 다 읽고 나자 저절로 반성모드가 된 건 이런 이유에서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나 가까이 못한 사람들
살면서 딱히 부족한 게 없는데 왠지 허전한 사람들
알 수 없는 그리움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소설이나 시를 쓰는 사람들
기타 등등의 사람들에게 이 책을 강추한다.
아, 끝으로 한마디 더!
『일상 그리기』가 산지니에서 나왔는데 책의 만듦새가 예뻐 걍 소장용으로도 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