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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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p10 자네는 이렇게 설교하지 않았는가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라고......그럼 구해야지. 자네는 설교에만 소질이 있는 건가. 왜 나랑 같이 가지 않는 건가?

 

나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고통은 꿈이며, 인생은 재미있는 연극이어서 촌놈이나 바보만이 무대로 뛰어올라 연기에 가담한다는 듯이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면서 헛소리로 제 감정을 가렸다. [안녕, 이 책벌레야!]

 

p14 내 친구는 내가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게 해준 셈이었다. 속이 후련했다. 병통을 알았으니 이제는 쉬 정복할 수 있게 된 셈이기 때문이었다. 모호한 것도 비물질적인 대상도 아니게 된 셈이었다. 이름과 형태를 알게 되었으니 싸우기가 수월해진 셈이었다.

 

p15 나는 자신에게 타일렀다. 이제껏 너는 그림자만 보고서도 만족하고 있었지? , 이제 내 너를 본질 앞으로 데려갈 테다.

 

p19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 인간의 이성이란 그런거지 뭐.]

인간의 이성에 관한 정의라면 나도 꽤 읽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 헌털뱅이 영감의 정의 같은 것은 읽은 적이 없었다. 놀라웠다. 그 정의가 내 마음에 들었다.

 

p22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언어, 예술, 사랑, 순수성, 정열의 의미는 그 노동자가 지껄인 가장 단순한 인간의 말로 내게 분명히 전해져 왔다.

 

두 손은 못이 박이고 터지고 일그러진 데다 힘줄이 솟아 나와 있었다. 그는 여자의 옷이라도 벗기는 것처럼 섬세하고 주의 깊은 손놀림으로 보따리를 열고 세월에 닦여 반짝거리는 산투르를 꺼냈다.

 

사랑하는 여자가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다시 옷을 입히는 것처럼 다시 보따리에 싸기 시작했다.

 

p26 태양은 구름을 가르고 그 따사로운 얼굴을 내밀어 그 빛살로 사랑하는 바다와 대지를 씻고 닦고 어루만졌다. 나는 뱃머리에 서서 시야에 드러난 기적을 만끽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버려 두었다.

 

배 위에는 탐욕스럽게 굴리는 교활한 악마의 눈망울, 행상이 파는 허섭스레기 물건 같은 대가리를 한 그리스인들이 가득 탄 채 밀고 당기고 있었다. 그들이 다투는 소리는 흡사 조율이 안된 피아노, 정직하지만 심술궂은 여자들이 긁는 바가지 같았다. 성질대로 한다면 두 손으로 배를 붙잡고 바닷물에 꽂아 넣어 술렁술렁 흔들어, 살아서 복작거리는 것들 (인간, , 벌레)을 깡그리 씻어 내고는 깨끗이 씻긴 모습으로 다시 건져 올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따금 나는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곤 했다. 형이상학적인 삼단 논법의 결론만큼이나 차가운 불교도의 자비심 같은 것이었다. 인간만을 위한 자비심이 아니라 싸우고, 울고, 소리치고, 바라면서도 만사 무상의 허깨비임을 알지 못하는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자비심이었다. 무엇보다도 찰나에 순수한 대기를 더럽힐 빛과 형상의 덧없는 상에 대한 자비였다.

 

p28 돌고래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내가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p29 얼마나 사랑하면 손도끼를 들어 내려치고 아픔을 참을 수 있는 것일까......

 

p32 그곳을 디딜 수 있어서 기쁘다는 듯이 샅샅이 더듬어 보는 것이었다.

 

커피 냄새를 정성스럽게 맡았다.

 

p49 내 마음에 크레타의 시골 풍경은 잘 다듬은 산문, 단정한 어순, 절도 있는 표현, 군더더기 수식을 피한 강력하고도 절제된 산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산문은 필요한 모든 것을 극히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법이다. 여기엔 경박한데도, 작위적인 구석도 없다. 표현해야 할 것은 위엄있게 표현하지만 엄격한 행간에서는 의외의 감성과 애정을 느낄 수 있다.

 

p50 과거의 필요가 여전히 그들의 행동 리듬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었다.

 

p51 나는 그만 단테의 하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p64 젊든 늙든, 아름답든 추하든 ( 이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식에 불과했다) 용모는 그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모든 여자 뒤에는 위엄이 있고 신성하고 신비스러운 아프로디테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다. 조르바가 보고 말하고 바라는 것은 바로 그 얼굴이었다. 오르탕스 부인은 덧없는 순간의 투명한 가면에 지나지 않았고 조르바는 이 가면을 찢고 영원한 입술에 키스하는 것이었다.

 

p68 [내가 내 평생에 사내다운 행동을 한다면 그건 저 그림 덕분일 거야.]

 

p78 나는 그이 모습, 고개를 세우거나 떨어뜨리는 것, 팔을 움직이는 모양으로 그날 일의 성과를 알아낼 수 있었다.

 

p80 나는 이 양자를 결합하는 희망, 양극이 화합할 길을 모색하여 지상의 생활과 하늘의 왕국을 동시에 얻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손에 가슴을 얹고 선서를 했을 때는 눈물까지 흘렸던 것이다.

p98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조르바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그런 순간은 관자놀이가 뻐근하도록 행복했다.

 

p99 마침내 나는 먹는다는 것은 숭고한 의식이며 고기 빵 포도주는 정신을 만드는 원료임을 깨달았다.

 

p113 내 감정은 안도 긍지 혐오감으로 착잡했다. 그러나 나는 원고를 끝내면 묶고 봉해버리면 된다는 생각에서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나는 조르바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그의 모든 것을, 거침이 없는 웃음, 친절한 말, 맛있는 요리를 기다렸다.

 

p118 우리는 꽤 오랫동안 마시면서 큼직한 토끼 두 마리처럼 오독오독 밤을 씹어 먹었다. 바다가 포효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p119 우리 앞에는 유쾌한 일과 음식이 있었고, 가슴엔 평온과 애정과 평화가 있었다. 우리는 그것에 깨어 있었다.

 

p133 부드럽게 비가 내리는 시각에 그 비가 내부의 슬픔을 일깨운다는 것은 얼마나 관능적으로 즐거운 일인가! 그럴때면 의식의 심연에 숨어 있던 쓰디쓴 추억, 친구와의 이별, 사라져버린 여자의 미소, 날개를 잃고 구더기가 되어버린 나방의 (구더기는 내 심장으로 기어오르며 심장을 갉아먹고 있었다) 덧없는 희망같은 쓰디쓴 추억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카프카로 떠난 친구의 모습이 비와 젖은 흙 속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나의 철필을 쥐고 종이 위에 엎드려 빗줄기로 짜인 그물을 찢고 다시 숨을 쉴 수 있도록 그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p134 모든 사람에겐 그 키에 알맞은 행복이 있다는 뜻이겠네.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 함께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네!

 

이제 내가 맡은 역에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충실할 수 있을 것이네. 즉 용기를 잃지 않고 틀림없이 해내겠다는 것이네. 깨달음으로 나는 신을 연기하는 무대의 공연자가 된 것이네.

 

자네 역시 자네 키에 맞는 행복을 선택했고 지금의 자네 키는 내 키보다 훨씬 크다네. 위대한 스승이라면 자기를 능가하는 제자를 만드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네.

 

p138 감히 자네를 아주 깊이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있네.

 

p139 산은 슬픔으로 일그러진 여자의 얼굴 같았다. 슬픔을 이기지 못해 실신한 채로 비를 맞는 여자 같았다.

당신 책을 한 무더기 쌓아놓고 불이나 확 싸질러 버리쇼. 그러고 나면 누가 압니까. 당신이 바보를 면할지.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니까.......

 

p140 노인들 특유의 앞뒤가 꽉 막힌 흑백논리를 전개해 나가고 있었다.

 

p149 말썽이 생기는 건 질색이에요!

 

p150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의 사랑과 책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라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p178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p206 친구여 행동하기 싫어하는 내 스승이여 행동, 행동...... 구제의 길은 그것뿐이네

 

p209 내가 이 땅을 <떠나>더라도 자네는 어디에 있건 두려워하지 말게.

 

p214 당신 속에도 악마 한 마리가 있지만 아직 이름은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걸 모르니까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 거예요. 두목, 그 놈에게 세례를 베풀고 이름을 지어 주세요. 그럼 아마 좀 나아질 겁니다.

 

p215 사람에겐 바보 같은 구석이 있게 마련입니다. 가장 바보 같은 놈은 내 생각에는 바보 같은 구석이 없는 놈일 것입니다.

 

p246 생명이란 모든 사람에게 오직 일회적인 것, 즐기려면 바로 이 세상에서 즐길 수 밖에 없다는 경고였다.

 

p326 나이를 더 먹으면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이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p330 당신 눈에는 안 보이는 가요? 두목 봐요. 저 모든 기적 뒤에 도사리고 있는 마술을 말이오. 그는 밖으로 달려나와 봄철 망아지처럼 풀밭을 구르고 춤을 추었다.

 

p343 처음으로 영혼이 곧 육체, 다소 변화무쌍하고 투명하고 더 자유롭긴 하지만 역시 육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소 과장되어 있고 긴 여행으로 지치고 물려받은 짐에 짓눌려있기는 하나 육체 또한 영혼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p344 나는 내 마음이 이 육체의 환희를 독점하여 그 나름의 형상을 찍고 생각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는 내 몸이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짐승처럼 환희를 즐기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따금 무아지경에서 내 외부와 내부를 기웃거리며 이 생명의 기적에 경탄했다.

 

p357 나는 불을 끄고 누운 채, 나 나름의 유치하고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현실을 재구성해 보았다. 말하자면 현실을 변조하고 우주의 법칙에 따른 추상적인 것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그 때 일어난 사건은 필연적인 사건이라는 끔찍한 결론이 나왔다. 필연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우주의 조화에 대한 기여이기까지 했다. 그날 내가 내린 구역질나는 결론은 일어난 사건은 마땅히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라는 것이었다.

 

p359 내 딴에는 자기 위안의 한 경지에 도달했답시고 한번 과부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닥쳐요...... 나는 닥쳤다. 부끄러웠다.

 

슬플 때는 진짜 눈물이 뺨을 흐르게 했다. 기쁠 때면 형이상학의 채로 거르느라고 그 기쁨을 잡치는 법이 없었다.

 

p386 나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지식도, 미덕도, 선도, 승려도 아닌, 보다 위대하고 보다 영웅적이며, 보다 절망적인 것, 즉 신성한 경외감이라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조르바, 우리는 구더기랍니다.

 

p389 나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소위, 살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돈 벌고 명성을 얻는 걸 자기 생의 목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또 한 부류는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인류의 삶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그걸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지요. 이 사람들은 인간은 결국 하나라고 생각하고 인간을 가르치려 하고 사랑과 선행을 독려하지요. 마지막 부류는 전 우주의 삶을 목표로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무나 별이나 모두 한목숨인데, 단지 아주 지독한 싸움에 휘말려 들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요.

 

p400 말에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그 말이 품고 있는 핏방울로 가늠될 수 있으리.

 

p416 사람을 당신만큼 사랑해 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쌓이고 쌓였지만 내 혀로는 안 돼요. 춤으로 보여 드리지. 자 갑시다!

 

p417 내 심장은 가슴속에서 뛰고 있었다. 내 생애 그 같은 기쁨은 누려 본 적이 없었다. 예사 기쁨이 아닌, 숭고하면서도 이상야릇한,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 같은 것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것과 극을 이루는 그런 것이었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조르바. 나는 그를 다시 만났다. 5년 만이다. 그땐 나를 화자의 입장으로 보고 조르바를 주시했다. 조르바의 말, 조르바의 생각, 조르바의 행동 조르바의 모든 것이 흥미롭고 알고 싶었다. 다시 만난 조르바는 여전히 건재해 있었다. 그는 세상 만물에 연민과 존중이 있고 매 순간 몰입하며 현재를 살고 있었다. 그의 모든 경험들은 곧 단순한 진리가 되었다. 화자가 책을 통해 알게 된 많은 해석들보다 조르바의 경험을 통한 통찰은 분명하고 명료하고 또 정확했다. 책벌레 화자는 조르바로부터 삶의 진리를 깨닫는다. 그는 점점 생각하고 해석하기보다는 느끼려고 한다. 조르바는 매 순간을 신비와 경외감으로 맞이했다. 세상이 주는 아름다움을 오감으로 느끼고 기꺼이 향유하며 또 자신의 본분을 알고 그것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게 이 세상에 온 전부라는 것을 안다.

 

당신 눈에는 안 보이는가요? 두목 봐요. 저 모든 기적 뒤에 도사리고 있는 마술을 말이오. 그는 밖으로 달려 나와 봄철 망아지처럼 풀밭을 구르고 춤을 추었다.

 

이제 내가 맡은 역에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충실할 수 있을 것이네. 즉 용기를 잃지 않고 틀림없이 해내겠다는 것이네. 깨달음으로 나는 신을 연기하는 무대의 공연자가 된 것이네.

 

조르바는 화자에게 이 세상은 대체 어떤 것인지 책에 뭐라고 써있는가를 묻지만 화자는 그저 관념적인 설명을 하려다 실패하고 만다. 화자의 순진한 이상주의나 사건의 원인에 대한 해석들이 실제의 삶과는 맞닿아 있지 않거나 그저 자신이 삶을 제대로 느끼는데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조르바를 통해 더 분명히 알게 되고 스스로 부끄러워한다. 화자는 조르바의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자신도 그렇게 조금씩 달라짐을 느낀다.

 

나는 내 마음이 이 육체의 환희를 독점하여 그 나름의 형상을 찍고 생각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는 내 몸이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짐승처럼 환희를 즐기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따금 무아지경에서 내 외부와 내부를 기웃거리며 이 생명의 기적에 경탄했다.

 

조르바와 함께하며 화자는 먹고 마시는 일이 숭고한 의식이며 정신을 만드는 원료임을 깨달았다. 또 언어의 표현 너머에 춤의 언어를 배운다. 그들은 함께 먹고 마시며 춤추고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고 사랑했다.

 

사람을 당신만큼 사랑해 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쌓이고 쌓였지만 내 혀로는 안 돼요. 춤으로 보여 드리지. 자 갑시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내게 안겨준 선물은 무엇일까?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경외감 같은 것이었다. 책을 통해 가까이서 카잔차키스와 조르바를 만날 수 있다는 영광스러움! 그 둘의 만남 안에 나도 함께 있는 듯했다. 아주 가까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들의 마음 안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황홀했다. 화자의 사랑하는 친구와의 이별, 친구에게 보낸 편지, 또 친구의 죽음 이 모든 과정들이 너무 슬프고 아련하고 아팠다. 나에게도 사랑하는 친구가 있다. 우리는 함께 했던 그 모든 순간을 사랑하고 아꼈다. 언젠가 그녀와 작별하게 되는 날을 생각하니 자꾸만 눈물이 났다. 울다울다 조르바가 등장했다. 그의 거침없는 말투와 외모 그 속에 감추어진 아주 깃털처럼 부드러운 사람과 대상에 대한 사랑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두 손은 못이 박이고 터지고 일그러진 데다 힘줄이 솟아 나와 있었다. 그는 여자의 옷이라도 벗기는 것처럼 섬세하고 주의 깊은 손놀림으로 보따리를 열고 세월에 닦여 반짝거리는 산투르를 꺼냈다.

 

사랑하는 여자가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다시 옷을 입히는 것처럼 다시 보따리에 싸기 시작했다.

 

늙고 퇴물이 되어버린 오르탕스 부인을 대하는 조르바의 태도는 놀랍기도 했다. 그는 그녀를 정말로 존중하고 아껴주었다. 그녀가 예전의 화려했던 모습을 되살려주려 노력했다.

 

젊든 늙든, 아름답든 추하든 ( 이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식에 불과했다) 용모는 그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모든 여자 뒤에는 위엄이 있고 신성하고 신비스러운 아프로디테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다. 조르바가 보고 말하고 바라는 것은 바로 그 얼굴이었다. 오르탕스 부인은 덧없는 순간의 투명한 가면에 지나지 않았고 조르바는 이 가면을 찢고 영원한 입술에 키스하는 것이었다.

 

그런 마음가짐과 태도를 지닌 조르바는 아이 같기도 했다. 매 순간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또 자신의 일에는 최선을 다했다. 일하는 시간에는 오스탕스 부인도 처다보지 않고 또 먹지도 않고 오로지 일에만 집중했다. 또 그는 정의로웠다. 과부를 살리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또 다른 위대한 화자 카잔자키스에 대해 느낀 바는 그의 화려한 문체가 좋았다. 그의 모든 비유가 황홀했다.

 

내 마음에 크레타의 시골 풍경은 잘 다듬은 산문, 단정한 어순, 절도 있는 표현, 군더더기 수식을 피한 강력하고도 절제된 산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산문은 필요한 모든 것을 극히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법이다. 여기엔 경박한데도, 작위적인 구석도 없다. 표현해야 할 것은 위엄있게 표현하지만 엄격한 행간에서는 의외의 감성과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산은 슬픔으로 일그러진 여자의 얼굴 같았다. 슬픔을 이기지 못해 실신한 채로 비를 맞는 여자 같았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마시면서 큼직한 토끼 두 마리처럼 오독오독 밤을 씹어 먹었다. 바다가 포효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정신 또한 훌륭하다.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해 대강 짐작만하고 넘어가야 곳이 있었지만 그는 수많은 책들을 섭렵하고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 같았다. (스스로는 부끄러워하기도 했지만)

 

나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소위, 살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돈 벌고 명성을 얻는 걸 자기 생의 목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또 한 부류는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인류의 삶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그걸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지요. 이 사람들은 인간은 결국 하나라고 생각하고 인간을 가르치려 하고 사랑과 선행을 독려하지요. 마지막 부류는 전 우주의 삶을 목표로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무나 별이나 모두 한목숨인데, 단지 아주 지독한 싸움에 휘말려 들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요.

 

또한 그는 그와 전혀 다른 조르바를 통해 그의 언어와 춤 그의 삶의 태도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시켜갔다. 조르바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신뢰하고 사랑했다. 그래서 그도 변화해갔다.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네!

 

그들 옆에서 조금씩 닮아가고 싶다. 조르바와 화자를 통해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아 조금씩 변해가고 싶다. 화자의 세심한 관찰력과 듣기 능력, 조르바의 몰입과 집중을 삶에 실천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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