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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 상 ㅣ 십이국기 4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7월
평점 :
십이국기라면 역시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내가 십이국기를 처음 접하게 된 것도 애니메이션이었다. 많은 명장면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극적이고 가슴떨리는 장면을 꼽는다면 역시 왕사가 몰려온 앞에서 게이키와 요시(요코)가 왕의 군대가 아닌 총재의 사병이냐고 꾸짖는 장면이다. 책 초반에 게이키와 세이쿄의 간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요시가 위엄있는 왕의 모습을 보이는데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에서는 요시, 스즈, 쇼케이 이 세 여자아이의 성장을 묘사하고 있다. 세 소녀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세상일에 대한 무지라고 할 수 있다. 요시와 스즈는 해객으로 요시의 경우 알려고 노력은 하되 허수아비와 다를바 없고 스즈는 스스로의 괴로움 속에 갇혀서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쇼케이는 왕족으로서의 의무를 버리고 화려한 궁정생활의 향락 속에서만 살던 공주님이었다. 이렇던 소녀들은 각자의 계기로 성장한다.
소설의 처음과 끝을 놓고 보면 경의 초칙이 어떻게 세워지는지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전 책에서 요시와 라쿠슌의 대화를 떠올려보면, 제대로 된 인간이 되기 전에 왕이 된다는 사실에 고민하는 요코에게 라쿠슌이 좋은 왕이 되면 좋은 인간도 될 수 있을 거라는(정확하진 않음) 말을 했었다. 초칙은 왕으로서 처음 내리는 칙령으로 이 초칙으로 그 왕의 치세가 어떠할지 알 수 있다. 요컨대 초칙에 대한 고민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요시의 초칙을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될까? 그저 덧붙이자면 일본의 인사법을 생각하면 요시에게도 경국에게도 개혁적인 초칙이었다 싶다. 그래도 무엇보다 인간의 긍지, 존엄성을 우선하는 왕은 분명 좋은 왕이겠지.
애니를 보고난 후에도 그랬지만 지금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만약 내가 초칙을 세운다면, 어떤 초칙을 세울 것인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상상해보게 된다. 누가 나에게 나라를 맡기진 않겠지만ㅎㅎ 나에게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지에 대한 생각은 왕이 아니라도 중요할 것이다. 요시 말대로라면 우리 모두는 스스로 자기자신의 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