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꽃피는 민들레 국수집
서영남 지음 / 더북컴퍼니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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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동인천에서 국수집을 열고 계시는 서영남 님.

전직 가톨릭 수사이자 현직 민들레 국수집 주인이다.

일찍이 스무살에 수도원에 들어가서 25년간을 살다가

어떠어떠한 이유로 퇴회하게 되었고

그후 수사일때부터 했던 교도소 교정사업을 계속이어가면서

민들레 국수집을 열고 있다.

 

민들레 국수집은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공간이다.

따뜻하고 정성 깃든 온전히 서영남 님이 만들어 대접한다.

그는 사람은 밥심으로 살아야한다고 말한다.

밥을 먹고 힘이 생겨야 술도 안먹고 건강해질 수 있다고

알콜중독자인 손님들에게 이야기한다.

또한 가르치려하지 않고 함께 나누는 삶을 살고 있다.

노숙자들에게 언제라도 배고프면 오라고하고

방을 잡아서 재활할 수 있는 도움을 주고

기꺼이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서 독립하도록 격려해준다.

교회의 정신대로 민들레집을 운영하는 것이다.

 

민들레가 화려하지 않은 곳에 머물지 않듯이

인천 화수동 주택가 깊은 곳에 조용히 자리잡은 민들레 국수집,

일주일중 목/금요일을 제외한 5일은 항상 열려있는 그곳,

그곳에서 조용히 자신의 몫을 다하는 서영남 님.

환속한 그를, 더구나 가정을 이룬 그를,

주변 사람들은 아직도 수사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수도복은 벗었지만 여전히 그는 수도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신학연구소의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을 통해 처음 알았고

이번에 간행된 <사랑이 꽃피는 민들레 국수집>을 읽었다.

내친김에 지난 늦겨울에 방영된 <인간극장>도 다시보기했다.

부인 베로니카 씨와 스무살 딸 모니카와 성가정을 이루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서영남 수사님.

부디 그분의 민들레 국수집에 사랑의 꽃이 피어

멀리 세상을 향해 홀씨를 뿌리길 기원한다.

 

2005. 8. 3. 새벽 이용철

 

민들레집 미니홈피 : http://www.cyworld.com/sye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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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유키 -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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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유키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두만 장편소설 <도모유키>는

역시 기대했던대로 문제작이었다.

최근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로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고 이순신에 대한, 임진년 왜란에 대한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이때,

일본군인이 화자가 되어 왜란의 마지막 부분을 이야기하는

이 발칙한(?) 소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러나 성미급한 미독자들을 위해서 에둘러 말해둔다.

괜한 알러지를 일으켜 건강에 해라고 끼칠지 몰라서다.

이 책은 친일의 소설이 아니다.

당시 조선의 반대쪽에 서 있던 하위무사의 이야기다.

 

농부출신으로 조선 출병에 끌려온 군막장 도모유키는

조선포로 명외에게 애정을 느낀다.

그래서 위기에 처할때마다 보살펴주고

통역병에게 조선어를 익혀서 짧은 대화를 시도해보기도한다.

여동생 이치코에 대한 그리움을 명외를 통해 느끼기 때문이다.

배고픈 시절 어린동생을 쌀 두가마에 팔아버린 기억으로

괴로워하는 도모유키는 언젠가는 재회하고

다시 가족으로 함께해야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물론 전쟁이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말이다.

그런 도모유키는 사랑하는 여인을 살리기 위해

숨겨둔 패물들을 뇌물로 수문장에게 바치고 보내준다.

같이가자는 여인의 청을 뒤로하고 일본어로 말했다.

"와따시와 아나따오 아이시데마스"

통역이 가르쳐준 조선어 '사랑'이라는 단어를 알면서도

일본어로밖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전쟁은 끝나고 퇴군하는 고니시군(軍)의 일부는 낙오한다.

그 낙오된 병사들중에 도모유키가 있었고

낙오병에게 살해되는 조선여인들을 보면서 명외의 환영을 본다.

그는 명외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서 홀로 일탈하고

명외를 처음만났던 마을에 이르러 쓰러져 죽고만다.

 

한 군인의 사랑의 이야기이지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징병된 일본군들에 대한 관심이 더 컸던 것이다.

대장장이의 아들로 조금은 모자라고 굼뜬 아이 도네,

다이묘의 성에 끌려갔다가 조선으로 출병된 히로시,

그들은 우리와 반대의 자리에 서있던 또다른 민초였다. 

전쟁은 모든 평화를 앗아갔다.

시골 대장장이의 하나밖에 없던 아들 도네를 잃게하고

한 농가의 가장인 히로시를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은채 출병시키고

부상입은 그를 귀국시킨다고 꾀이고는 선상에서 목을 잘라

명나라 협상테이블에 일조케 한다.

간파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개 사욕이 조선뿐만 아닌

일본의 민초들에게도 사람의 터전을 잃게 했던 것이다.

그들이 출전하여 조선인들을 살해하면서도 생존을 걱정하고

귀향을 손꼽아 기리는 그것은 조선인의 그것이기도했다.

 

아무리 소설의 형태라지만 한국인으로서 일본인을 화자로하여

소설을 쓴다는 것은, 더구나 임진왜란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작가로서도 큰 부담이 아닐수 없었을게다.

하지만 이런 신선한 소재가 독자의 독서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는 점에서 호평하고 싶다.

도모유키의 사랑, 도네와 히로시의 귀향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귀한 소설 한편이 쥐어지게 되었다.

 

2005. 8. 8 이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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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여관
임철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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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 선생의 신간 <백년여관>을 읽었다.
책 후기에 이르러 작가는 '관악산 기슭에서...'라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관악산 기슭을 오르는 서울대행 마을버스 안에서
그 마지막 쪽을 넘기고 있었다.
소설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어떤 영혼이 내게 신접한 것은 아닌지
내심 움찔한 느낌이 들었다.

출발은 자전적 내용을 밑절미로하여 나갔다.
80년 광주를 5권으로 써낸 소설 <봄날> 출간 이후,
깊은 수렁에 빠진듯 여러해를 보낸 작가가
여전히 시간과 장소로 대변되는 우리 현대사의
5.18 광주, 4.3 제주, 그 허리에 있는 6.25 한반도에 신음한다.
그러던 중 어디에선가 들려온 음성...
80년 광주에서의 일에 대해 용서를 청하지 못한체 떠나보낸 선배 K,
그러다가 무심코 떠난 그림자 섬, 영도,
그곳에서 과거 100년의 역사동안 개죽음을 당한 영혼을 만나고,
그 영혼들로 인해 한생을 고통받는 지금의 사람들을 만난다.
멀리 일제의 침탈 속의 상처까지는 긁어내지는 않았지만
소설의 제목 '백년'을 생각해보면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4.3으로 폐가지경이된 제주도 강씨집안이 뭍으로 건너와 정착하지만
결코 평온을 갖지 못한체 승천못한 영혼들로 고통스러워하고
6.25로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린 재미교포가 50여년만에
생의 마지막 용기로 찾아와 실마리를 찾는 모습,
베트남 전장에서 한쪽팔을 잃고 인간성까지 함께 두고온
파월 청년의 술의 힘으로 지탱하는 실패한 삶.....
또한 5.18로 삶이 산산조각나고 거기다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까지
어깨에 짊어지고 현재를 영위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림자의 섬 영도에서 비로소 화해하게 된다.

화해.... 그 화해가 없다면 우리네 삶은 온통 검은색이었을것이다.
이 소설은 무속의 힘을 빌어 굿으로 씻겨내고 화해한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인간사의 오묘함과 불완전함이란....
그 어두운 영혼들이 악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우선된 피해자이고 제대로 눈감지 못한 영일뿐이다.
가족인 살아남은 자들은 그렇기에 가슴속에 자두만한 멍울 잡아가며
한세상 고단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화해의 기회가 왔다.
때로는 환청으로, 때로는 꿈으로, 때로는 스산한 바람으로 다가온
그 골육들을 만나 폭포수 같은 눈물 끝에 씻김굿 한 것이다.
옳다. 이제는 화해가 ‰榮?
백년여관에 드리운 그늘도 개이고 관계된 모든이들의 한도 풀렸다.
그런 해피엔딩이 아니었다면 이 소설의 출간은 비극이었을게다.

소설을 읽으면서 일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렸다.
아들 여덟 낳아서 다섯을 잃은 어머니가 갖고 살은 화(禍/火),
그중 똑똑해서 없는 살림에 농업학교까지 보냈던 아들이
6.25 전란중에 끌려서가 안성 운동장까지 매일같이 산너머 간 분.
평생 90도 꺾인 허리를 가지고 농투성이로 살아오면서
한가 설움을 혼자만의 노동과 노래로 풀었던 분.
바로 <백년여관>의 등장 인물과 흡사하지 않았던가.
또한 한가지 더 느낌을 적자면 이 여행같은 삶 속에 여관의 존재,
그 낯설지만 아늑한, 적막하고 슬프지만 고단한 한몸 뉘울수 있고,
소설에서처럼 화해할 수 있는 공간....
진정 그런 여관을 갈망하는 내 내면을 느낄수 있었다는 것이다.

임철우 선생의 <백년여관>은 작년에 한겨레를 통해서 연재되었던
<우리 사이에 강이 있어>를 엮어낸 책이다.

2004. 12. 27 밤 이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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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처럼 말하고 싶다 - 이제민 신부의 자전적 신학 에세이
이제민 지음 / 생활성서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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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처럼 말하고 싶다> 이제민(생활성서 2002)

'하느님의 언어에 바탕을 두지 않은 각자의 소리만으로는 누구와도 진지하게 만날 수 없다. 성령강림 날 체험한 이상한 언어는 소리가 아니라 언어이다. 그것은 다른 언어이다. 하느님이 인간의 언어로 이야기하시되, 인간의 수만큼 다른 언어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로 인해 하느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의 언어를 알아듣고, 다른 언어 속에 숨어 있는 하느님의 복음을 자신의 언어로 알아듣게 된다.'(본문 151~152)

언어학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신학자의 말이다. 한국 그리스도교회가 갖고 있는 시선에서 조금 비껴난 듯한 삐딱한 말이다. 그러나 이 얇은 에세이를 읽고 난 후의 느낌은 격렬한 파도 그 이후와도 같았다. 하느님의 음성을 대신 듣고 전해주는 성직자의 '신도'가 아닌 하느님의 입김을 통해 영혼을 받은 평등한 '신도'를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글쓴이인 이제민 신부는 여기서 제사장의 통역을 거부하고 당당히 신과 대화하는 인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묻는다면 헛되게 오독한 결과일까? 인간이 잃어버린 하느님의 언어를 찾길 바라는 이제민 신부의 간절한 외침은 광야에 울부짖는 소리와 같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는 신학 또한 평신도의 신학을 주장한다. 그러기에 그는 불교의 원효대사에 주목하고 있으며 공통된 의미를 찾으려 애쓰고 있다. '신학의 무대는 '나'다. 바로 '내'가 삼위일체 드라마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다'라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무대다. '나'라고 하는 이 무대에서 하느님과 내가, 예수님과 내가 그리고 교회가 주인공이 되어 장엄한 드라마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본문 23~24)라는 문단의 글처럼 우리의 하느님에 앞서 나의 하느님을 먼저 의식하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알 수 있다. 이런 주장은 그의 이력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무조건 믿음'의 계율을 거부하는 신학생 시절의 위험한 사고(?)가 얼마나 진보적인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리꾼이 막힌 목에서 피를 토하고 득음하듯, 그는 의심에서 신앙(또는 신학)의 진정한 진리를 찾았던 것이다.

하느님의 언어는 어떤 것일까. 하느님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씀을 하시는데 여전히 다른 언어로 받아들이는 것은 역시나 보잘 것 없는 인간의 무지는 아니였던가. 그래서 예수님은 친히 기도를 지어 가르쳐 주시며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우리는 이제 언어를 배워야 한다. 하느님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이제 신학을 배워야 한다. 삶에서 대화하는 하느님 언어의 신학을 매 순간 학문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갈망한다. '그분처럼 말하고 싶다'는 간절한 기도로서 목마른 자의 목에 황금과 몰약보다도 값진 생명수를 부어줄 하느님의 언어를 갖길 바라고 또 바라는 것이다.
2003. 7. 24(목) 이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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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 혜원세계문학 51
A.J.크로닌 지음 / 혜원출판사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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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무던히도 신앙의 갈증이 심했던 나는 무심코 찾은 서점에서 한권의 책을 샀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소설 속의 치셤신부를 다시 만났다. '구원은 교회 밖에도 있다'는 교리를 1960년대에 들어서야 제2차바티칸공의회를 통해서야 인정했던 가톨릭인데 영국인 선교사 프랜시스 치셤 신부는 1900년대 초반을 살면서 다양한 <천국의 열쇠>를 말해주었던 것이다.

신앙의 유아시절, 이 한권의 책을 통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남들의 눈에 비치듯 결코 성공하지 못한 치셤의 일생을 보며 과연 하느님은 어디 계신지를 물으며 울었고 그의 교파와 민족, 그리고 어떠한 문명화된 겉치레를 떠난 '낮은 자리'로의 모습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어린시절 행복한 가족의 생활을 한순간 홍수로 잃어버린 치셤은 외가에 맡겨져 심한 핍박속 얼마간을 지낸다. 그러다가 폴리아줌마의 운명적인 구원으로 작은 행복을 되찾는다. 마음속으로 애틋한 감정으로 함께했던 노라와 헤어져 신학교에 들어간 치셤은 노라의 방황과 실패, 그리고 자살을 통해서 또다른 상처를 경험하며 결국은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길을 선택한다. 신학교 교장이었던 맥납 신부만이 그의 운명과도 같은 실패의 삶을 이해했던 것 같다. 몇군데의 보좌신부의 생활을 통해 정통교계의 벽에 부딪친 치셤은 머나먼 지구 반대쪽의 중국의 땅에 선교사로 발을 딛게 된다.

돈으로 교세를 부풀렸던 전임자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치셤에게는 신자수가 중요하지 않았다. 의료를 베풀지만 결코 하느님을 믿으라는 말을 건네지 않았다. 지방의 토호 챠씨의 외아들을 살렸을때도 그 대가로 신앙을 받아들이겠다는 말에 치셤은 단호히 거절했던 것이다. 그런식의 신앙이 얼마나 부실한 것인지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쉽게 경험하고 있다.

흑사병이 돈 지역을 버리지 않고 그는 수녀와 친구 탈록과 함께 맞섰다. 그리고 교회를 위협하는 무력의 세력에 슬기롭게 대처하여 구해낸다. 자신을 미워하는 수녀와 극적인 화해를 나누기도 한다. 홍수로 수년에 걸친 성당을 잃었을 때 그 모습을 비아냥거리는 어린시절 친구이자 동료신부인 안셀모의 조롱에도 그는 결국 이겨냈다. 개신교 세력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 그는 같은 형제로서 그들을 맞이하고는 기꺼이 선임자로서 도움을 주겠다고 악수를 청했다.

이렇게 30여년간의 중국 벽지에서의 그만의 선교는 비록 영국 포교본부의 현황표 그래프가 실망스러울지라도 지역의 주민들 속에 밀알이 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마적단의 기습을 받았고 은퇴하여 영국으로 돌아왔다. 미사에서 노자와 공자를 이야기하고, 부유한 부인에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비유로 질타하는 신부, 당최 권위나 점잖음 따위는 보이지 않는 신부를 내쫓으려고 조사위원을 보내지만 그 조사를 맡은 신부조차도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를 단숨에 찢어버리고 성당을 떠난다. 결국 하느님께서 치셤의 편에 서주신 것이고 진정한 신앙의 삶이 어떤 것인지 치셤을 통해 보여주신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쯤에서 나는 얼마전 50여일의 대장정을 마친 새만금 간척사업반대와 평화를 위한 삼보일배 일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교회와 절의 강단이 아닌 작열하는 아스팔트 길로 기꺼이 나서서는 삼보일배하며 저 멀리 부안땅에서 서울 한복판까지 묵언의 고행을 해온 네분의 종교인들을 보며 치셤신부를 투영시켜보다. 교의를 떠나, 사소한 차이를 떠나,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대전제 하나만으로 그 먼 거리를 함께하며 때로는 서로 보듬어주고, 때로는 위로하고, 때로는 땀 닦아주며 서울까지 올라온 그들의 공동선을 위한 수행을 보면 치셤이 보여준 삶은 결코 소설 속에서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이 보기에 실패한 삶일지라도 하늘의 판단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흔한 진리를 가장 감동깊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꾸부정한 치셤이 안드레아를 데리고 낚시하러 떠나는 모습에서 끝난 마지막 소설의 장면은 이후 우리 가슴속에서 계속 이어져 쓰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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