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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여관
임철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임철우 선생의 신간 <백년여관>을 읽었다.
책 후기에 이르러 작가는 '관악산 기슭에서...'라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관악산 기슭을 오르는 서울대행 마을버스 안에서
그 마지막 쪽을 넘기고 있었다.
소설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어떤 영혼이 내게 신접한 것은 아닌지
내심 움찔한 느낌이 들었다.
출발은 자전적 내용을 밑절미로하여 나갔다.
80년 광주를 5권으로 써낸 소설 <봄날> 출간 이후,
깊은 수렁에 빠진듯 여러해를 보낸 작가가
여전히 시간과 장소로 대변되는 우리 현대사의
5.18 광주, 4.3 제주, 그 허리에 있는 6.25 한반도에 신음한다.
그러던 중 어디에선가 들려온 음성...
80년 광주에서의 일에 대해 용서를 청하지 못한체 떠나보낸 선배 K,
그러다가 무심코 떠난 그림자 섬, 영도,
그곳에서 과거 100년의 역사동안 개죽음을 당한 영혼을 만나고,
그 영혼들로 인해 한생을 고통받는 지금의 사람들을 만난다.
멀리 일제의 침탈 속의 상처까지는 긁어내지는 않았지만
소설의 제목 '백년'을 생각해보면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4.3으로 폐가지경이된 제주도 강씨집안이 뭍으로 건너와 정착하지만
결코 평온을 갖지 못한체 승천못한 영혼들로 고통스러워하고
6.25로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린 재미교포가 50여년만에
생의 마지막 용기로 찾아와 실마리를 찾는 모습,
베트남 전장에서 한쪽팔을 잃고 인간성까지 함께 두고온
파월 청년의 술의 힘으로 지탱하는 실패한 삶.....
또한 5.18로 삶이 산산조각나고 거기다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까지
어깨에 짊어지고 현재를 영위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림자의 섬 영도에서 비로소 화해하게 된다.
화해.... 그 화해가 없다면 우리네 삶은 온통 검은색이었을것이다.
이 소설은 무속의 힘을 빌어 굿으로 씻겨내고 화해한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인간사의 오묘함과 불완전함이란....
그 어두운 영혼들이 악은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우선된 피해자이고 제대로 눈감지 못한 영일뿐이다.
가족인 살아남은 자들은 그렇기에 가슴속에 자두만한 멍울 잡아가며
한세상 고단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화해의 기회가 왔다.
때로는 환청으로, 때로는 꿈으로, 때로는 스산한 바람으로 다가온
그 골육들을 만나 폭포수 같은 눈물 끝에 씻김굿 한 것이다.
옳다. 이제는 화해가 榮?
백년여관에 드리운 그늘도 개이고 관계된 모든이들의 한도 풀렸다.
그런 해피엔딩이 아니었다면 이 소설의 출간은 비극이었을게다.
소설을 읽으면서 일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렸다.
아들 여덟 낳아서 다섯을 잃은 어머니가 갖고 살은 화(禍/火),
그중 똑똑해서 없는 살림에 농업학교까지 보냈던 아들이
6.25 전란중에 끌려서가 안성 운동장까지 매일같이 산너머 간 분.
평생 90도 꺾인 허리를 가지고 농투성이로 살아오면서
한가 설움을 혼자만의 노동과 노래로 풀었던 분.
바로 <백년여관>의 등장 인물과 흡사하지 않았던가.
또한 한가지 더 느낌을 적자면 이 여행같은 삶 속에 여관의 존재,
그 낯설지만 아늑한, 적막하고 슬프지만 고단한 한몸 뉘울수 있고,
소설에서처럼 화해할 수 있는 공간....
진정 그런 여관을 갈망하는 내 내면을 느낄수 있었다는 것이다.
임철우 선생의 <백년여관>은 작년에 한겨레를 통해서 연재되었던
<우리 사이에 강이 있어>를 엮어낸 책이다.
2004. 12. 27 밤 이용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