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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트 베어스 - 곰, 신화 속 동물에서 멸종우려종이 되기까지
글로리아 디키 지음, 방수연 옮김 / 알레 / 2024년 8월
평점 :
전 세계의 곰종이 서로 매우 다른데도 불구하고 현재 곰 여덟 종은 모두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함께 곤경에 빠져있다.
- P. 036
곰....
나의 기억 속에 가장 오래 저장되어 있는 곰의 기억을 떠올려 봤다.
아마도 6살이 갓 넘었던 때, 나는 심장수술을 받기 위해 뉴욕을 향하던 참이었다.
사실, 그 곳이 어디었는지 정확한 지명을 알지도 못하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 자란 후에 가족을 통해 알게 된 나의 항공루트와 병원 기록지만이 그런 일들이 있었다고 증명해 줄 뿐...
그럼에도 딱 두가지 명확하게 기억나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엄청나게 큰 곰이 잇몸을 드러내고 있었던 어느 공간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술방의 커다란 불이 켜질 때 기억을 잃었던 순간이다.
내가 탔던 비행기는 서울을 출발해 앵커리지를 경유해서 뉴욕으로 향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때 내가 보았던 그 곰은 알라스카 공항에 디스플레이 되어 있었던 북극곰이었다.
출처 : https://images.app.goo.gl/EHhJ1EV25bZE1KDL8
곰이란 그런 동물이었다.
한번 뇌리에 박히면 절대 지워지지 않는...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모습은 좋고 나쁨으로 판단되어 지지는 않았다.
그저, 그 앞에서 넋을 잃고 전율했을 만큼 강렬함만 남아 있을 뿐...
사진 : 캐나다 로키의 고속도로에서 만난 곰 가족
에이트 베어스를 읽다 보니 나는 꽤나 운이 좋은 삶을 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지구상에 현존하는 딱 8종의 곰!
그 중 2종의 곰(미국 흑곰과 불곰)은 자연의 상태로 그리고 나머지는 동물원에서라도 살아 움직이는
모습들을 직접 볼 기회를 가졌으니 말이다.
사진 : 보르네오, 록카위 동물원에서 만난 태양곰 (말레이 곰 : Malayan Sun Bear)
20대 코타 키나발루에 살면서 만났던 말레이 곰 (태양곰),
절멸의 위기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자그마한 체구가 너무 귀엽다고 생각했던 태양곰이다.
뜨거운 열대의 정글에 적응해서 사는데다 겨울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담즙 체취용으로 사육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1년 365일 고통을 가할 수 있다는 말)
심지어 겨울잠을 자지 않으면 담즙에서 얻으려 하는 우르소데옥시콜산이 10%도 채 분비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과잉 염려증은 한 동물을 아주 고통스럽고 잔인한 방법으로 멸종으로 몰고가고 있다.
사진 : 로키 재스퍼 페어몬트 파크 로지의 곰 장식
미국과 캐나다는 또 다른 방향에서 곰들과 대립한다.
북미는 곰을 보호하고 복원해 내는 것에 어느정도 성공을 이루었지만 개발, 목축(농업), 관광, 레져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생활 반경이 넓어진 사람들의 영역과 곰의 영역이 맞물리는 공간에서 잦은 충돌이 생겨 버린 것이다.
사진 : 캐나다 로키, 곰 출몰 지역 트레일의 인원수 제한 안내문
내가 미국에 있던 당시에는 곰이 제법 흔한 동물로 생각 될 만큼 일상에서 접촉의 범위가 넓다고 느껴졌다.
직업이 트레일 가이드였던 것도 있었지만, 곰으로 만들어진 모형(인형, 조각상 등)이나 각종 관광상품 & 기념품 때문에 일상에서의 노출 빈도가 높았던 영향도 있다.
게다가 총기 소지가 가능하고 사냥철에 허가를 받으면 곰을 사냥 할 수 있다는 것도, 곰이 흔하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살아 있는 생명을 빼앗아 나의 사욕을 채우는 것을 반대하지만 어느 한편에선 그 행위가 생계와 관련된 사람도 적지 않았고, 그 사람들과 인연이 닿는다던가 일상의 접촉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기에 곰에 대한 경계나 보호가 쉽게 해제될 요소들이 많이 있어다.
우리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인든 너무 자연 깊숙히 곰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의 습성을 바꾸어 놓을만큼 인류의 행위들은 곰들을 유혹하고 있다.
에이트 베어스, 저자가 오랜동안 공을 들여 찾아 다녔던 곰들에 대한 글들을 읽으며, 이 곰들을 대면했던 순간에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깨닫지 못했던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좀 더 오래 눈에 담고, 감사한 마음을 품었어야 옳았다.
우리의 후손들은 이런 곰의 모습을 알라스카에서 만났던 북극곰처럼 박제의 모습으로만 만나게 될까 염려 스럽다.
아니면 우리가 단군신화에서 들었던 '웅녀'의 이야기 처럼 신화로만 존재하게 될까봐 두려워진다.
제법 두꺼운 책이지만 답은 심플하다.
전 인공 사육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그게 대왕판다 보전의 열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왕판다가 사는 서식지와 산림을 보호해야죠.
그럼 알아서 잘 살아갈 겁니다.
- P. 195
곰들이 아니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유기적으로 알아서 잘 살아가는 세상이 오기를 바래본다.
* 도서 '알레'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