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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음악 - 양차 대전과 냉전, 그리고 할리우드
존 마우체리 지음, 이석호 옮김 / 에포크 / 2025년 7월
평점 :
나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이지만, 왜 클래식 음악계는 대략 백년전까지의 레파토리만 사랑하고 연주하는지, 왜 ‘현대음악’은 백년째 계속해서 대중이 이해하기도 어렵고 사랑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최대한 좋게 봐주어야 ‘흥미롭다’에 그치는 아방가르드 음악이어야 하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내가 클래식 음악을 처음 듣기 시작한 1980년대에는 그것이 기본값이었고, 지금까지 거의 그러했던 것 같다.
책을 읽어보니 알게 된 것은 우리가 사는 현재와 과거의 클래식 시대를 돌이길 수 없이 갈라버린 깊은 크레바스를 만든 것은 양차대전과 파시즘, 냉전이었다는 것이다.
1차 대전후 독일에 나치즘이 득세하자 유태인으로 분류당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의반 타의반 미국으로 이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당시에 열린 헐리우드 유성영화의 시대에 걸맞는 수준높은 영화음악을 썼다. 그런데 우리는 헐리우드 음악을 깎아내린다.
한편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치하에서 당대의 음악가들은 파시즘에 부역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부역하여 살아남은 그들의 작품은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자 몽땅 삭제를 당하게 된다. 푸치니는 병으로 일찍 죽어서(1924년) 아슬아슬하게 파시스트 정권과 연관이 없었다고 한다. 만약 건강해서 몇십년간 더 활동했다면 우리는 지금 라보엠도 토스카도 투란도트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또 2차 대전후 냉전기 미국에서는 소련에서 박해받는 ‘현대음악’을 옹호하면서 자기네 체제의 우수성을 증명하려고 했다. 그래서 20세기 초반 반짝 개화했던 전위음악은 무려 백년동안을 여전히 ‘전위’인 채로 ‘현대음악’을 지배한다.
이렇게 삭제하고 삭제하고 제한된 클래식 음악은 결국 백년전것밖에는 남지를 않는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다른 20세기의 음악들-영화음악, 뮤지컬, 재즈, 블루스, 포크, 락, 테크노, 월드뮤직 다 훌륭하고 멋지지만 클래식 음악인은 특히 그 훈련과 공부의 강도와 깊이가 정말 남다른데, 그 고급인력들을 너무 좁다한 영역 안에 가두고서 다른 영역과 엮어서 발전하는 길을 막는다는 것은… 정말 크나큰 손해 같다.
정말 훌륭한 책이다. 클래식 애호가 모두가, 영화음악 애호가 모두가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