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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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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정을 배워가는 로봇’은 사실 흔하다면 흔한 소재인데 이 ‘세탁소에 사는 로봇’은 특별하다.
더구나 ‘로봇’이 나름 흔한 소재가 되었다고 해도 역시 재미있는 소재임은 변함없는 것 같다.
올해만 「위저드 베이커리」, 「아가미」 그리고 이 소설까지 3권을 읽었는데 그 중에 이 책이 제일 좋았다.
결핍없는 사람이 어딨겠냐만은 이 작가님은 결핍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 잘 풀어가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3권 모두 마법사, 아가미를 가진 소년, 로봇 등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하나씩 등장하는 것은 우연인지…
딱 꼬집어 말해보자면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그 아들이 마지막으로 남기 로봇을 만나 ‘은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자신이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가족 비슷하게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세탁소가 있는 동네는 낡고 오래된 동네인데 그런 동네에서 고만고만하게 먹고사는
비슷한 처지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는 또 그렇게 리얼하다.
P.68
이제 집에 가는 대로, 학원 마치고 밤늦게 돌아올 오빠를 위해 저녁을 차리라는 엄마의 당부에 고개만 까딱해 보이고 6인실을 나선다. 페인트 냄새를 풍기며 밤새 아빠의 상태를 돌볼 엄마, 평생 자기 집이란 걸 가져본 적 없는 엄마는 남의 집 다용도실을 초조하게 도색하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다. 그리고 한번 질문을 삼키면 그것이 식도를 지나 위장에서 분해된 다음 몸 밖으로 영원히 배출되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삭지 않는 밥알처럼 언제까지고 명치에서 맴도는 거 말고.
P.120
명정은 볼펜으로 수많은 숫자를 기입하고 그 위에 줄긋기를 반복하지만 그 행위가 없던 것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숫자의 추상성은 구체적인 현실을 압도한다. 그는 아들을 먼 나라로 보내지 않았더라면 혹시 굴릴 수 있었을지 모를 기회비용과, 휴지 조각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서 처분한 주식과 보험, 대출금을 다 갚기가 무섭게 매도해야만 했던 자가 주택 등을 떠올린다. 안정된 노후는 진작 글렀지만 최소한 빚에 올라앉지는 않을 수도 있었을 모든 선택과 시회의 순간을 그려본다.
P.125
아니다. 그게 아니다. 어쩌면 지친 것이다. 일단 학교에 다니지 않는 상태에서 알바비가 들어오니, 제 손으로 번 것을 한 번쯤 자기만족 이상의 의미가 없는 일에 뿌려보고 싶은 것이다. 이런저런 꿈이니 열망들과 한데 겸쳐서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새어나가게 두고 싶은 것이다. 한 번은 두 번이 되고, 세 번을 넘자 일상이 된다. 이 파우더를 사지 않으면 저 부교재를 살 수 있다거나, 캐러멜 마키아토 40잔을 참으면 학원 1개월을 다닐 수 있다는 환산 따위가 지긋지긋해진다. 손에 들어온 대로 써보고 싶어진다. 또래 애들이 하는 것을 따라해보고 싶다, 거기서 남는 것이 환멸과 지루함뿐이더라도. 어차피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해야 할 일만 하더라도, 사람은 살아 있는 이상 돈을 쓰게 된다. 숨만 쉬면서 살아도 비용이 든다. 숨을 쉬는 일, 입을 여는 일 자체가 극도의 무게를 동반하는 것이다.
P.170
그러나 사람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면서 살아갈 수 없다. 대개 적의와 비난의 언사로 흘러넘치는 세계에서 그나마 들어줄만한 말이라곤 공허한 말장난이나 모호한 비유 정도일 것이다. 그 밖에도 만나고 싶지 않은 얼굴들을 마주 대하며, 하기 싫은 일을 많이 양보해서 다섯 번 가운데 한 번은 하고, 맞추고 싶지 않은 분위기를 띄우며, 때론 누군가를 휴지통으로 삼기는커녕 누군가 뱉어낸 쓰레기를 자신이 기꺼이 삼켜주는 일도 한다. 그러므로 시호는 조율과 적응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스스로의 욕망을 누르거나 지우는 데 익숙해질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고즈넉한 동네에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로봇을 아들삼아 훈훈한 동네 사람들과 행복하지만 소소한 일상을 꾸리고
인간을 닮은 로봇이 점점 인간의 감정을 배워간다는, 어찌보면 대단히 동화적인 그런 소설일 줄 알았다.
그런데 읽을수록 그건 다 오산이었고 현실은 냉혹하고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먹고사는 고단함과 만연한 불의와 심심찮게 찾아오는 불행들까지 삶을 참 잘 꼬집어 낸다고 감탄 할 수밖에 없었다.
또 그런 인간의 삶을 인간이 아닌 로봇 은결의 시각을 통해 보면서
오히려 더욱 인간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부각하고 통찰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점점 매뉴얼과 설정이 아닌 무언가를 따라 움직이고 무언가를 궁금해하고 인간에 대해 알아가고, 이해하는 것이 많아지고
‘하고싶다’는 느낌을 알아가는 은결을 보면서 ‘인간다움’이 뭔지 새삼스레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이건 영화감이다!’하고 생각했다.
담담하게 일상을 타고 흘러가는 전개가 어느 하나 버리는 부분 없이 꽉 짜여 단단하게 이어진다.
전개도 탄탄하고 장면 장면마다 버릴게 없어서 나름대로 감독이 되어연출과 분위기를 떠올려보는 재미가 있었다.
오랜만에 인생책을 만난 것 같다.
◆◆◆
P.24
그럼에도 설명서를 독파한 끝에 내린 결정이란, 일상생활이야 차츰 들려줘서 배우게 하면 되고
나머지는 뭐가 됐든 기계이니 물과 불에 닿지 않게 조심하면 그만 아니냐는 거였다.
P.26
영원히 부를 일이 없을 줄로만 알았던, 그러나 상상 속에서 수도 없이 불렀기에 낯설지 않은 존재의 이름이
구체적인 발음과 형태를 띠고 혀끝에서 흘러내리는 순간, 그는 이 유용한 도우미를 가족 비슷하게 맞아들이기로 결심했다.
P.42
“못 알아들었으면 잊어버려. 중요한 거 아니니까. 아까 시호가 하겠다 해보겠다 뭐 그런 소리 해쌌지.
거기 하나 추가하자. 넌 지금 한다와 하지 않는다밖에 몰라. 시호가 얘기한 해보겠다가 뭔지 회로를 잘 굴려봐.
그리고 하고 싶다가 뭔지도. 최종 응용 코스라면….. 뭐가 있을까. ‘하고 싶지만 하지 않는다’가 어떤 의미인지도 말이다.”
P.73
“당연하지 않아? 사람이 셋 탔는데 세 명이지.”
시호가 그렇게 말하자 은결은 이 버스에 머물러 있는 동안만은 자신이 승객의 수하물 아닌 사람으로 간주될 것임과 더불어,
그때 갑자기 인공심장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거세어짐을 인식한다.
P.81
“이거 다 너야. 알지?”
그 상 안으로 익숙한 얼굴이 들어오자, 폭발 직전으로 수행되던 은결의 연산 속도는 안정 범위에 접어든다.
그녀의 얼굴이 나란히 놓이자, 수많은 상의 겹침 한가운데서도 그것이 동일한 그녀임을 알아볼 수 있다.
그녀가 옆에 있음으로 인해 은결은 무한히 반복되는 자기가 자기임을 인식한다.
P.83
“너는 네가 원하면, 아무 때고 어디든지 가도 된다.”
원하면, 이라는 조건절이 은결에게 합당한지 마음에 걸리지만 명정은 말을 이어간다.
“전원이 나가기 전에, 여기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말이다.”
P.92
그럼에도 스스로의 가능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맑고 치열한 눈매와,
이 세상에 잠복한 모순의 전염성과 지뢰처럼 매설된 불의의 무늬를 인식하면서도
거기에 도무지 질 것 같지 않은 미소를, 고단한 시기에 예민하나 나이까지 잃지 않고 지켜왔다는 점을 명정은 높이 산다.
P.95
“여기가.”
은결은 한 손으로 제 귓바퀴를 잡아당겨 보이며 말을 잇는다.
“붉은색입니다.”
“뭐?”
“이 상의와 비슷한 색상 값으로 파악됩니다.”
“닥쳐.”
“예.”
P.99
한다. 하지 않는다. 하고 싶다. 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만 하지 않는다.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한다.
그때는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하고 싶지 않은데 언제 다시 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하다라는 기본형 동사에 따라붙어 나오는 수많은 분열체들 사이에 놓인 의미의 거리를 은결은 이론으로 익히긴 했으나 발화 시 오류가 따른다.
사람들 또한 직접 실행에 옮기거나 겪어보지 않고 글로만 배운 지식은 뜻대로 잘 활용하디 어렵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남의 그림을 보고 화풍을 외울게 아니라 붓을 쥐어야 하며,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선 악보만 들여다볼 게 아니라 악기를 직접 잡아야 한다.
P.121
그러다 체머리를 털며 아무도 밟지 않은 흰 눈밭처럼 머릿속을 비워보려 애쓰지만.
언제까지고 그의 눈밭은 회백색 얼룩과 진창,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낸 수많은 발자국과 바퀴 흔적들로 가득하다.
P.156
“괜찮아. 형태가 있는 건 더러워지게 마련이니까.”
“그래도 사람들은 지우고 또 지웁니다. 어차피 다시 졸릴 테니 잠자리에 들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는 않는 것처럼요.”
(...)
“그래, 네 말대로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우고 또 지우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아무리 약품을 집중 분사해도 직물과 분리되지 않는 오염이 생기게 마련이듯이,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 이르면 제거도 수정도 불가능한 한 점의 얼룩을 살아내야만 한다.
부주의하게 놓아둔 바람에 팽창과 수축을 거쳐 변형된 가죽처럼, 복원 불가능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P.168
“바로 그래서야, 공연히 너를 붙들고 주절거린 이유가. 너는 어차피 전후 맥락이 없이는 이 길고 복잡한 이야기와 안에 담긴 권력이니
포즈니 관계들을 알아듣지 못할 테니까. 알아듣지 못하면 섣불리 이해하는 척하지도 않을 테고, 나를 탓하지도 않을 테니까.
그 점이 편리해서 그랬어 내가. 이런 얘기 달리 어디다 하겠니.”
그는 완성하지 못한 그림을 품평하지 않고, 색과 선과 기법을 알지만 이미 그어지고 만 것에 대해 가치를 따져 묻지 않을 것이다.
회환을 유도하지 않고 가만히 기대도 되는 벽처럼 거기 앉아 있다.
P.169
“그러니까 죄송하게도, 들려주신 이야기 속에 인물이 대략 21인이나 등장하고 약간의 생략된 맥락들이 있어서 모든 조각을 다 맞추지는 못합니다만,
그래도 중요한 사실만은 알아들었습니다. 당신은 자리를 피하지 않고 당신이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해냈고, 부자유한 사람과 그 가족을 위할 줄 알면서,
동시에 다른 손님들의 권리를 소홀히 다루지 않기 위한 노력을 다했다는 점입니다. 비록 소극적인 형태라고 하겠으나 불의에 저항하기를 그만두지도 않았습니다. 선의가 항상 보답으로 돌아오는 건 아니기에 당신은 부당한 곤경에 처했고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습니다. 그 이상 알아야 할 것이 달리 있습니까.”
P.173
그러나 사람이란 때로는 상대방을 향해, 자신조차 그 독법을 알지 못하는 행간을 읽어내달라는 부당한 호소를 거리낌 없이 하는 존재 아닌가.
P.175
그는 이제 그녀의 키를, 목소리를, 외모를, 냄새를 객관적으로 계량할 수 없다.
P.208
이해 불가능한 방식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구전을 통해 허황되게 부풀려지는 것들.
존재의 진실성 여부가 그것을 상상하는 사람들의 수긍과 인정에 달려 있는 것들.
잊어버린 채 방기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등 뒤에서 노크해 오거나 부지불식간에 덜미를 잡아채는 것들.
실체를 확인하고 분석하기 위해 과감히 렌즈를 들이대면 사라지는 것들. 그래서 때로 지나치게 의미가 부여되곤 하는 것들.
그러므로 존재하기를 그만둘 게 아니라면, 차라리 이해하기를 멈춰야 옳은 것들. 은결은 그 가운데 하나의 모습으로 그의 곁에 머물러왔다.
P.249
그는 인간의 시간이 흰 도화지에 찍은 검은 점 한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 점이 퇴락하여 지워지기 전에 사람은 살아 있는 나날들 동안 힘껏 분노하거나 사랑하는 한편
절망 속에서도 열망을 잊지 않으며 끝없이 무언가를 간구하고 기원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것이 바로, 어느 날 물속에 떨어져 녹아내리던 푸른 세제 한 스푼이 그에게 가르쳐준 모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