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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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6

2016.04.18 - 04.21

<책소개>

당신은 가족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까?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기대를 하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상처를 받는다. 그렇게 받은 상처들은 켜켜이 쌓여 어느 날 크고 작은 불화로, 사건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어린 시절 가족과 불화를 겪었다. 가족과 인연을 끊고 살다가 모든 가족이 죽고 나서야 저자는 그들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족이란 무엇인지, 어떤 의미인지도.

저자는 아이 없는 부부, 늦은 나이에 이혼한 친구, 연로한 부모님을 돌보는 중년의 자식, 늙은 자식과 살아가는 부모, 혼인이 아닌 파트너를 선택한 사람들 등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는 가족들과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단란한 가족'에 대한 환장을 걷어낸다. 또한 가족이 가족답게 살아가려면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의 인격을 되찾는 것이라고 설득한다.

이 책은 출간 즉시 아마존과 기노쿠니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일본 사회에 뜨거운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베이비부모 세대가 고령화되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면서 일본은 가족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가 출현하고 있는 상황이다. 별반 다르지 않는 작금의 대한민국에서도 이 책은 가족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고도 새로운 논란과 성찰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

'심리 일반학'의 탈을 쓴 '에세이'같은 느낌이었다.

인터넷에서 이 책을 추천하는 포스트를 보고 제목에 혹해서 구매한 것인데 내 기대와는 많이 다른 책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의 '행동지침'을 담은 책이나 심리학적인 이론이나 설명이었는데

이 책은 자선적 느낌의 책이었다. 심리일반학 책이라기 보단 '가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은 에세이 같았다.

또 놀랐던 것은 작가의 나이였다. 젊은 여자인 줄 알았는데 전쟁까지 겪은 중후한 연세의 작가였다.

초등학교 때 일본이 패전하고 이리저리 말을 바꾸는 어른들을 보면서 자신만은 '평생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 작가는

아나운서로, 캐스터로 또 작가로 활동하면서 반려를 만나 가족을 꾸려 살아가고 있다.

'전쟁과 패전'이라는 특수한 경험을 유년시절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또 이 작가가 전후에 일본이 반성 없이 전쟁 전 사상으로 돌아가는 행태를 비판하는 대목에서는 참 흥미로웠다.

P.39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바로 그날, 그때까지의 모든 가치관이 붕괴되었다. 나는 어른을 믿을 수 없었다. 부모나 학교의 선생이나 하는 말이 전과는 180도 달랐다.

패전은, 어떻게 보면 다른 가치관을 내세워 이 나라를 재건할 수 있는 큰 기회였다. 전쟁에 대한 반성과 잘못에 대한 추궁이 철저하게 행해졌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군대는 자위대라고 이름이 바뀌었지만 과거의 육해군을 기반으로 했고, 거기에서 불리는 노래 몇 가지도 옛날에 부르던 그대로였다.

독일에서는 전쟁에 대한 책임을 철저하게 추궁해 죄를 폭로했지만, 일본에서는 천황제가 그대로 유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전범이 국회의원으로 되살아나기도 했다.

(중략)

일본이 전쟁에 패한 그날, 나는 오로지 내 힘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P.194

그날 아이들이 저를 괴롭힌 이유가 당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군인이라는 것이 이유였어요.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군의 명령으로 조선에서 일본으로 강제 연행된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들의 가족도 아마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그 의미를 확실하게 파악한 저는 그들에게 미안했어요. 당신이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은 아니어도, 일본 육군의 행위인 것은 틀림없으니까요. 거기에서 비롯된 민족의 비극, 당신 대신 딸인 제게 화살이 돌아온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 책만 보자면 좀 아쉬운 면이 있었다. 신랄하긴 하지만 결국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 전개,

유산을 가지고 싸우는 형제들의 이야기를 하다가 일본의 노인복지가 어떻다느니 하는 이야기로 빠진다던가 하는 자꾸 연관없는 이야기로 빠져

흐름이 끊기는 것이 좀 거슬렸다.

P.47

과도한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부모가 낳은 자식이니 피로 이어진 관계이긴 해도, 엄연히 독립된 인격이다. 개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대로 옭아매서는 안 된다. 남편에게, 혹은 아내에게 기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P.48

자신이 아닌 남에게 기대를 품어서는 안 된다. 타인에 대한 기대는 낙담과 불평을 불러오는 최대의 요인이다.

P.63

괜히 어중간하게 서로를 좀 더 알고 싶다, 좀 더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알지 않아도 될 일까지 알게 되고 상처를 들쑤시게 되어 불행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야 오히려 행복한 것일지도 모른다.

P.143

연말의 가족 풍경 하면, 거실에 모여 앉아 귤을 까먹으면서 연말 가요대전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 장면을 상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 끔찍해.”

나 역시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가족끼리라는 편안함 속에 있는 느슨함이 싫다.

작가의 가족관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요약하자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때문에 가족에게 기대하지 말자'

'사람은 서로 이해할 수 없으니 가족을 이해하려들지 말자'인데 나도 어느정도 공감하고 이해하지만 약간 무책임하게 느껴져 좀 실망스러웠다.

마치 '이 문제는 풀 수 없는 문제니 그냥 마음속에 묻어두고 외면해라' 하는 것 같았다.

외면한다고 신경쓰이지 않을리 없는데...바로 이 문제에 대해 알고싶어 해답지를 열어봤더니 '정답은 없지롱' 하는 느낌이랄까...?

역시 책이 많은 지식과 지혜를 주지만 답을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작가가 계속 '구미에서는~'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것도 좀 별로였다. '깨어있는 지식인, 독립적인 여성, 지적인 여성'은 이러이러하게 사는

사람이고 그것이 옳다는 생각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느 부분에선 아주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다.

틀에 박힌 '이상적인 가족',사이 좋은 부모와 우애 좋은 자식들, 아버지는 권위 있고 능력 있고, 어머니는 헌신적이고 자애롭고, 아이들은 순종적이면서 늘 화목해야하는 가족, 이라는 이상적인 가족상이 모든 가족에게 강요되어서는 안되며, 가족이라도 개개인의 개성이, 생각이, 주장이 살아있어야 한다. 개인과 가족간의 균형이 중요하다.

늘 화목해야 '이상적인 가족'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개인을 꾹 눌러 숨기고 다툼도 언쟁도 없는 가족보다는 반목이 있을지언정 '내'가 누구인지 가족 안에서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족안에서도 내가 살아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족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이 부분에서는 아주아주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

P.6

절친한 친구나 친분이 깊은 지인과는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기 때문인지, 오히려 대화가 잘 통하고 잘 아는 경우도 많다. 정에 끌리지 않고 이성으로 판단하니까 정확하게 파악할 수도 있다.

그런 반면, 한 지붕 하래 긴 세월을 함께 산 가족에 대해서는 과연 뭘 알고 있는지 모호하다.

P.13

그러니 단란하고 화목한 가족이라는 환상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의 인격을 되찾는 것, 그것이 진정 가족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름길이 아닐까 한다.

P.33

가족은 한때의 시간을 공유한 후에, 헤어져 서로를 멀리에서 지켜보는 존재가 된다.

P.44

교육이란 부모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세계에서 갈고닦으며 쟁취해가는 것이 아닐까.

P.129

가족 사이에는 산들산들 미풍이 불게 하는 것이 좋다. 상대가 보이지 않을 만큼 지나치게 밀착하거나 사이가 너무 벌어져 소원해지면 가족만큼 까다로운 것도 없다.

P.182

말없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가 존재하지 않는 가족은 가족이라 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최근 절실하게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랑받음과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

P.187

자신의 마음조차 파악하지 못하는데,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은 주제넘는 일이다.

어느 시점에서 나는 포기했다. 가족이니까 말은 안 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들 믿지만, 표면적으로는 그럴 수 있어도 마음속 깊은 곳은 헤아릴 수 없다. 알고 있다는 착각에 가로막혀 오히려 타인을 볼 때만큼의 정확함마저 잃어버리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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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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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일단 제목부터 참 좋다.
책을 읽었다기보단 많은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눈 느낌이었다. 덕분에 내가 살아온 기적을 돌아보고 내가 살아갈 기적을 꿈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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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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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일단 제목부터 참 좋다.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되는 경우 제목에 비해 실망하기도 하지만 이번 책은 좋았다.


제목출처는 김종삼 시인의 ‘어부’라는 시라고 한다. 시도 참 좋다.

 

어부 - 김종삼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여 교수’하고 하면 떠오르는 우아하거나 깐깐한 이미지가 있는데 장영희 교수는 전혀 반대의 성품이셨던 것 같다. 약간 허술하시면서도 진솔하고 유쾌한! 소아마비에 장애인, 여러 번의 암투병...어찌보면 참 기구한 인생으로 끝날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참 많은 일을 이루어내셨다.

진부한 질문이지만 '내가 그런 환경이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막막하기만 하다...

 

에세이가 원래 그렇겠지만 주로 ‘나는 누구인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50이 넘어서도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을 보니 원래 삶이란 알기 어려운 것인가 보다. 지금 삶과 나 자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는 조금 위로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에세이라는 게 참 재미있다. 다른 장르와 달리 작가의 성향, 한 인간의, 한 사람의 삶과 생각이 담겨있고 그것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 매력인 것 같다.

본인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괜히 타인의 삶을 한 번 기웃거려보고 싶어지는게 인간이니까.

 

글 자체는 투박했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세련되기 위해 노력하는 문장 대신 진솔하고도 투박한 글이었다. 마치 작가 본인처럼.

2009년에 결국 간암으로 돌아가셨다는데 참 씁쓸했다. 제목처럼 ‘살아갈 기적’이 좀 더 많았으면 좋았을 것을…….

책을 읽었다기보단 많은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눈 느낌이었다. 덕분에 내가 살아온 기적을 돌아보고 내가 살아갈 기적을 꿈꿀 수 있었다.


◆◆◆​

 

 

 

 

P.105

“이모, 파리에도 개선문이 있고 로마에도 개선문이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는 개선문이 없어?”

순간 나는 답변이 궁해졌다.

“우리나라에는 대신 동대문, 남대문이 있잖아.”

“아, 그럼 동대문, 남대문이 개선문이야?”

“아니, 개선문은 아니고 그냥 대문이야.”

한 번도 남의 나라를 침략하거나 정복한 적이 없고 고래 싸움에 새우 역할만 했으니 개선문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P.118

그 여자의 말에 나는 적이 놀랐다. 단지 다른 사람의 눈길을 느끼기 위해서 그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다니. 나는 목발을 짚고 다니는 덕에 누구나 다 쳐다보는지라 남의 시선이 별로 달갑지 않은데, 그 여자는 그 시선 때문에 그 많은 노력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그 여자를 쳐다보는 것은 부러워서이고 나를 쳐다보는 것은 불쌍해서라고 하겠지만, 내가 살아 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을 넘지 않는다.

 

 

P.120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다. 내가 남의 말만 듣고 월급 모아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한 것은 몽땅 다 망했지만,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한 작은 선행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다.

 

P.140

또 어떤 청취자는 자신이 어떤 일을 했을 때 한 후배가 “사람이 되십시오”했는데, 그것이 자기 삶의 모토가 되었다고 했다. ‘사람이 되십시오.’ 사람이면 사람으로서의 기본이 있는데 그것을 지키며 사람답게 살라는 말이다. 아주 중요한 말이고 좋은 충고지만, 사실 나는 그 청취자의 인품에 더 감동했다.

사람이 되라는 말은 지금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전제로 하는, 아주 모욕적인 언사가 될 수 있는데, 그것도 윗사람이 아닌 후배에게 그런 말을 듣고도 불쾌하기는커녕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다면 그 청취자는 이미 다시 ‘사람’이 될 필요가 없는 훌륭한 사람일 것이다.

 

P.141

“그렇게 야단법석 떨지 마라. 애들은 뼈만 추리면 산다.”

(중략)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 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살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 길이다.

 

P.147

과거에 그들이 환상 속의 슈퍼맨이었다면 이제 그들은 진짜 슈퍼맨이 되었다. 우리 보통 사람들은 오래된 상처까지 이리저리 들추어내고, 그 상처가 없어질세라 꼭 끌어안고, 자신은 상처투성이라 아무것도 못 한다며 눈물 흘리고 포기하는데 이들은 여전히 꿈과 희망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P.157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의사 선생님이 나오셨다. 아무 말도 안 하셨지만, 표정이 병호의 죽음을 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바로 그때,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던 명수가 깨어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오줌 마렵다고!”

나는 친구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서 숨을 멈추었고 또 한 사람은 살아서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고 있었다.

(중략)

그리고 그날 이후 행복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세상에서 숨 쉬고, 배고플 때 밥을 먹을 수 있고, 화장실에 갈 수 있고, 내 발로 학교에 다닐 수 있고, 내 눈으로 하늘을 쳐다볼 수 있고, 작지만 예쁜 교정을 보고, 그냥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니까 가끔씩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자 친구와 데이트하고, 친구들과 운동하고, 조카들과 놀고, 그런 행복들은 순전히 보너스인데, 내 삶은 그런 보너스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P.163

삶에는 달콤한 꿈, 야망, 낭만적 환상, 별, 달, 장미 꽃밭, 아름다운 숲, 향기로운 미풍, 연인과 만나는 호텔 스카이라운지, 아이들이 분홍빛 조가비를 줍는 백사장이 있다. 또 삶에는 실패와 배신, 위험, 좌절도 있고 찌개가 타는 부엌, 악을 쓰고 우는 아기, 가족 간의 사소한 다툼들도 있다. 하나라도 더 팔려고 소리쳐 대는 시장 통에도, 노동자들이 등짐을 져 나르는 건설 현장에도, 어깨를 스치며 다니는 복잡한 거리에도 삶은 있다. 삶은 사람들이 울고 웃고 싸우고 상처를 주고받고 그리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곳이면 어디에든 있다.

 

P.196

아이러니컬한 것은, 나는 이제껏 나만 보고 살았는데, 열심히 나를 지키고,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나만을 보살피며 살았는데,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P.211

삶을 다하고 죽었을 때 신문에 기사가 나고 모든 사람이 단지 하나의 뉴스로 알게 되는 ‘유명한’사람보다 누군가 그 죽음을 진정 슬퍼해 주는 ‘좋은’사람이 된다면 지상에서의 삶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P.232

나는 그때 마음을 정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 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걸으며 살 것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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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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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알겠다. 출판사 서평의 해설까지 읽고나니 어렴풋이 뭘 말하고자 하는지는(‘주제 씨’가 미지의 여인을 찾아 헤맴으로써 ‘인식한다는 것’과 ‘실재한다는 것’의 간극을 되묻는 작품) 알겠지만 모든 부분을 다 이해하진 못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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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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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의 시「꽃」처럼 우리는 일상적으로 이름 짓기와 의미 되기를 일직선상에 둔다. 하지만 진정 이름 그 자체로 의미가 생성되는 것일까?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Todos os nomes)』를 통해 이 통념에 반기를 든다.

이름 모를 도시에서 벌어지는 삶과 죽음, 그리고 만남과 이별을 다루는 직업의 주인공 ‘주제 씨’가 미지의 여인을 찾아 헤맴으로써 ‘인식한다는 것’과 ‘실재한다는 것’의 간극을 되묻는 이 작품은, “이름이 머릿속에 들어 있다면 한 사람의 일이 모든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사실, 우리가 인식하고 받아들인 후 믿어버리는 그 순간 명명의 문제는 일단락되고 실체란 우리 인식 속에서 탄생되는 그것에 다름 아님을, 결국 ‘모든’ 이름들은 ‘아무’ 이름도 아니라는 엄정한 사실을 역설하여 ‘우리 시대의 현자(賢者)’ 주제 사라마구의 과감한 상상력과 냉철한 현실인식을 맛볼 수 있게 한다.

“짓궂고 시니컬한 어조, 하지만 확실히 감명 깊은 소설(키르커스리뷰)”이라는 평처럼 한 남자의 일상을 뒤쫓는 작가의 치밀함이 돋보이는 이 소설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가의 깊이와 넓이를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걸작이라 평가받을 만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와 서술, 작품 속 또다른 나 ‘주제 씨’의 내면에서 휘몰아치는 혼란과 갈등을 끈질기게 따라가 마지막 문장을 음미할 때쯤이면, 작품 시작에 인용된 “너에게 붙여진 이름은 알아도 네가 가진 이름은 알지 못한다”는 발문의 의미에 다시 한 번 무릎을 치고, 작가가 일구고 있는 거침없는 문학의 힘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알라딘 제공]

 
 
 
 
 
◆◆◆
 
 
[눈먼 자들의 도시]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도 기대가 많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눈먼 자들의 도시]보다는 못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가 말 그래도 ‘도시’적인 스케일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면,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는 한 사람의 행적을 쫓아가며 이루어진다. 그래서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만큼의 스케일이나

박진감은 없지만 오히려 한 개인의 고민과 추적, 방황을 따라가며 직접적인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렇게 차이점이 있는가 하면 역시 공통점도 있었다. ‘도시’시리즈(?)인 만큼 역시 배경은 학교, 공무기관 등이 등장한다는 당연한 사실!...

죽은 자들의 서류 사이를 헤매고, 묘지를 헤매고 다니는 주제 씨의 모습은 ‘눈먼 자들’이 헤매고 다니던 모습과도 비슷했다.

특유의 문체인, 큰따옴표 하나 없이 이어지는 대화와 마침표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쉼표로 처리되는 호흡이 긴 서술로

화자의 심리적인 혼란을 잘 드러내는 느낌이었다. 대화를 해도 서술을 해도 모두 쉼표로 끊이질 않으니 읽다보면 어느새 몰입하고 있었다.

주인공의 이름이 작가의 이름과 같은 ‘주제’인 것도 흥미로웠다. 나름의 경험담이 조금은 담겨있었을까? 시점이 ‘나는~ 했다’의 1인칭과 ‘주제 씨는 ~했다’는 3인칭을 오가는 것도 특이했다. 어떤 의미가 담긴 장치였을까? 너무 후반에 눈치채서 아쉬웠다. 이런 주제 사라마구의 서술 방식은 얼핏보면 글을 어렵고 지루하게 보이게 만들 수도 있지만, 나름의 긴장감과 몰입감을 주는 것 같다.

 

주제씨는 죽은 자들의 기록부를 보관하고 있는 등기소와 죽은 자들의 시체를 보관하는 공동묘지가 다를 바 없다고 느낀다. 심지어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방문하는 그 묘지조차 묘지의 번호를 바꿔치기 하는 양치기때문에 죽은 자들의 이름도 맞지 않는다.

결국 기록되어있는 이름이 별 의미 없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주제 씨가 노부인의 말을 듣고 여자의 죽음의 이유에서 삶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는 것에서 결국 의미 있는 것은 기록되어 있는 이름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삶이란 것을 암시하는 것일까?

 

P.258

고통과 땀으로 범벅이 된 주제 씨는 잠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나 여기 있어요. 눈은 감고 있었지만,

반쯤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힘껏 두 번을 외쳤다, 나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있어요,

 

묘지를 다녀온 후 잠들었던 주제 씨가 깨어나며 “난 여기있다”고 외치는 장면이다.  그냥 넘길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이 글의 주제의식(?)을

생각하고나서 다시 보니 자신이 존재함을 외치는 주제 씨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의미심장했다.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알겠다. 출판사 서평의 해설까지 읽고나니 어렴풋이 뭘 말하고자 하는지는(‘주제 씨’가 미지의 여인을 찾아 헤맴으로써 ‘인식한다는 것’과 ‘실재한다는 것’의 간극을 되묻는 작품) 알겠지만 모든 부분을 다 이해하진 못한것 같다.

아직 내 이해력이 부족한가 보다. 주제 씨는 왜 그 여인을 그토록 찾아 다녔을까? 소장은 왜 그 일을 눈감아줬을까? 존재감의 부재는 결국 죽음과 같다는 걸까? 왜 소장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서류를 함께 두라고 명령했을까?

참 어렵다. 도시시리즈는 꼭 다시 한번 더 차분히 읽어봐야겠다.

 
 
◆◆◆
 




 
서문

너에게 붙여진 이름은 알아도

네가 가진 이름은 알지 못한다.

-증명서

 

P.34

자신의 방에 있는 책장 속엔 거의 매일 신문지상에 이름이 오르는 남자와 여자들로 꽉 차 있었고 책상 위엔 전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의 출생기록부가 있었다. 순간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책장에 있는 백 명을 모두 모아놓아도 이름 모를 한 명보다 더 무게를 갖기 못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천칭 위에 한 쪽은 백 명을, 반대 쪽은 한 명을 올려놓았을 때 어떤 차이도 나지 않음을 깨달아다. 그 하나가 백 명의 가치를 가진 것이었다. 오 하나님, 저는 그저 사무보조원일 뿐입니다, 오십이 되도록 정식직원도 못된 보조원일 따름입니다. 제가 만일 저 책상 속에 보관되어 있는 백 명 중의 하나, 아니 그보다 덜 유명한 다섯 명의 후보자 중 한 사람이기만 해도 이런 수집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왜 갑자기 저 알지도 못하는 여자의 기록부를 다른 그 어떤 것들보다 중요한 것처럼 바라보고 있느냐,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P.113

중앙등기소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엔 단지 그자들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곳에선 얼굴이 변한 것이나,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세월이 바꾸는 것은 이름은 아니었다, 그것은 결코 바꿔지는 것이 아니었다.

 

P.184

그런 경험이 있다면 이곳에 있는 죽음이란 실제가 아닌 단지 기록일 뿐이란 걸 깨달아야 해, 네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기록부가 그 모르는, 미지의 여자의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단지 종이에 불과한거야, 뼈가 아닌 종이일 뿐이라고, 썩은 살덩어리가 아니라 너의 등기소에서 작성한 작품일 뿐이란 말이야, 삶과 죽음이 단지 종이의 차이로 바뀐 것뿐이야,

 

P.210

그녀가 나에게 말했을 때,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처음과는 다른 방향으로 새롭게 찾아나서는 것이었다, 죽음에서 삶으로,

 

P.228

묘지의 활용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좀더 선진화된 문명국에선, 경험에 의해서 입증된 장점을 살려서, 시신을 몇 년 동안은, 일반적으로 오 년 동안, 땅속에 묻게 한 다음, 새로운 세입자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벌레들이 소화를 끝내고 남은 일부분을 다시 꺼내 옮기기도 한다. 문명이 발전한 나라에서는, 묘지는 절대 건드릴 수 없다는 생각 같은, 이렇게 엄청난 공간을 차지하는 어리석은 일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삶이 영원하지 않은데, 죽음이 영원한 것이라는 따위의 생각들은.

 

P.244

그는 중앙 공동묘지를 가로지르는 긴 여정 동안, 시간, 시대, 왕조와, 왕국, 제국, 공화정과, 전쟁, 전염병과, 가장 오래 전에 죽었던 자부터 최근에 자살한 이 미지의 여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의 시간을 지나왔다. 그것을 통해 주제 씨는, 죽은 자들에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주검들 사이를 걷는 동안, 그들 중 누구도 그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일어나지 않았고, 누구도 관 속에 묻힌 썩은 살과 뼈를 다시 살려달라고 간청하지도 않았고, 누구도 눈 속에 들어간 흙을 불어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죽은 자를 위해선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P.252

죽음은 신성한 겁니다, 이보게 서기원 양반, 신성한 건 삶이야, 그렇지만, 조상의 이름으로라도, 죽은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가져야 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곳에 가족과 친구를 그리며 찾아오고, 기도하고 묵상하며, 사랑했던 사람들을 위해 꽃을 꽂거나 울기도 하는데, 한 양치기의 악의 섞인 장난으로 서로 이름이 바뀐다면, 그래서 존경받는 수많은 죽음들이 실제의 그들이 아니라면, 그 죽음은 정말 우스운 일이 될 겁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더 큰 존경의 표시는 없지,

 

P.258

고통과 땀으로 범벅이 된 주제 씨는 잠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나 여기 있어요. 눈은 감고 있었지만, 반쯤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힘껏 두 번을 외쳤다, 나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있어요,

 

P.287

이 도시의 다른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름과 함께 등기소에 그녀의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 죽은 그녀의 이름은 살아 있는 세상에 다시 돌아와 있었다, 주제 씨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빼내왔기 때문에, 그러나 그녀는 아닌, 단지 이름만을. 그 이상은 보조서기원의 능력 밖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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