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해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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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의 시「꽃」처럼 우리는 일상적으로 이름 짓기와 의미 되기를 일직선상에 둔다. 하지만 진정 이름 그 자체로 의미가 생성되는 것일까?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Todos os nomes)』를 통해 이 통념에 반기를 든다.

이름 모를 도시에서 벌어지는 삶과 죽음, 그리고 만남과 이별을 다루는 직업의 주인공 ‘주제 씨’가 미지의 여인을 찾아 헤맴으로써 ‘인식한다는 것’과 ‘실재한다는 것’의 간극을 되묻는 이 작품은, “이름이 머릿속에 들어 있다면 한 사람의 일이 모든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사실, 우리가 인식하고 받아들인 후 믿어버리는 그 순간 명명의 문제는 일단락되고 실체란 우리 인식 속에서 탄생되는 그것에 다름 아님을, 결국 ‘모든’ 이름들은 ‘아무’ 이름도 아니라는 엄정한 사실을 역설하여 ‘우리 시대의 현자(賢者)’ 주제 사라마구의 과감한 상상력과 냉철한 현실인식을 맛볼 수 있게 한다.

“짓궂고 시니컬한 어조, 하지만 확실히 감명 깊은 소설(키르커스리뷰)”이라는 평처럼 한 남자의 일상을 뒤쫓는 작가의 치밀함이 돋보이는 이 소설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가의 깊이와 넓이를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걸작이라 평가받을 만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와 서술, 작품 속 또다른 나 ‘주제 씨’의 내면에서 휘몰아치는 혼란과 갈등을 끈질기게 따라가 마지막 문장을 음미할 때쯤이면, 작품 시작에 인용된 “너에게 붙여진 이름은 알아도 네가 가진 이름은 알지 못한다”는 발문의 의미에 다시 한 번 무릎을 치고, 작가가 일구고 있는 거침없는 문학의 힘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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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도 기대가 많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눈먼 자들의 도시]보다는 못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가 말 그래도 ‘도시’적인 스케일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면,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는 한 사람의 행적을 쫓아가며 이루어진다. 그래서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만큼의 스케일이나

박진감은 없지만 오히려 한 개인의 고민과 추적, 방황을 따라가며 직접적인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렇게 차이점이 있는가 하면 역시 공통점도 있었다. ‘도시’시리즈(?)인 만큼 역시 배경은 학교, 공무기관 등이 등장한다는 당연한 사실!...

죽은 자들의 서류 사이를 헤매고, 묘지를 헤매고 다니는 주제 씨의 모습은 ‘눈먼 자들’이 헤매고 다니던 모습과도 비슷했다.

특유의 문체인, 큰따옴표 하나 없이 이어지는 대화와 마침표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쉼표로 처리되는 호흡이 긴 서술로

화자의 심리적인 혼란을 잘 드러내는 느낌이었다. 대화를 해도 서술을 해도 모두 쉼표로 끊이질 않으니 읽다보면 어느새 몰입하고 있었다.

주인공의 이름이 작가의 이름과 같은 ‘주제’인 것도 흥미로웠다. 나름의 경험담이 조금은 담겨있었을까? 시점이 ‘나는~ 했다’의 1인칭과 ‘주제 씨는 ~했다’는 3인칭을 오가는 것도 특이했다. 어떤 의미가 담긴 장치였을까? 너무 후반에 눈치채서 아쉬웠다. 이런 주제 사라마구의 서술 방식은 얼핏보면 글을 어렵고 지루하게 보이게 만들 수도 있지만, 나름의 긴장감과 몰입감을 주는 것 같다.

 

주제씨는 죽은 자들의 기록부를 보관하고 있는 등기소와 죽은 자들의 시체를 보관하는 공동묘지가 다를 바 없다고 느낀다. 심지어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방문하는 그 묘지조차 묘지의 번호를 바꿔치기 하는 양치기때문에 죽은 자들의 이름도 맞지 않는다.

결국 기록되어있는 이름이 별 의미 없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주제 씨가 노부인의 말을 듣고 여자의 죽음의 이유에서 삶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는 것에서 결국 의미 있는 것은 기록되어 있는 이름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삶이란 것을 암시하는 것일까?

 

P.258

고통과 땀으로 범벅이 된 주제 씨는 잠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나 여기 있어요. 눈은 감고 있었지만,

반쯤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힘껏 두 번을 외쳤다, 나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있어요,

 

묘지를 다녀온 후 잠들었던 주제 씨가 깨어나며 “난 여기있다”고 외치는 장면이다.  그냥 넘길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이 글의 주제의식(?)을

생각하고나서 다시 보니 자신이 존재함을 외치는 주제 씨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의미심장했다.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알겠다. 출판사 서평의 해설까지 읽고나니 어렴풋이 뭘 말하고자 하는지는(‘주제 씨’가 미지의 여인을 찾아 헤맴으로써 ‘인식한다는 것’과 ‘실재한다는 것’의 간극을 되묻는 작품) 알겠지만 모든 부분을 다 이해하진 못한것 같다.

아직 내 이해력이 부족한가 보다. 주제 씨는 왜 그 여인을 그토록 찾아 다녔을까? 소장은 왜 그 일을 눈감아줬을까? 존재감의 부재는 결국 죽음과 같다는 걸까? 왜 소장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서류를 함께 두라고 명령했을까?

참 어렵다. 도시시리즈는 꼭 다시 한번 더 차분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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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너에게 붙여진 이름은 알아도

네가 가진 이름은 알지 못한다.

-증명서

 

P.34

자신의 방에 있는 책장 속엔 거의 매일 신문지상에 이름이 오르는 남자와 여자들로 꽉 차 있었고 책상 위엔 전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의 출생기록부가 있었다. 순간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책장에 있는 백 명을 모두 모아놓아도 이름 모를 한 명보다 더 무게를 갖기 못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천칭 위에 한 쪽은 백 명을, 반대 쪽은 한 명을 올려놓았을 때 어떤 차이도 나지 않음을 깨달아다. 그 하나가 백 명의 가치를 가진 것이었다. 오 하나님, 저는 그저 사무보조원일 뿐입니다, 오십이 되도록 정식직원도 못된 보조원일 따름입니다. 제가 만일 저 책상 속에 보관되어 있는 백 명 중의 하나, 아니 그보다 덜 유명한 다섯 명의 후보자 중 한 사람이기만 해도 이런 수집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왜 갑자기 저 알지도 못하는 여자의 기록부를 다른 그 어떤 것들보다 중요한 것처럼 바라보고 있느냐,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P.113

중앙등기소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엔 단지 그자들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곳에선 얼굴이 변한 것이나,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세월이 바꾸는 것은 이름은 아니었다, 그것은 결코 바꿔지는 것이 아니었다.

 

P.184

그런 경험이 있다면 이곳에 있는 죽음이란 실제가 아닌 단지 기록일 뿐이란 걸 깨달아야 해, 네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기록부가 그 모르는, 미지의 여자의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단지 종이에 불과한거야, 뼈가 아닌 종이일 뿐이라고, 썩은 살덩어리가 아니라 너의 등기소에서 작성한 작품일 뿐이란 말이야, 삶과 죽음이 단지 종이의 차이로 바뀐 것뿐이야,

 

P.210

그녀가 나에게 말했을 때,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처음과는 다른 방향으로 새롭게 찾아나서는 것이었다, 죽음에서 삶으로,

 

P.228

묘지의 활용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좀더 선진화된 문명국에선, 경험에 의해서 입증된 장점을 살려서, 시신을 몇 년 동안은, 일반적으로 오 년 동안, 땅속에 묻게 한 다음, 새로운 세입자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벌레들이 소화를 끝내고 남은 일부분을 다시 꺼내 옮기기도 한다. 문명이 발전한 나라에서는, 묘지는 절대 건드릴 수 없다는 생각 같은, 이렇게 엄청난 공간을 차지하는 어리석은 일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삶이 영원하지 않은데, 죽음이 영원한 것이라는 따위의 생각들은.

 

P.244

그는 중앙 공동묘지를 가로지르는 긴 여정 동안, 시간, 시대, 왕조와, 왕국, 제국, 공화정과, 전쟁, 전염병과, 가장 오래 전에 죽었던 자부터 최근에 자살한 이 미지의 여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의 시간을 지나왔다. 그것을 통해 주제 씨는, 죽은 자들에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주검들 사이를 걷는 동안, 그들 중 누구도 그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일어나지 않았고, 누구도 관 속에 묻힌 썩은 살과 뼈를 다시 살려달라고 간청하지도 않았고, 누구도 눈 속에 들어간 흙을 불어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죽은 자를 위해선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P.252

죽음은 신성한 겁니다, 이보게 서기원 양반, 신성한 건 삶이야, 그렇지만, 조상의 이름으로라도, 죽은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가져야 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곳에 가족과 친구를 그리며 찾아오고, 기도하고 묵상하며, 사랑했던 사람들을 위해 꽃을 꽂거나 울기도 하는데, 한 양치기의 악의 섞인 장난으로 서로 이름이 바뀐다면, 그래서 존경받는 수많은 죽음들이 실제의 그들이 아니라면, 그 죽음은 정말 우스운 일이 될 겁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더 큰 존경의 표시는 없지,

 

P.258

고통과 땀으로 범벅이 된 주제 씨는 잠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나 여기 있어요. 눈은 감고 있었지만, 반쯤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힘껏 두 번을 외쳤다, 나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있어요,

 

P.287

이 도시의 다른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름과 함께 등기소에 그녀의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 죽은 그녀의 이름은 살아 있는 세상에 다시 돌아와 있었다, 주제 씨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빼내왔기 때문에, 그러나 그녀는 아닌, 단지 이름만을. 그 이상은 보조서기원의 능력 밖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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