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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 Bleak Nigh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최근 몇 년간 한국영화의 한 경향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독립장편(극)영화의 성장이다. ‘똥파리’, ‘낮술’, ‘짐승의 끝’, ‘무산일기’, ‘혜화,동’, ‘회오리 바람’, ‘파수꾼’ 등 주류영화의 외곽에서 저예산으로 만들어져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들을 말한다. 독립장편영화라는 말. 처음에 들을 땐 좀 어색하게 들렸는데, 왜냐하면 90년대까지만 해도 ‘독립영화’에서 ‘독립장편영화’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90년대 초반에도 ‘파업전야’나 ‘닫힌 교문을 열고’와 같은 독립장편영화들이 있었지만 그때는 ‘독립장편영화’란 말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때 독립영화는 단편영화, 실험영화, 다큐멘터리영화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독립영화’는 극장개봉과는 먼 거리에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극장개봉을 위한 ‘장편’이란 형식은 큰 의미가 없었다. 좀 더 과장하면 극장에서 검열을 받는 장편영화는 ‘독립영화’의 흐름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90년대부터 상황은 변했고, 독립영화를 하는 사람들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독립’이란 무엇인가,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인가, 자본, 검열, 주류적인 가치로부터의 독립인가 등의 논의들이 있었다.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독립영화는 ‘저예산영화’, ‘비주류영화’, 최근엔 ‘다양성영화’라는 말까지 사용되며, 흔히 충무로영화라고 말하는 주류영화 외곽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를 폭넓게 아우르는 개념으로 사용되어왔다.
최근 주목받는 ‘독립장편영화’와 독립영화작가들의 등장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할까? 저예산으로 만들어져 전용관이나 CGV에서 열어주는 몇 개 안되는 개봉관에서 상영하는 장편영화가 ‘독립장편영화’인가? 독립장편영화를 만들어 주목받는 소수의 감독들이 이후 충무로로 건너가 장편상업영화를 찍는다면 그는 독립영화감독인가? 반대로 그들이 계속 얼마 안되는 독립영화지원과 소수의 개봉관을 계속 잡고 있다면 다른 알려지지 않은 독립영화감독들은 어떻게 영화를 만들고 개봉할까?
서론이 길었다. 이 짧은 지면에 독립장편영화의 개념, 정체성, 미래에 대해 깊게 다룰 수 있는 공간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작한 것은 <파수꾼>을 통해, 그것을 독립장편영화라 부르건, 아니면 다른 무엇이라 부르건, 어떤 가능성과 희망을 봤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모색을 통해 한국영화가 변하고, 우리의 삶의 질이 더 풍요로워질 수는 없을까에 대한 질문을 하기 위해서다.
<파수꾼>은 한 고등학생의 (자살로 추측되는) 죽음으로 시작해 그 학생의 아버지가 죽음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고등학생 남자 아이들 사이의 우정, 갈등, 오해 등의 관계를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고등학교 남자 아이들이 떼를 지어 한 명의 학생을 구타하는 장면을 핸드헬드로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나서 자식을 잃은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가는 장면이 이어진다. 학교 폭력을 다룬 영화, 왕따를 당한 약한 아이의 자살과 학교 폭력을 다룬 영화일 거라 예상하게 하면서 영화는 시작되지만, 자살한 학생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였고, 학교폭력을 다룬 영화도 아니다. 서사가 진행되면서 세 명의 친구사이 사소한 오해가 파국으로 치닫기까지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오해와 갈등도 뉴스에 보도될만한 대단한 이유는 제시되지 않고, 일상적인 생활에서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사소한 사건들과 대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학교 짱인 기태는 친한 친구인 희준과 사소한 갈등이 생긴 후, 희준이 자신을 멀리 하며 침묵하자,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그 중 한 장면. 기태 : ‘뭐가 문제야?’, 희준 : ‘왜 이래?’ ‘그런 것 없어’, 기태 : ‘왜 웃어?’ 희준 : ‘뭐가?’ 기태 : ‘날 보고 얘기해’ 희준 : ‘왜?’ 기태 : ‘왜 그렇게 봐’ 이런 식이다. 뭔가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존재하지만 그 긴장감은 내용을 가지지 않고 공기로만 존재하며 그들이 속으로 생각하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영화는 희준의 관점, 또 다른 친구인 동윤의 관점으로, 죽은 기태와의 이전 관계에 대한 과거의 기억을 보여주면서 기태의 죽음의 이유를 조금씩 짐작하게 하지만 그에 대해 사회적 이유나 개인적 환경의 이유 같은 것을 제시하진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지금 동시대의 현실을 날카롭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2001년 흥행기록을 새로 쓴 곽경택 감독의 <친구>의 비극은 드라마로만 보이지만 <파수꾼>은 이 시대의 현실에 대한 우울한 울림을 가지는 이유다.
‘독립장편영화’의 가능성, 희망, 미래를 말할 수 있는 점은 바로 이 지점에서일 것 같다. 주류의 상업적인 기획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던, 또는 보여줄 수 없었던, 재현방식. 영화라는 창을 통해서 현실을 보여주는 ‘어떤’ 방식.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는가의 문제. 그것을 통해 현실과 영화가 관계를 맺는 방식의 문제로서의 영화. 영화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그를 통해 동시대의 삶의 풍경에 대해 질문하는 것. ‘독립장편영화’라는 개념은 새로 씌어져야겠지만, 그 개념을 새로 씀에 있어서 <파수꾼>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작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