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미국 예외주의와 그 비판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미국학과 관련하여 단연 눈에 띄는 책은 세이무어 마틴 립셋의 <미국 예외주의>(후마니타스, 2006)이다. 미국학에 대해서라면 역시나 최근에 나온 편역서 <미국학의 이론과 실제>(서울대출판부, 2006)이나 국내 저자들의 <한국에서의 미국학>(한국외대출판부, 2005), <미국학>(살림, 2003) 등이 '교과서'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내가 읽고 싶은 책은 보다 '리얼한' 쪽이고 <미국 예외주의>는 거기에 부합해 보인다. 굳이 꼽자면 루이스 메넌드의 <메타피지컬 클럽>(민음사, 2006)과 함께 올 상반기에 나온 미국학 관련 '두 권의 책'이다. 하지만 아직 손에 들지 못한지라, 프리뷰 차원에서 언론의 리뷰 하나를 옮겨오고, 아울러 인용차원에서 교수신문에 게재된 '해외 동향 보고' 하나를 옮겨온다. 이 보고는 이주 문제를 통해서 '미국 예외주의'를 비판하는 세 권의 책들을 다루고 있다.
중앙일보(06. 07. 08) 자유국가 미국에선 왜 사회주의 힘 못 쓰나
-미국은 독특한 나라다. 이 나라 국민은 낙태의 합법화이나 동성애자 권리 같은 종교나 윤리 문제를 놓고 편을 갈라 국가가 '쩍' 갈라질 정도로 떠들썩하게 싸운다. 하지만 미 정치학회와 사회학회 회장을 모두 지낸 지은이에 따르면 이는 미국 밖에선 쟁점이 되지 않는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가톨릭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 문제에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며 왈가왈부하는 건 미국뿐이다.
-게다가 미국은 선진국에선 유일하게 전국민 건강보험이 없다. 산업화한 나라 가운데 소득분배는 가장 불평등하며, 사회보장 지출 비율은 최하위권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대통령의 성추문을 탄핵의 이유로 삼을 만큼 도덕주의가 넘친다. 유럽이라면 웃고 말았을 건데, 원.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면과 동시에 미국은 감탄할 만큼 개방적인 민주주의 국가라는 긍정적 면이 있다. 1994년의 설문 결과를 보면 미국과 미국인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응답자의 74%가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고 답했다. 88%는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된 사람을 존경하며, 78%는 미국의 힘이 대부분 기업가의 성공에서 비롯된다고 여긴다. 기회 평등 아래 개인 능력을 존중하는 특성이 잘 드러난다.
-응답자들은 또 '성공 기회를 얻는 것과 실패로부터 보호받는 것' 사이에서 76%가 기회를 선호했으며 20%만이 안전보장을 택했다. 사회보장보다 기회 평등을 선호한 것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에서 평등주의는 건국의 이유이며, 능력주의는 사회의 근간이다. 이 둘은 미국을 진취적이고 힘있는 나라로 만든 원동력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런 미국의 특징이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쏟아내는 '양날의 칼'이라고 강조한다. 예로 능력주의는 개인의 책임감과 진취성을 기르지만 동시에 이기적 행동과 소수자에 대한 포용력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패배자의 범죄.부정.소송남발을 부르기도 한다. 유럽과는 현저히 다른 이런 특징은 미국을 자유국가에선 드물게 사회주가 힘을 쓰지 못하는 국가로 이끌었다. 유럽에선 중세부터의 전통에 따라 계급이 고정된 신분을 뜻했다. 이 때문에 노동계급은 자신을 계급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는 사회주의 정당활동으로 이어졌다.
-반면 평등에서 출발해 개인의 진취성을 강조하는 미국에선 계급을 경제적인 성취의 결과로만 봤다. 기회의 평등을 보장받으니 계급의식이 싹틀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정당이 뿌리내릴 틈새가 없었다는 논리다. 흥미로운 설명이다. 다만 흑인들은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며 개인 진취성보다 국가 개입과 지원을 요구한다. 아무튼 미국은 특이한 나라다.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읽은 책이다. 미국과 갈수록 닮아가는 우리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채인택 기자)
교수신문(06. 07. 08) 과장된 ‘미국 例外主義’에 대한 역사적 객관화
-미국이 다른 국가나 지역과는 다르다는 관념, 즉 미국 예외주의는 멀게는 토크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토크빌은 1835년 출간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이 그 기원과 민족적 성격, 그리고 역사적인 진화과정과 정치적, 종교적 제도 등에서 유럽의 국가들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하다고 결론 내린다.
미국 예외주의, 토크빌과 엥겔스의 관찰에 기원
-이러한 미국 예외주의의 결론을 도출하는 데 있어 이주문제는 핵심적인 고려사항 중 하나였다. 특히 그는 미국의 예기치 못한 급격한 성장을 미국의 무제한적이고 관대한 이주 정책과 그러한 이주를 수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광대한 토지자원 및 토지사용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에서 발견했다.
-즉, 로크적 소유관념에 기반한 이주자들의 토지소유와 그것에 기반한 자유로운 시민들의 자발적 결사 속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예외성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필라델피아와 뉴욕에서 그가 발견한 가난한 흑인들과 유럽 이주자들로 인해 미국 사회가 ‘이주의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물론 이주와 관련해 미국 예외주의를 주장한 이는 토크빌만은 아니었다. 1893년에 엥겔스는 미국에서 사회주의정당이 존재하기 힘든 이유를 이주에 따른 노동자 계급 내부의 인종적, 문화혈통적 분화에서 찾았다. 이주는 노동자 계급을 토박이와 외국인으로 나뉠 뿐만 아니라, 후자는 다시 아일랜드인, 독일인, 체코인, 폴란드인, 스칸디나비아인, 그리고 흑인 등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이주에 의해 형성된 이러한 인종적·문화혈통적 분화 속에서, 진정으로 강력한 비정상적인 동기부여 없이는 노동자 계급이 하나의 단일한 정당을 형성하는 것은 힘들다고 엥겔스는 결론 내린다. 이러한 엥겔스의 주장은 이후 좀바르트에 의해 미국에서 노동운동이 발전하지 못하는 핵심 요인으로서 간주되면서 미국 예외주의 담론의 한 축을 형성했다.
-최근에 출간된 이주문제에 관한 세 권의 책은 직간접적으로 이러한 미국 예외주의의에 도전한다. 우선 졸버그(Ari Zolberg)의 ‘A Nation by Design’(하버드대출판부, 2006)은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미국의 이주정책을 국제 자본주의 및 국가 체제와, 자본 대 노동 및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국내 세력들 간의 관계속에서 추적함으로써, 토크빌이 미국을 방문했던 시대가 토크빌이 언급한 것처럼 무제한적인 이주가 허용되던 시대가 아니라, 각각의 주(state)나 연방 차원에서 다양한 이주정책이 관철되고 있었던 시기였다는 점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주 문제, 특히 국가의 이주 정책을 미국 예외주의라는 틀에서 보기보다는, 다른 국가와의 비교적 관점을 통해서 바라보고 있다.
이주자들의 노동조합도 가능해
-파인(Janice Fine)의 ‘Worker Centers’(코넬대출판부, 2006)는 1970년부터 현재까지 성장한 이주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노동센터에 대해 연구한 것이다. 이 저작의 핵심적인 주장의 하나는 이주자 공동체의 내부에서 노동조합이 형성될 수 있고 노동운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엥겔스가 노동 운동이나 사회주의 정당 건설에 부정적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한 인종이나 문화혈통적 집단이 사실상 노동운동의 기반이 돼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의의는 그람시적인 의미에서 미국 노동운동의 예외주의를 주장한 카츠넬슨(Ira Katznelson)과 비교해보면 좀 더 분명해진다. 이미 20여년전에 출간된 ‘City Trenches’(시카고대출판부, 1981)에서 그는 미국의 노동운동이 유럽에 비해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를 도시에서 노동자들이 진지를 구축하는 방식에서 찾았다. 즉, 노동의 논리로서 구성되는 작업장과는 달리, 그들의 삶의 공간인 공동체라는 진지의 구성 논리는 이주자들의 인종이나 문화혈통적 집단의 논리에 따라 구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공간과 삶의 공간의 철저한 분리를 그는 미국 예외주의의 핵심으로 파악했다.
-이주의 문제를 통해 미국 예외주의에 직간접적으로 도전하는 두 저작과는 달리, 헤이덕(Ron Hayduk)의 ‘Democracy for All’(Routledge, 2006)은 미국 예외주의가 간과해왔던 예외성에 착목한다. 이주자들의 투표권에 초점을 맞춘 그의 연구는 미국에서 1776년부터 1926년까지 40개 이상의 주에서 시민권과 상관없이 이주자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초기 미국인들은 이방인들에 대한 투표권의 부여를 이주자들이 미국사회로 통합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파악해 장려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이주자들에 의한 투표가 기존의 정치, 경제적 지배세력에게 위협이 되면서, 그들의 투표권은 박탈됐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미국 예외주의와 이주 문제와 관련한 저작들의 최소한의 공통점은 기존 미국 예외주의의 탈역사적으로 획일화된 관념에 대한 비판이라 볼 수 있다. 기존의 미국 예외주의는 토크빌에 기원을 두고 있든, 엥겔스에 기원을 두고 있든 미국 예외주의의 내용이 시공간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관념에 취약하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예외’는 ‘일상’이다
-이러한 기존의 미국 예외주의의 내용적 고정성은 미국을 연구하는 데 있어 방법론적 전략을 구축하는 데 동어반복의 오류나 종속변수에 초점을 맞출 때 나타나는 독립변수의 과장을 피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좀더 중요한 문제는 기존의 미국 예외주의의 내용적 고정성이 이주자들에게 미치는 효과일 것이다.
-물론 립셋(Seymour Martin Lipset)이 적절히 언급하고 있듯이 미국 예외주의의 내용은 양날의 칼을 가지고 있다. 즉,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 예외주의의 긍정적인 면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주자들이 있다면, 그들의 사유나 운동은 비미국적으로 취급되거나 부정적인 개념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데 있다. 즉, 미국에서 미국 예외주의는 ‘예외’가 아닌 반면에, 그러한 이주자들의 사유와 운동은 일탈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최근의 세 저작이 중요해지는 맥락은 바로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이충훈 미국통신원)
06. 07.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