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한 중국인이 본 서구사상과 한계

<중국 고대 사상의 세계>(살림, 2004)의 저자 벤저민 슈워츠의 또 다른 책이 출간됐다. <부와 권력을 찾아서>(한길사, 2006)가 그것인데, 제목만 봐서는 이게 중국학, 내지는 중국사상사에 관한 책이란 걸 짐작하기 어렵겠다. 원제가 'In Search of Wealth and Power'(1964)이니까 역자나 출판사의 잘못은 아닌데, 그래도 좀더 풀어주었다면 낫지 않았을까 싶다. 원서의 부제는 '옌푸(엄복)와 서양'이다. 소개의 글과 리뷰 한 편을 옮겨온다.

 

 

 

 

-19세기 들어서 서구 문명과 맞딱뜨린 중국의 모습을 엄복(嚴復, 1853~1921)이라는 당대의 학자를 통해 들여다본다. 20세기 서구에서 대표적인 중국학자로 기록된 학자 벤저민 슈워츠의 주저로, 그는 도올 김용옥의 유학 시절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엄복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존 스튜어트의 <자유론> 등 서양의 지식과 사상을 번역, 중국에 적극적으로 소개하여 중국의 유교적 전통과 서구사상의 조화를 시도한 인물이다. 노신과 모택동 역시 그의 번역을 통해 서양 문물을 접했을 정도로 근대 중국을 형성하는 데 엄복이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의 한 선각적인 지식인 엄복의 눈에 비친 서구사상은 어떤 모습이었고 어떻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졌을까? 이 의문에 집중하는 책 전반에서 서구의 지식의 사상은 엄복과 슈워츠에 의해 이중으로 걸러진다. 즉 중국인 엄복이 본 서양을 서양인 슈워츠가 다시 보는 '번역의 번역서'인 셈이다.

-'국가의 부강'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던 엄복의 서구 문물 번역은 대부분이 의역, 더 나아가 '창조적 왜곡'으로 나타난다. 권력의 외부로 밀려난 삶을 살다가 심지어 말년에는 서구 문물에 대한 신봉을 포기하고 노장사상에 천착하기도 하는데, 지은이는 여러 각도에서 엄복의 학문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며 그에 대한 이해와 변호를 시도한다. 그 가운데 근대화의 문제, 산업사회의 자유·평등·민주주의 이념 등에 대해 전반적인 비판과 통찰을 보여준다.

경향신문(06. 07. 08) 한 중국인이 본 서구사상과 한계

하버드대 교수였던 벤저민 슈워츠(1916~99)가 쓴 <부와 권력을 찾아서>는 엄복(嚴復·1853~1921)의 눈에 비친 서구사상과 그 한계를 살핀다. 중국인이 본 서양을 서양인이 다시 본, ‘번역의 번역서’인 셈이다. 엄복은 근대서양의 사상을 중국에 첫 소개한 계몽사상가. “(국가의 부강이라는) 거대한 근대적 과업을 달성키 위하여 피눈물나는 ‘붓의 투쟁’을 벌인 인물”(김용옥)이다.

(*)도올의 추천사: 엄복이라는 인간에 대해 나는 많은 말을 할 수가 없다. 바로 이 책이 너무도 많은 말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이며 나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인 하버드대 벤저민 슈워츠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용옥! 한 세기 전에 태어났더라면 너도 이와 같은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사진은 슈워츠 교수와 그의 지도로 학위를 받고 갓 귀국하여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의 김용옥.)

-지구최강 중국이 동네북이 된 당시 그는 영국 유학 이후 서양의 부와 힘의 비밀을 찾는 데 젊음을 바쳤다. 애덤 스미스, 밀, 몽테스키외 등을 중국어로 옮겼다. 루쉰과 마오쩌둥이 그의 책을 읽으며 컸다. 그는 영국의 진화론적 윤리학의 철학자 스펜서(1820∼1903)의 정신적 제자였다(*엄복의 사회진화론이 한국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박노자의 <우승과 열패의 신화>를 참조할 수 있다. 하지만, 허버트 스페서의 책은 국내에 번역된 바 없는 듯하다. 이럴 때의 당혹감이라니!).

 

 

 

 

-하지만 ‘의역(意譯)’의 방법으로 ‘원전’을 왜곡했다. 중국의 부강을 위해. 예컨대 스펜서는 국가를 개인 자유를 억압하는 악으로 봤으나, 엄복은 국가주의를 강조했다. 스펜서가 비판한 영국의 제국주의적 팽창도 긍정적으로 여겼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역동적 에너지의 분출이 생존투쟁을 거쳐 이룩한 힘이 바로 국가의 힘으로 연결된다.” 그가 보기에 서양문화는 인간 에너지를 고양시키고 있었다. 중국은 황제와 극소수 관리가 세상 전체를 결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복은 1차대전 등을 겪으며 서양의 진보란 이기심·살육·파렴치와 동전의 양면이라고 느꼈다. 노장을 새로 읽으며 은둔생활을 하다 죽었다. 우리는 엄복의 질문 앞에 서 있다. 부강이 최고 가치일까. 그렇다고 노장이 대안일까(*물론 부와 권력을 찾는 엄복의 제자들은 우리 주변에 널리고 널렸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지!).(김중식 기자)

06. 07. 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드팀전 > 이름없이 사라져간 사람들의 전쟁
전쟁과 사회 -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김동춘 지음 / 돌베개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조국의 원수들이 짖밟아 오던 날을/맨 주먹 붉은피로 원수를 막아내어/발을 굴러 땅을 치며 울분에 떤 날을/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이제야 빛 내리 이 나라 이 겨레/.......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자랐던 세대는 이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아마 이 가사를 보며 그동안 잊혀졌던 멜로디가 입에서 흥얼거려짐을 느낄 것이다.요즘도 이 노래를 배우는지 모르겠다.가사를 되짚어 바라보니 황당하다.이게 초등학생에게 가르쳐야 될 노래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냉전세력은 교과서를 통해 폭력과 원한에 사무친 단어들을 천진무구한 어린 아이들의 머릿 속에 주입시켰다.이런 교육을 받으며 자란 세대,또는 전쟁을 겪으며 한쪽의 시각 외에는 어느 다른 의견도 꺼낼 수 없었던 세대에게  '한국전쟁'은 여전히 '6.25 동란'이다.김동춘 교수는 책을 시작하며 6.25란 말이 가진 인식의 단편성에 대해 지적한다.6.25라는 것은 통상적으로 전면전의 발발 시점을 말한다.이 날을 전면전의 고유명사화 하여 사용하는 것은 전쟁을 누가 시작했는가에만 촛점을 맞춰 이데올로기 강화에 이용한 대한민국의 과거 정권들의 시각일 뿐이라는 것이다.김동춘 교수는 전쟁의 시점을 해방 이후 부터로 본다.그가 바라보는 한국전쟁은 남북 양쪽에서 완전한 근대국가를 형성을 위한 도구였다. 여순사건,제주4.3등으로 상징되는 좌우대립이 한국전쟁의 시초였다면 6.25 이후 남북간의 쟁패는 전면전의 단계였다.그리고 휴전은 전쟁의 중지상태가 아닌 반쪽 근대국가의 전쟁내면화 단계인 것이다.즉 과거 현대사는 1945년부터 -1953년 이후까지를 통상적으로 세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해방 이후 좌우대립/한국전쟁/휴전협정 이후 가 그것이다.김교수는 과거 해석에 비해 조금더 적극적으로 이 세 단계의 인과성을 강조한다.굳이 정리하자면 한반도 내에서는 1950년 6월이전에 전쟁이 진행 중이었고 1953년 7월 이후에도 전쟁이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이다.그 한 복판에 남북간의 전면적인 내란이 있었다.그러므로 한국전쟁은 남북 양쪽의 사회 전체에 분수령이 되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던 셈이다.

이 책은 과거 한국 전쟁을 다룬 책과 달리 전쟁을 둘러싼 보통사람들의 이야기에 촛점을 맞춘다. 김동춘 교수는 남북 정권이 전쟁 이후 국민만들기 과정에 강요했던 선/악 구도를 깨고 민중들의 시각에 한국전쟁의 내밀한 부분을 더듬는다.책은 크게 <피난><점령><학살>이라는 세가지 장으로 구분된다.<피난>의 장에서는 인민군의 서울 입성에 관련된 1차피난과 1.4후퇴로 상징되는 2차 피난,그 과정과 민중들의 태도에 대해 설명한다.사실 개인적으로 피난이라는 부분과 점령 상태에 남아있던 사람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그런면에서 <피난><점령>이라는 장은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 것 처럼 새로왔다.인민군의 서울입성에 대게의 서울시민들은 피난을 가지 않았거나 가지 못했다.하지만 한강철교의 폭파 사진으로 남아 있는 피난에 대한 인상은 북한 인민군의 입성에 두려워 모두 남하하는 서울사람들로 기억된다.이러한 이미지는 분명히 과거 반공교육때문일 것이다. 내가 새삼 놀란 것은 반공 교육에 대해 전체적인 비판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나였으면서도 전체적인 비판만 가지고 있을 뿐 부분 부분 남아 있는 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권이 내게 주입했던 기억들을 조각모음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인민군의 서울 입성에 즈음하여 145만 서울시민 중에서 40만명이 피난을 갔다.그 40만 중 80%는 월남한 사람들이었고 나머지는 인민군 입성에 의해 처형이 불보듯 뻔한-물론 월남민들도 마찬가지였지만-정부 공무원,경찰,우익관련 가족들이었다.실제 평범한 서울 시미들의 대다수는 잔류를 선택한 것이다.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공산주의를 적극 환영했거나 아니면 적극 환영은 아니어도 뭔가 기대를 했던 사람들이었을까? 김동춘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1차 피난에서 잔류한 사람들의 대개의 정서는 북한정권이 들어서도 크게 피해를 보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특히 뭐 잘 못한 것도 없는데 좌익이든 우익이든 생명과 안전에 크게 위해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하지만 이들의 판단은 남한이 다시 서울 재탈환하면서 달라진다.이승만정권과 그들의 하수인들은 자신들이 다리를 끊고 버리고 간 그 사람들을 '부역한 자'들로 파악하고 적으로 규정한다.일제 시대 부터 전제주의적 가치에 익숙해있던 권력집행자들의 속성과 전쟁 중에 생긴 사적 복수심은 '적'에 대해 비인간적 행동들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이승만 정권은 스스로 국민을 버리고 간 정치적 책임을 잔류파 국민들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해 이를 용인했다.

물론 북한측도 민중들에 대한 폭력은 똑같았다.특히 북한은 점령지에서 농민이나 하층민,남한측 좌익들의 복수심을 이용하여 민중들에게 가혹한 폭력을 행사한다.남북 양쪽이 제도화된 국가권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적폭력을 용인하고 있었던 것이다.김일성 정권은 점령기 동안 친일,친미,반공활동 세력들을 제거한다.하지만 북한 정권은 여기서 지나치게 급진적인 방법을 택한다.결국 유교적 문화가 이데올로기적 소구보다 컷던 당시 민중들은 북한의 처분에 등을 돌리게 된다.

잠시 이 책을 읽다가 생긴 에피소드를 하나 하자.이 책에는 김동춘교수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자신의 가족이 겪었던 한국전쟁>의 예들이 들어있다.나 역시 좀 궁금해졌다.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언젠가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 안쪽에 계셔서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으셨다고 했다.기회가 닿아서 장모님께 여쭈어 보았다.그때 장모님은 6.25를 '여름난리' 라고 하셨다.아마 중공군이 재진입했을 때를 '겨울난리'라고 하여 구분하는 것 같았다.당시 장모님은 14살이셨고 충북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고 계셨단다.피난을 가려고 짐을 싸놓았는데 할머니가 무척 아파서 결국 짐을 내려놓았다고 한다.전쟁통에 그다지 큰 일은 없었다고 한다.대게 똑똑한 사람들이 공산당이 많았다고 하셨다.(흔히 들었듯이)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하고도 학교는 계속 나갔었다고 한다.학교에서 북한쪽 국가 같은 걸 매일 불렀다고 한다.그 멜로디와 가사를 아직도 기억한다고 했다.또한 어른 들 중에는 남쪽 군인들이 다시 밀려오고 얼핏 그런 노래 흥얼거리가다 끌려간 사람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가족중에 혹시 끌려간 사람 없느냐고 질문했다. 고모의 아들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둘이나 있었다고 했다.무척 선량하고 어진 사람이었단다.그런데 그 사람이 '보도연맹'이라고 끌려갔단다.장모님은 '그 때 그냥 농사 짓는 사람들이 뭐 여기 저기 손도장 찍으라면 찍었는데 ...나중에 그게 보도연맹 뭐라 해가지고 결국 끌려갔지' 라고 하셨다.며칠 지나고 시신을 찾으려고 갔는데 여기 저기 시체 천지여서 시신도 못찾을 뻔했다고 한다.당시 그 분의 아내가 남편이 입고 있던 속옷을 기억하고 어떻게 시신은 염했다고 한다.

이 내용들은 <전쟁과 사회>에 거의 판박이 처럼 전부 나온다.한국 전쟁중 백만 이상의 사람들이 장모님의 고종사촌처럼 영문도 모른채 학살 당했다.한국전쟁의 학살은 야만적이고 참혹했다.국가권력에 의한 학살은 물론이고 사적인 폭력까지 동원되었다.빨갱이나 반동분자는 같은 동족은 물론이고 인간이 아니었다.학살은 과거 어느 전쟁에 비해 잔인했다.김동춘 교수는 한국전쟁에서의 학살을 크게 3가지로 나눈다.작전으로서의 학살,처형이라는 형태의 학살,사작 보복형태의 학살이 그것이다.제주 4.3항쟁이나 거창 양민 학살처럼 군인들의 초토화 작전에 의한 대량학살이 작전으로서의 학살이다.처형으로서의 학살은 국민보도연맹 학살처럼 검속을 통해 직접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적과의 내통이 우려된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에 대한 학살이다.마지막은가장 야만적이고 잔인한 양상을 보인 사적 보복으로서의 학살이다.이는 남북한의 국가가 형성되지 못하며 밀고 당기는 과정중에서 크게 발생하였다.김동춘 교수는 폭력기구의 국가 독점력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발생한 학살이라고 말한다.한국 전쟁 중의 학살에 대한 민중들의 입장을 가장 잘 밝힌 인터뷰 내용이 있다. 소백산맥 주민들이 말한 내용이다.

"안 가면 죽인다니까 산에 들어 갔고 나오면 죽인다니까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양쪽에서 똑같이 보호받지 못했으니 두 곳 다 똑같이 무섭기만 했다."

저자는 학살의 배경으로 몇 가지를 이야기한다.우선 미국의 역할이다.6.25 기간동안 미국은 공군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폭격을 가하낟.노근리 사건 같은것이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학살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이에 앞서 미국은 해방 직후 좌익과 민족주의 세력을 배제하면서 대규모 저항적 폭력을 양산한다.미군정은 반공주의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에 부합되는 세력이면 친일,지주의 여부를 구분하지 않고 재등용한다.여기서 민중들의 원초적인 분노가  좌익세력에 목소리에 힘을 더해주며 대규모 폭력으로 발생한다.미군정은 친일의 기억이 있는 공권력과 우익 폭력단의 용인하며 이를 제압한다.이를 통해 우익과 자유주의세력 주도의 국가 건설에 위협이 되는 학살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된다.여기에 불을 지핀 것이 이승만의 마키아벨리적 속성이다.이승만은 국가건설과 권력욕만이 있었을 뿐 국민이라는 개념은 없었다.그는 미국이 모든 열쇠를 쥐고 있다는 현실적 판단을 하고 있었다.그에게 전쟁은 남한과 북한의 전쟁이 아니었다.그것은 미국과 북한 내지는 소련과의 전쟁이었다.그러므로 한국전에서의 피해라든가 전쟁과정이라든가 하는 제반 모든 것이 미국의 책임이었다.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국민의 보호를 미국에 넘긴 상황이다 보니 국민의 안전 같은것은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대신 권력의 안정성에 위배되는 세력들의 척결에는 사자의 발톱보다 날카로운 비수를 뽑아든 것이다.또한 학살 배경중 하나는 일본군의 전통과 민주주의 정신의 결여에 있다.즉 군인들이 국민의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는 근대국가의 군인관이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일제 시대처럼 국민위에 군림하는 봉건영주의 모습을 가졌던 것이다.당연히 민간인의 목숨을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또한 남북한이 '임시국가'로서 불완전한 국가 형태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학살과 연관이 있다.남북 양쪽은 서로를 '외세의 앞잡이 반역자'로 취급했다.이렇다 보니 반국가-외세 앞잡이에 대한 폭력에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또한 '전근대적 반역담론'을 통하다 보니 학살이 잔인하고 야만적인 양상을 띌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결국 한국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38선의 남북에 거부했다가 각각 대한민국이 국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이 되어 버린 이름없는 민중들이었다.그들은 불완전한 국가간의 내전 속에서 야만적 폭력 상황에 아무런 대책없이 버려지고 이용당한 것이다.

결론에서 저자는 한국전쟁을 '피난의 정치,희생양의 정치,무책임의 정치,부역자 처벌의 정치,학살의 정치'라고 말한다.그 의미를 하나씩 짚어보면 이 책 <전쟁과 사회>가 짚어내고자 한 담론들을 읽어낼 수 있다.김동춘 교수는 한국전쟁을 바라보던 그 간의 시점에 변화를 주고자 한다.먼저 국가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 나야 한국 전쟁의 내밀한 부분을 샅샅이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국가 대신 민족 중심적 시각으로 이를 대체 해야한다.또한 전쟁의 책임,전쟁의 양상들에 대한 연구보다 전쟁 당시 사회구성원들의 고통과 희생에 대한 접근으로 한국전쟁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이렇게 될 때 한국전쟁의 부정적인 결과를 딛고 한반도 내의 항구적 평화를 도모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전쟁과 관련된 책들은 여러 시각이 존재한다.<전쟁과 사회>는 전쟁의 최대 피해자이자 60년전 나와 똑같은 모습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김동춘 교수의 이름없이 사라져간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객관적인 접근이 돋보인다.별 다섯 개도 부족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balmas > [인권문헌읽기] 칼 마르크스.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

 

 

[인권문헌읽기] 칼 마르크스, “유태인 문제에 대하여”(1844)

‘인권의 이중성’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

 

 

기사인쇄
류은숙 
인권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꺼려한다. 일체의 반론 없이 그저 존중하고 아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단어를 같이 쓰더라도 사람과 사회에 따라 아주 다른 뜻으로나 다른 목적으로 쓰고 있고, 따라서 그 기능도 다를 때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인권은 그저 좋은 것이니까 이론을 따지지 말고 그저 실천하자는 심정으로 매달리다가도 현실에서 튕겨져 나오는 인권에 대한 거부를 맞닥뜨리게 되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은 좋은 것이요, 불가침의 것이요, 영원한 것이요, 불가양의 것이요…. 인권을 옹호하는 문서의 바다에 언제나 띄워져 있는 이런 표현들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낀다면 한번쯤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가장 신랄하다 할 수 있는 인권비판론이다.

마르크스가 근대적 인권론과 시민사회론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 이 글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대표로 하는 프랑스 혁명의 인권선언들과 인권담론의 이중성을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근대인권론의 이상과 허구를 잘 보여준다.
근대인권론의 정수로 알려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1989)은 그 제목에서 나타나듯 ‘인간’과 ‘시민’을 구분하고 있다. 여기에 담긴 기만성과 소유권의 불가침성에 대한 비판은 ‘평등주의자들의 음모’로 잘 알려진 바뵈프 등이 먼저 제기했다. 바뵈프는 “재산과 노동의 불평등한 분배가 예속과 공공의 불행의 끝없는 원천”이라고 지적하면서 “프랑스의 전 재산의 소유권은 유일하게 그 배분을 결정하고 변경할 수 있는 프랑스 인민에게 본래적으로 귀속된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바뵈프의 비판을 이어받아 <유태인 문제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공민(시민)권과 구별되는 이른바 인권이란 시민사회 구성원의 권리, 다시 말해서 인간들과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이기적 인간들의 권리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인권과 시민권은 왜 구별되는가? 마르크스는 시민사회와 정치사회(국가)를 구별하여 말한다. 시민사회에 속한 인간은 생산활동의 주체로서의 인간, 즉 “지상에서의” 자본주의 생산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이다. 이 개인은 이기적이다. 왜냐하면 타인을 자신의 도구로 간주하면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나홀로’ 개인이며, 인간의 결속이 아닌 분열에 기초한 개인이며, 비사회적이고 비정치적인 개인이기 때문이다. 비사회적인 ‘자연적’ 인간의 권리를 얘기하기에 여기서는 자연권이 인권이다. 자연권이기에 무조건적이다. ‘인’권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자본을 소유하고 사적 소유의 자유를 추구하는 부르주아의 권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사적 소유의 권리를 자연권으로 인정함으로써 그것은 불가침의 권리가 된다.

반면에 정치사회에 속한 인간은 어떠한가? 국가는 공민들의 영역이다. 즉 정치적으로 해방된 국가에서는 시민들이 모두 평등하고 법 앞에서 같은 권리를 지니고 서로가 서로에게 자유로운 환경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인간은 정치적으로 조직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이고, 정치권력을 공유하는 인간이고, 인류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이다. “지상에서의” 자본주의 관계 속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경쟁자이자 적대자이며 더 많은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분열하지만 “천상에서의” 삶에서는 공동존재이다.

둘 간의 관계에서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이기적인 시민사회이다. 여기서는 시민의 권리와 구별된 사람의 권리가 “이기적 인간의 권리”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은 사적소유라는 인권”으로 수렴된다는 것이 지적됐다. 나아가 “시민은 이기적인 인간의 하인이라고 선언되고, …결국 공민인 인간이 아니라, 부르주아(시민사회의 일원)인 인간이 본래적인 진정한 인간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보편적’이라고 한 인간의 자유는 사실상 자본가의 자유이고, 기본적 인권은 재산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정치적 권리의 향유가 궁극적으로 물질적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된다. 결국 시민의 권리가 부르주아지 손에 내맡겨지고, 실제로는 사람의 권리까지도 그들이 제한할 수 있는 구조가 된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기의 인권선언과 헌법에 표현된 인권은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편적으로 선언하고 있지만 진실은 일부 계급의 권리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다른 글에서 마르크스는 “본문에는 자유를, 각주에서는 그것의 폐지를”이라고 비판했다. 마르크스가 비판한 것은 인권 자체가 아니라 사실상은 인권의 폐지를 가능케 하는 인권담론과 그 모순이라고들 말한다. 오늘날 마르크스 식으로 인권과 시민사회를 파악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인권의 보편성과 인간해방의 실현이 지울 수 없는 꿈이기에 우리의 인권 분석과 비판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칼 마르크스, “유태인 문제에 대하여”(1844)
[…] 
완성된 정치적 국가는 그 본질상 인간의 물질적 삶과 대립해 있는 인간의 유적 삶이다. 이 이기적 삶의 모든 전제는 국가영역 바깥에 있는 시민사회 속에 머물면서 시민사회의 본성으로서 존재한다. 정치적 국가가 자신의 진정한 발전형태에 도달한 곳에서는 인간이 사상과 의식 속에서뿐만 아니라 현실과 생활 속에서도 천상의 삶과 지상의 삶이라는 이중의 삶을 살아간다. 그 하나는 정치적 공동체 속에서의 삶인 바, 여기에서는 인간이 자신을 공동존재라고 간주한다. 다른 하나는 시민사회 속에서의 삶인 바, 여기에서는 인간이 사적 인간으로서 활동하며 타인을 수단으로 간주하고 자기 자신까지 한낱 수단으로 격하시켜 낯선 힘의 노리갯감으로 전락시킨다. 
[…] 
인권은 그 자체로서는 공민권과 구별된다. 공민과 구별되는 인간은 누구인가? 시민사회의 구성원 이외의 어느 누구도 아니다.  
[…]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공민권과 구별되는 이른바 인권이란 시민사회 구성원의 권리, 다시 말해서 인간들과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이기적 인간들의 권리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 
그러나 자유라는 인권은 인간과 인간의 결속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과 인간의 구별에 기초한다. 자유는 이 구별의 권리이며, 제약된, 자기 자신에게 한정되어 있는 개인의 권리이다.  
자유라는 인권의 실천적 유용화가 곧 사적 소유라는 인권이다.  
사적 소유라는 인권의 근간은 무엇인가? 
 
(1793년 프랑스 헌법)제 16조: “사적 소유의 권리는 각자의 재화와 수입, 각자의 노동과 근면의 과실을 자기 의지대로 향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모든 시민의 권리이다.” 
 
사적 소유라는 인권은 타인과의 관계는 일체 단절한 가운데 사회와도 무관하게 자신이 재산을 마음대로 향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권리, 즉 자기만의 이용의 권리이다. 앞서의 개인적 자유와 함께 그 자유의 이러한 유용이 시민사회의 기반을 형성한다. 시민사회에서 만인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자유의 실현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자유의 제약을 발견한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무엇보다 먼저 
 
각자의 재화와 수입, 각자의 노동과 근면의 과실을 자기 의지대로 향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인권을 선언한다. 
[…] 
그러므로 이른바 인권 중에서 그 어느 것도 이기적 인간,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 즉 자기에 매몰되고 자신의 사적 이익과 사적 의지에 매몰되어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개인을 초극하지 못한다. 인권 속에서는 인간이 유적존재로 파악되기는커녕 오히려 유적 삶 그 자체 곧 사회가 개인의 외부에 있는 영역, 개인의 본원적 자립성에 대한 제약으로 나타난다. 자연적 필연성, 욕구와 사적 이익, 각자의 재산의 보존과 각자의 이기적 인격만이 개인들을 하나로 묶는 유일한 끈이다.  
[…] 
현실적이고 개별적인 인간이 추상적 공민을 자신 속으로 환수하고, 개별적 인간으로서 자신의 경험적 삶, 개별적 노동, 개별적 관계 속에서 유적 존재가 되어 있을 때, 그리고 인간이 자기 ‘고유의 힘’(forces propres)을 사회적 힘으로 승인하고 조직하며, 따라서 그 사회적 힘이 더 이상 정치적 힘의 형태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을 때, 이때 비로소 인간해방이 완성된다.
인권오름 제 11 호 [입력] 2006년07월05일 0:18: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로쟈 > 미국 예외주의와 그 비판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미국학과 관련하여 단연 눈에 띄는 책은 세이무어 마틴 립셋의 <미국 예외주의>(후마니타스, 2006)이다. 미국학에 대해서라면 역시나 최근에 나온 편역서 <미국학의 이론과 실제>(서울대출판부, 2006)이나 국내 저자들의 <한국에서의 미국학>(한국외대출판부, 2005), <미국학>(살림, 2003) 등이 '교과서'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내가 읽고 싶은 책은 보다 '리얼한' 쪽이고 <미국 예외주의>는 거기에 부합해 보인다. 굳이 꼽자면 루이스 메넌드의 <메타피지컬 클럽>(민음사, 2006)과 함께 올 상반기에 나온 미국학 관련 '두 권의 책'이다. 하지만 아직 손에 들지 못한지라, 프리뷰 차원에서 언론의 리뷰 하나를 옮겨오고, 아울러 인용차원에서 교수신문에 게재된 '해외 동향 보고' 하나를 옮겨온다. 이 보고는 이주 문제를 통해서 '미국 예외주의'를 비판하는 세 권의 책들을 다루고 있다.

   

중앙일보(06. 07. 08) 자유국가 미국에선 왜 사회주의 힘 못 쓰나

-미국은 독특한 나라다. 이 나라 국민은 낙태의 합법화이나 동성애자 권리 같은 종교나 윤리 문제를 놓고 편을 갈라 국가가 '쩍' 갈라질 정도로 떠들썩하게 싸운다. 하지만 미 정치학회와 사회학회 회장을 모두 지낸 지은이에 따르면 이는 미국 밖에선 쟁점이 되지 않는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가톨릭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인 문제에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며 왈가왈부하는 건 미국뿐이다.

-게다가 미국은 선진국에선 유일하게 전국민 건강보험이 없다. 산업화한 나라 가운데 소득분배는 가장 불평등하며, 사회보장 지출 비율은 최하위권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대통령의 성추문을 탄핵의 이유로 삼을 만큼 도덕주의가 넘친다. 유럽이라면 웃고 말았을 건데, 원.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면과 동시에 미국은 감탄할 만큼 개방적인 민주주의 국가라는 긍정적 면이 있다. 1994년의 설문 결과를 보면 미국과 미국인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응답자의 74%가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고 답했다. 88%는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된 사람을 존경하며, 78%는 미국의 힘이 대부분 기업가의 성공에서 비롯된다고 여긴다. 기회 평등 아래 개인 능력을 존중하는 특성이 잘 드러난다.

-응답자들은 또 '성공 기회를 얻는 것과 실패로부터 보호받는 것' 사이에서 76%가 기회를 선호했으며 20%만이 안전보장을 택했다. 사회보장보다 기회 평등을 선호한 것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에서 평등주의는 건국의 이유이며, 능력주의는 사회의 근간이다. 이 둘은 미국을 진취적이고 힘있는 나라로 만든 원동력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런 미국의 특징이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쏟아내는 '양날의 칼'이라고 강조한다. 예로 능력주의는 개인의 책임감과 진취성을 기르지만 동시에 이기적 행동과 소수자에 대한 포용력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패배자의 범죄.부정.소송남발을 부르기도 한다. 유럽과는 현저히 다른 이런 특징은 미국을 자유국가에선 드물게 사회주가 힘을 쓰지 못하는 국가로 이끌었다. 유럽에선 중세부터의 전통에 따라 계급이 고정된 신분을 뜻했다. 이 때문에 노동계급은 자신을 계급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는 사회주의 정당활동으로 이어졌다.

-반면 평등에서 출발해 개인의 진취성을 강조하는 미국에선 계급을 경제적인 성취의 결과로만 봤다. 기회의 평등을 보장받으니 계급의식이 싹틀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정당이 뿌리내릴 틈새가 없었다는 논리다. 흥미로운 설명이다. 다만 흑인들은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며 개인 진취성보다 국가 개입과 지원을 요구한다. 아무튼 미국은 특이한 나라다.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읽은 책이다. 미국과 갈수록 닮아가는 우리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채인택 기자) 

교수신문(06. 07. 08) 과장된 ‘미국 例外主義’에 대한 역사적 객관화

-미국이 다른 국가나 지역과는 다르다는 관념, 즉 미국 예외주의는 멀게는 토크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토크빌은 1835년 출간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이 그 기원과 민족적 성격, 그리고 역사적인 진화과정과 정치적, 종교적 제도 등에서 유럽의 국가들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하다고 결론 내린다.

 

 

 

 

미국 예외주의, 토크빌과 엥겔스의 관찰에 기원
-이러한 미국 예외주의의 결론을 도출하는 데 있어 이주문제는 핵심적인 고려사항 중 하나였다. 특히 그는 미국의 예기치 못한 급격한 성장을 미국의 무제한적이고 관대한 이주 정책과 그러한 이주를 수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광대한 토지자원 및 토지사용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에서 발견했다.

-즉, 로크적 소유관념에 기반한 이주자들의 토지소유와 그것에 기반한 자유로운 시민들의 자발적 결사 속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예외성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필라델피아와 뉴욕에서 그가 발견한 가난한 흑인들과 유럽 이주자들로 인해 미국 사회가 ‘이주의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물론 이주와 관련해 미국 예외주의를 주장한 이는 토크빌만은 아니었다. 1893년에 엥겔스는 미국에서 사회주의정당이 존재하기 힘든 이유를 이주에 따른 노동자 계급 내부의 인종적, 문화혈통적 분화에서 찾았다. 이주는 노동자 계급을 토박이와 외국인으로 나뉠 뿐만 아니라, 후자는 다시 아일랜드인, 독일인, 체코인, 폴란드인, 스칸디나비아인, 그리고 흑인 등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이주에 의해 형성된 이러한 인종적·문화혈통적 분화 속에서, 진정으로 강력한 비정상적인 동기부여 없이는 노동자 계급이 하나의 단일한 정당을 형성하는 것은 힘들다고 엥겔스는 결론 내린다. 이러한 엥겔스의 주장은 이후 좀바르트에 의해 미국에서 노동운동이 발전하지 못하는 핵심 요인으로서 간주되면서 미국 예외주의 담론의 한 축을 형성했다.

-최근에 출간된 이주문제에 관한 세 권의 책은 직간접적으로 이러한 미국 예외주의의에 도전한다. 우선 졸버그(Ari Zolberg)의 ‘A Nation by Design’(하버드대출판부, 2006)은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미국의 이주정책을 국제 자본주의 및 국가 체제와, 자본 대 노동 및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국내 세력들 간의 관계속에서 추적함으로써, 토크빌이 미국을 방문했던 시대가 토크빌이 언급한 것처럼 무제한적인 이주가 허용되던 시대가 아니라, 각각의 주(state)나 연방 차원에서 다양한 이주정책이 관철되고 있었던 시기였다는 점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주 문제, 특히 국가의 이주 정책을 미국 예외주의라는 틀에서 보기보다는, 다른 국가와의 비교적 관점을 통해서 바라보고 있다.

이주자들의 노동조합도 가능해
-파인(Janice Fine)의 ‘Worker Centers’(코넬대출판부, 2006)는 1970년부터 현재까지 성장한 이주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노동센터에 대해 연구한 것이다. 이 저작의 핵심적인 주장의 하나는 이주자 공동체의 내부에서 노동조합이 형성될 수 있고 노동운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엥겔스가 노동 운동이나 사회주의 정당 건설에 부정적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한 인종이나 문화혈통적 집단이 사실상 노동운동의 기반이 돼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의의는 그람시적인 의미에서 미국 노동운동의 예외주의를 주장한 카츠넬슨(Ira Katznelson)과 비교해보면 좀 더 분명해진다. 이미 20여년전에 출간된 ‘City Trenches’(시카고대출판부, 1981)에서 그는 미국의 노동운동이 유럽에 비해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를 도시에서 노동자들이 진지를 구축하는 방식에서 찾았다. 즉, 노동의 논리로서 구성되는 작업장과는 달리, 그들의 삶의 공간인 공동체라는 진지의 구성 논리는 이주자들의 인종이나 문화혈통적 집단의 논리에 따라 구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공간과 삶의 공간의 철저한 분리를 그는 미국 예외주의의 핵심으로 파악했다.

-이주의 문제를 통해 미국 예외주의에 직간접적으로 도전하는 두 저작과는 달리, 헤이덕(Ron Hayduk)의 ‘Democracy for All’(Routledge, 2006)은 미국 예외주의가 간과해왔던 예외성에 착목한다. 이주자들의 투표권에 초점을 맞춘 그의 연구는 미국에서 1776년부터 1926년까지 40개 이상의 주에서 시민권과 상관없이 이주자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초기 미국인들은 이방인들에 대한 투표권의 부여를 이주자들이 미국사회로 통합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파악해 장려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이주자들에 의한 투표가 기존의 정치, 경제적 지배세력에게 위협이 되면서, 그들의 투표권은 박탈됐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미국 예외주의와 이주 문제와 관련한 저작들의 최소한의 공통점은 기존 미국 예외주의의 탈역사적으로 획일화된 관념에 대한 비판이라 볼 수 있다. 기존의 미국 예외주의는 토크빌에 기원을 두고 있든, 엥겔스에 기원을 두고 있든 미국 예외주의의 내용이 시공간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관념에 취약하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예외’는 ‘일상’이다
-이러한 기존의 미국 예외주의의 내용적 고정성은 미국을 연구하는 데 있어 방법론적 전략을 구축하는 데 동어반복의 오류나 종속변수에 초점을 맞출 때 나타나는 독립변수의 과장을 피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좀더 중요한 문제는 기존의 미국 예외주의의 내용적 고정성이 이주자들에게 미치는 효과일 것이다.

-물론 립셋(Seymour Martin Lipset)이 적절히 언급하고 있듯이 미국 예외주의의 내용은 양날의 칼을 가지고 있다. 즉,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 예외주의의 긍정적인 면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주자들이 있다면, 그들의 사유나 운동은 비미국적으로 취급되거나 부정적인 개념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데 있다. 즉, 미국에서 미국 예외주의는 ‘예외’가 아닌 반면에, 그러한 이주자들의 사유와 운동은 일탈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최근의 세 저작이 중요해지는 맥락은 바로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이충훈 미국통신원)

06. 07. 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balmas > 무영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

무영님의 질문

 

사정상 저번 스터디가 해체되고, 이번에 다시 [법의 힘]을 읽고 있습니다.
1부를 다 읽었는데요. 세번째 아포리아 부분이 되게 어렵더군요;
그래서 관련 질문 드립니다.

데리다는 정당한 결정의 긴급성 혹은 환원불가능성을 "'언어 행위들'에, 그리고 정의나 법적 행위들 같은 행위 일반의 수행적 구조에 귀속"(57)시켜야 한다고 말하면서, 진술문과 수행문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술문 역시 정확성이라는 의미에서는 정당할 수 있지만, 정의라는 의미에서는 결코 그럴 수 없다. 하지만 한 수행문은 오직 관습들, 따라서 다른 수행문들-묻혀 있든 아니든 간에-에 기초를 둠으로써 정의라는 의미에서 정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항상 자신 안에 모종의 파열적 폭력을 지니고 있다."(57)

여기서 어떤 수행문의 정당성이 왜 다른(혹은 기존의) 수행문에 기초를 두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령 이 문장은 정당한 결정이 자신을 정당하게해주는 무한한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앞의 주장과 모순되는 건 아닌지 헷갈리네요.

 

질문에 대한 답변

 

무영님의 질문의 초점은 마지막 단락에 있는 것 같군요.

"여기서 어떤 수행문의 정당성이 왜 다른(혹은 기존의) 수행문에 기초를 두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령 이 문장은 정당한 결정이 자신을 정당하게해주는 무한한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앞의 주장과 모순되는 건 아닌지 헷갈리네요. "

수행문의 정당성이 왜 다른(혹은 기존의) 수행문에 기초를 둔다는 말은, 우선 행위의 결정은 행위에

 앞서 존재하는 이러저러한 지식의 체계, 규범적 원칙에 근거를 둘 수 없다는 뜻입니다.

가령 규칙의 판단중지에 관해 말하는 첫번째 아포리아에서 데리다는 판사의 판결을 예로 들고 있죠.

판사의 판결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법전이나 판례를 단순 적용해서는 안되며, 자신의 책임 아래

법의 원칙에 대한 새롭고 자유로운 해석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하죠.

따라서 판결과 같은 언어행위는 이론적, 규범적 규칙이 아니라 다른 수행문들, 다른 언어행위들에만

의존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데리다가 말하는 다른 수행문들은 두 가지 종류가 있죠. 하나는

창설적인 수행문이 있을 것이고, 또 하나는 기존의 관습, 관레와 같은 것들이 있겠죠. 데리다가

보기에 이 양자는 절대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구별될 뿐입니다. 이 양자는

이론적인 지식, 어떤  타당한 근거에 기초를 두고 있는 이론적인 법칙이나 진리와 달리

자기 자신의 권위 부여 구조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입니다. 따라서 데리다의 논점은

혁명과 개혁, 또는 정초와 보존의 이분법적 대립을, 수행성의 관점에서 해체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혁명적인 것이든 관례적인 것이든 수행문, 수행적인 언어 행위는  어떤 진리나 공리,

불변적인 원칙에 근거를 둘 수 없으며, 결정 주체의 행위, 결정에만 의존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데리다가 지식이나 계산, 또는 법적 규범의 체계를 모두 거부하지는 않죠. 이는 무엇보다도

결정의 수행적 성격은 어떤 불변적인 원리에 근거를 둘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최악의 결정, 최악의

판단, 최악의 결과를 낳을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새로운 어떤 것, 창설적인 어떤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감수해야 할 위험입니다. 그리고 데리다는 이러한 위험을 최대한

축소하는 길은  결정이 낳을 수 있는 위험한 결과들, 도착들에 대해 치밀하게 계산하고 숙고하는 데

있다고 말하고 있죠.

정리하자면,  수행문의 정당성은 다른 수행문들에 의존한다는 말은 정당한 결정이 자신을 정당하게

 해주는 무한한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앞의 주장과 전혀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서로 일관되지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