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새번역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 <니코마코스 윤리학>(이제이북스, 2006)의 새 번역본이 출간됐다. 서양 고전철학 전공자들이 전력투구해서 낸 역저인데, 지난 월요일에 교보에 들렀다가 책이 나온 걸 보고서 바로 손에 들었다(물론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다. 최명관 교수 번역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갖고 있기 때문에). 번역에 대해서 신뢰감을 갖게 되는 건 역자들 못지 않게 교열자들의 손도 많이 간 번역서이기 때문인데, 그건 지난 여름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이제이북스, 2006)을 펴내면서 출판사의 전응주 사장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어려운 개념이 많다보니 철학서 번역은 특히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대여섯번 교열을 보는 건 기본. <헤겔>은 교열과 편집 작업에만 반 년 가까이 걸렸다. 전대표가 직접 교열을 보는 경우도 많다. 그는 '지금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원전 번역물을 영어와 독일어 번역을 옆에 두고 비교하면서 보고 있다'면서 '그냥 대충 하면 손해보지 않고 갈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대표는 희랍어·라틴어 원본을 번역할 수 있는 세대가 활동하고 있는 지금 관련 철학서를 번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만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낼 예정이고, 플라톤 전집도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바로 그 책이 출간된 것이다.
아마도 주말의 서평란들에서 이 신간에 대한 리뷰들을 읽어볼 수 있을 텐데, 여기서는 그냥 이태수 교수(역자들의 스승이기도 하다)의 해제 정도를 읽어보는 걸로 오리엔테이션을 대신하도록 한다(이 페이퍼 또한 '최근에 나온 책들' '작업실'에 올라와 있었는데 따로 분가시킨다).
동아일보(05. 07. 27)[서울대권장도서 100권](98) 니코마코스 윤리학
인간이 영위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은 어떤 것일까? 행복을 누리는 삶이라고 한다면 일단은 수긍할 수 있겠다. 그러나 행복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해두지 않는 한 아직 알맹이 있는 답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선의 삶을 보장해주는 행복의 실질적인 내용에 대한 질문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가 제시한 답은 인간에게 주어진 역량을 최대한 계발하여 발휘할 수 있게끔 삶을 꾸민다면 그것이 곧 진정 행복한, 즉 최선의 삶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답 역시 인간에게 주어진 역량에 관한 설명이 따라주어야 만족스러운 것이 될 수 있다. 바로 그에 관한 설명이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핵심부분을 이루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관건이 되는 역량을 크게 지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 두 종류로 나누어 상론한다. 그는 삶의 방식으로서는 지적인 역량을 발휘하여 진리탐구에 몰두하는 관조적인 삶을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 때문에 그의 윤리관은 너무 주지(主知)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 비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실천적 역량을 지적인 것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취급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실천적 역량이란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특정한 정서적 반응을 보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성향으로서 흔히 말하는 덕(德)과 같은 것이다. 가령 의로움, 너그러움, 우애, 용기, 절제 등이 그 예다. 이런 덕목이 결핍된 인간은 지적인 역량을 갖추더라도 심각하게 잘못된 인생을 살 가능성이 크다. 이 점을 잘알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실상 실천적인 덕에 관한 논의에 훨씬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아주 세심한 정성을 쏟는다.
각 덕목에 관한 그의 논의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논변의 정교함과 깊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철학적 분석의 뛰어난 모범으로 통용되고 있다. 각론뿐 아니라 덕 일반에 관한 총론적 논의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 많다. 가령 정서적인 반응과 관련된 측면에서는 덕이 중용(中庸)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동양사상사에도 비슷한 이론이 있기에 비교연구의 관점에서 보면 이 대목이 특히 흥미로울 것이다.
또한 덕은 정서적 반응을 넘어 결국은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덕의 논의는 행위이론을 포함하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여는 기념비적인 것이다. 행위 일반의 구조와 그중에서도 윤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행위의 특성에 관하여 그가 시도한 분석은 최초의 본격적인 행위이론이라 할 만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어떤 기발한 윤리교설을 창안해내서 열렬한 신봉자를 끌어 모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윤리문제에 관한 학문적인 논의의 기반이 되는 개념 틀을 차분하게 정리해서 마련해놓은 것이 그의 가장 큰 공로라고 할 수 있다. 그 개념 틀은 적어도 이 책이 쓰인 기원전 4세기부터 계속 서양 윤리학의 사상적 골격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서양 윤리사상사의 큰 흐름을 그 저류에까지 깊이 탐사하고자 하는 지적인 호기심을 가진 독자는 이 책을 재독, 삼독하면서 저자와 토론하기에 결코 싫증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번역으로는 최명관 역(서광사)을 추천한다.(이태수 서울대 교수 철학과)
이 해제의 마지막 멘트만을 교정하면 되겠다. 이제 번역으로는 '이제이북스판'을 추천한다.
06. 11.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