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제국을 건설한 균형감각과 자신감을 겸비한 영국사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2 - 영국의 세기
브라이언 모이나한 지음, 애너벨 메럴로.세러 잭슨 사진편집, 김상수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역사 서술의 문제에 있어 역사가들을 그들의 국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그다지 엄밀한 구분법은 아니지만, 이를 일종의 학적 전통으로 생각한다면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도 이야기한 적 있지만 개인적으로 영국의 역사가들이 기술한 역사서를 읽을 때, 가장 이해하기 쉽고, 그들의 관점에 동의하며 읽었던 경험이 있다. 특별히 영국의 역사가 그룹 혹은 그들의 학적 전통을 높이 평가하는 까닭은 무엇보다 영국의 역사가 그룹이 전통적으로 영국의 문학문화(Literary Culture)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기 때문이다. 다른 한 편으로 이들은 사상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유물론을 인정하되 이와 일정하게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 교묘한(문화좌파적인)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높이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한국사회의 예술적 주류에 대해 흔히 70년대를 소설의 시대, 80년대를 시인의 시대였다고 평가하는 대목에서 느낄 수 있듯 90년대 초엽까지 한국의 지식인사회에서 급진적 변화와 문화를 이끌었던 세력은 작가들이었다. 작가들의 이런 주도적인 역할은 이제 급격하게 감소되었지만, 그들은 수많은 필화 사건과 투옥, 판매금지 조치 등의 탄압 속에서도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국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마찬가지로 영국 좌파의 급진적 문화 역시 작가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이와 같은 전통은 영국의 지식인 문화에서 중요한 지적 . 이념적 전통을 만들어 왔다. 사소하게는 이들이 평이한 서술 방식을 구사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깊이를 획득하는 글쓰기 훈련이 쌓여있다거나 역사 서술의 중심에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문학적 휴머니즘을 둔다는 점이 그렇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이들 영국의 역사가들이 영국문학의 다른 한 전통인 풍자와 해학의 정신 - 세계적으로도 드문 방식으로 자신의 역사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관조하며, 경우에 따라 슬며시 비웃어줄 수 있는 - 균형감각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매력은 『20세기 포토 다큐세계사 - 영국의 세기』의 저자인 브라이언 모이나한(Brian Moynahan)에게도 발견할 수 있다.

『20세기 포토 다큐세계사 - 영국의 세기』는 300여 컷에 이르는 사진과 앞서 이야기한 영국식 역사 서술이 매력적으로 중첩된 책이다. 모두 10장의 구성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묘하게도 그 시작과 끝이 각각 빅토리아 여왕과 마거릿 대처 영국 수상이란 영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여성들에게 할애되고 있다. 아마도 영국인들의 입장에서 20세기의 시작은 빅토리아 여왕의 좋았던 시절로 시작해서 철의 여인 대처의 몰락과 함께 최종적으로 마감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의 영국은 전 세계의 인구와 지역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지배했다. 종종 영국인들은 스스로를 로마제국과 비교하길 좋아했지만, 그럼에도 대륙의 정치에 간여하기 보다는 지배적인 세력의 출현을 방지하는 균형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제국으로서 영국이 세계지배에 대한 열정이 덜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제국으로서 영국의 주된 이해는 근본적으로 인도의 지배에 달려 있었다.

영국이라는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의 형성 과정은 20세기 모든 근대국가들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전쟁을 통한 근대민족국가 형성과정과 거의 일치한다. 이 책을 통해 새삼스럽게 발견한, 영국의 입장에서 주목해야 할 전쟁은 크게 네 가지라 할 수 있다. 우선 빅토리아 시대의 침몰을 알리는 보어전쟁, 영국이 더 이상 단독으로 유럽의 세력 균형자 노릇을 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던 제1차 세계대전, 그리고 “몇 세기만에 처음으로 영국을 부끄럽게 만드는 다른 강대국들이 등장”한 제2차 세계대전, 식민지의 마지막 유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포클랜드 전쟁이 그것이다.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으로 영국이 팍스 브리타니카를 구가하던 시절의 지배계급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부를 축적하고, 소비했다. 하지만 이런 시기조차 영국에는 영영 해가 들지 않는 곳이 있었다. 전체 인구의 4퍼센트가 사적 부의 90퍼센트를 독점했고, 최상층의 1퍼센트가 그 중 3분의 2를 차지했다. 소녀들은 길거리에서 몸을 팔아 빈민가에서 탈출하려했고, 빈민들에겐 이민이 권장되었다. 보어 전쟁에 파병하기 위해 징집대상이 되었던 노동계급 젊은이들 가운데 단지 10분의 1만이 간신히 병사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영국의 노동계급은 유럽의 노동계급이나 식민지로 떠난 이민노동자들에 비해 열악한 조건에 처해 있었다.

물론 가장 잔인한 방식의 통치(지배)가 이루어졌던 곳은 저자의 표현대로 식민지였다.

영국인들은 무자비했다. 자신들의 지배와 관습을 무작정 강요하면서 그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거역할 때면 채찍으로 때리고 목매달아 죽이기도 했다. 제국적 권위는 가능한 한 공정하고 신사다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잔인했다. <본문 44쪽>

실제로 영국인들은 보어전쟁에서 생포한 수천 명의 농부 출신 반란군들을 세인트헬레나로 강제 이송했고, 그들의 가족은 강제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이들 가운데 2,000여 명이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환경과 부족한 식량공급으로 사망해 국제적인 스캔들로 비화되기도 했다(훗날 독일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이와 같은 내용을 소재로 한 선전영화를 제작했다). 그나마 보어인들의 경우엔 같은 백인으로 주목의 대상이었으나 인도와 버마, 아프리카 등지에서 자행된 학살은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국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소수의 영국인들이 다수의 식민지인들을 통치하는 가장 기본적인 무력은 영국의 산업혁명과 기술이 생산해낸 비커스, 맥심 기관총이었다. 이 기관총들은 분당 600발, 초당 10발의 총탄을 흩뿌릴 수 있었고, 이 총이 1.5초 동안 발사할 수 있는 총탄 수는 보병 한 명이 1분 동안 발사할 수 있는 총탄 수와 맞먹었다. 그렇다고 기관총 총구가 식민지인들만을 겨냥했던 것은 아니다. 식민지인들을 겨냥했던 기관총은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스위스에서 벨기에의 해안지역까지 연결된 모든 참호에서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노동계급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의 지배계급이 지닌 무능함을 드러내 많은 지역에서 병사들이 항명하는 소동을 빚었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노동계급 출신 병사들이 집단적 봉기에 이르진 않았다. 대신 러시아에서 발생한 사회주의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라는 명령에 대해서는 조직적으로 반발하였고, 결국 영국 정부는 더 많은 사회복지를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뒤 영국은 더 이상 세계를 지배하는 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유지할 수 없었고, 대신 그 역할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이미 영국을 능가하기 시작한 미국과 소련이 담당하게 되었다. 이제 영국의 부를 지탱해주던 인도는 독립했고,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수많은 지역의 식민지들이 뒤를 따랐다. 필자 브라이언 모이나한은 이 과정을 영국의 자발적인 철수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어느 경우든 절반의 진실이다. 비록 영국이 다른 식민제국에 비해 식민지로부터 평화롭게 철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제국의 쇠퇴를 증명할 수는 있을지언정, 영국 제국주의의 평화적인 면모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이 제국으로서 시들지 않은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포클랜드 전쟁일 것이다. 군사정권 아래 있던 아르헨티나가 영국 식민지인 포클랜드 제도를 침공한 후 벌어진 전쟁에서 과거 무적함대를 자랑하던 영국 해군은 초라해진 자신들의 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국은 먼 바다에서 벌어질 작전을 엄호해줄 공군도, 물자를 수송해줄 수송기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전쟁을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영국은 승리했고, 이 전쟁은 결과적으로 경제위기에 처해있던 영국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올려주었다. 그 덕분에 대처 수상은 정권을 연장할 수 있었고, 경제위기의 모든 책임은 무능한 경영자와 노동조합에게 돌려졌다. 이런 분위기를 인식하지 못한 노동당은 ‘역사상 가장 긴 자살 유서’라고 일컬어지는 너무나 올바르지만 급진적이고, 변함없이 원칙적인 강령을 채택했다(이건 아마 지금의 우리들에게 주어진 교훈일 수도 있다.) 결국 1983년 6월 선거에서 노동당은 참패했고, 대처는 포클랜드 전쟁에 비밀 정보를 제공하며 협조해준 미국의 레이건과 함께 신냉전, 신자유주의, 신보수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

한때 영국은 전 세계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과 5억 명의 사람들을 통치했다. 우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국의 역사를 중요하게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영국이 여전히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이거나 예수보다 유명(?)한 비틀즈의 모국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좀더 현실적인 이유로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며 살고 있는 근대의 기원, 서구적인 세계화의 기본 골격을 제공한 나라, 미국과 함께 세계 동맹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동서(東西) 양 극단의 두 섬나라로서의 일본과 영국의 축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은 영국인들이 스스로의 역사에 대해 쓴 가장 최근의 역사(우리들이 구할 수 있는 한에서)이자 일반인들이 쉽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친절하다.

* 1. 다만, 이 책의 21쪽 사진 캡션에는 “호랑이 사냥”이란 제목이 무색하게 “사자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고 쓰는 것과 같은 오탈자를 만들긴 했다. 하지만 뭐 그쯤이야, 이 책이 지닌 미덕에 비하면 애교로 봐줘야 하지 않을까.

2. 개인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의 수상 체임벌린이 독일의 히틀러에게 체코를 병합하도록 허가해준 뮌헨 회담을 치욕적인 양보라고 비판하는 안보주의자들이 국내에도 간혹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체임벌린이 독일과 바로 개전하지 않고 양보한 덕분에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자국의 방위력을 강화할 수 있는 - 보병 34개 사단을 확충하고, 전투기 생산에 있어 독일을 능가할 수 있는 -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비록 전쟁을 피할 순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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