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퍼온글] 그 순간 대한민국이 바뀌었다-한국일보-

그 순간 대한민국이 바뀌었다 김욱著 개마고원刊

그 순간 대한민국이 바뀌었다
김욱 지음 개마고원 발행ㆍ1만원

 1998년 5월29일, 헌법재판소에 한 건의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됐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서 그 해 10월 17일 오후 3시30분에 혼인식을 올릴 예정이던 사람이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중 ‘허례허식행위의 금지’ 조항을 문제 삼았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인데도 청구 대상인 법률 조항을 읽어보면 코웃음이 나올 정도다. 음식물쓰레기 과다 배출을 막기 위해 오후 3~5시의 혼인피로연에서는 음식을 접대하지 못하도록 한 것인데, 청구인은 이것이 ‘개인의 일반적인 행동의 자유’ 등 헌법에서 정한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청구인이 지적한대로 기본권 옹호에 입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헌재는 이 청구를 받아들여 해당 법을 위헌 판결했다.

 ‘공권력이 남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나아가 ‘공권력 행사에 의하여 침해된 국민의 기본권을 회복’하기 위해 1988년 설립된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전례 없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행정수도 이전과 대통령 탄핵 심판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판관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과 정치의 절묘한 조화’가 필요한 대단히 정치적인 사안말고도, 헌재의 결정은 늘 우리 사회의 법 의식, 정의관, 나아가 사회 변화의 방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의 역할을 해왔다.

 법학자인 김욱 서남대 교수가 쓴 ‘그 순간 대한민국이 바뀌었다-헌법재판소의 주요 판결 이야기’는 헌재의 중요한 결정 18가지를 골라 설명하고 그것이 갖는 사회적인 의미를 곱씹어 본 책이다. 공권력으로 개인의 양심을 강제할 수 없다는 사죄광고 위헌 판결, 자녀교육권이나 행복추구권에 위배된다는 과외 전면 금지 위헌 판결 등은 우리 사회가 헌법 정신에 따라 개인의 기본권을 과거보다는 존중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례도 있다. 간통죄는 1990년, 1993년, 2001년 세 차례 모두 합헌 결정이 났다. 저자는 이 결정을 사적인 의무 위반을 공적 형벌로 다루려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간통죄 유지는 질서 유지와 공공 복리 등을 위해 불가피하며, 이를 위헌이라고 한다면 일부일처제도 위헌이라고 해야 한다는 결론은 헌재가 ‘민법상의 사적인 제도들이 오직 형법에 의해서만 유지되고 있다는 전제 속에서 사고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올해 3월 정년 퇴임한 한 헌법재판관은 헌재의 결정을 ‘지고지선’이라고 했지만, 1988년 설립 이후 헌재의 심판이나 결정의 역사는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저자는 ‘시류에 휩싸여 법리의 일관성을 놓쳐버린’ 전두환 내란행위 관련 결정이 대표적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95년 1월 20일에 12ㆍ12 군사반란과 관련된 헌법소원에서 79년 12월 13일 국방부 장관의 담화문 발표 시점이 내란행위의 완성 시점이라고 판단하고,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각하ㆍ기각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5ㆍ18 관련 헌법소원과 관련한 그 해 11월 27일에는 이전과는 달리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는 결정문을 냈다.

 불과 10개월 사이의 변화에서 우리는 헌재 정체성의 일부를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변화의 이유를 ‘대한민국을 바꾼 새로운 힘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권력자나 헌재 재판관들이 만든 힘이 아니라 민중들이 만들어낸 힘이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얼른 생각해도 헌재가 단지 수가 많다는 이유로 집단의 의사에 휘둘린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헌법은 그 해석을 둘러싼 끊임없는 투쟁 과정에서 발현되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원래 소수자를 보호하며 다수의 정의가 아니라 ‘법적 정의’의 편에 서야 한다고 저자가 거듭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입력시간 : 2005/10/14 18:55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510/h200510141853257566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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