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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화론의 이해와 비판 - 한국현대사의 재인식 25
박섭 지음 / 백산서당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에는 다섯 학자의 다섯 논문이 실려 있는데, 우파 민족주의 시각이 가장 강력히 드러난다. 그 논문들 각각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식민지기 한국의 경제성장

연구사를 통해 본 경제성장론 식민지상의 대두배경과 문제점

식민지 근대화과정과 아전

1920년대 일제 ‘문화통치기’ 민족언론의 반패권 담론투쟁에 관한 소고

일제하 한국 지식인들의 저항과 식민지 근대화론


마지막 두 개의 논문이 식민지기 우파 민족주의 언론과 민족주의 지식인들의 행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책의 주요 관점을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문화통치시기에 민족주의 언론인 동아일보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밝히는 논문에서, 이 신문은 1920년대 나름대로 식민당국에 저항하고 일제의 지배행태를 비판함으로써 총독부에 상당한 도전을 했다고 글쓴이는 주장한다. 이것은 후에 일제부역언론으로 둔갑하기 이전의 것이지만, 이 역시도 좌파진영으로부터는 개량주의나 타협주의라 해서 비판을 받게 되었고 이후에 세력이 약화되었음을 말한다.

마지막 논문은 단재 신채호와 민세 안재홍, 두 민족주의 지식인의 삶을 추적함으로써 선구적 지식인으로서의 양인의 역할을 부각시킨다. 글쓴이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하면서 만약 이것에 따른다면 이런 지식인들은 근대화라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른 사람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경제학 전공자가 집필한 식민지기 한국의 경제성장을 다룬 첫 번째 논문. 주류경제학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입장에서 그 논문의 결론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또한 자주 접해볼 수 있는 것 이상은 아니었다. 그 논문의 필자는 소비증가와 참정권확대를 근대화의 키워드로 설정하고, 이에 맞추어 식민지기 근대화가 일정 정도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식민지배의 특질인 지배민족에 의한 토착민족에 대한 조직적 차별이 자행되었고, 식민 지배를 통한 경제성장이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았다면 이루어졌을 경제성장과의 비교가 쉽지 않기 때문에 식민지배가 미화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단지 식민지기에 개발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길 바라며 이 시기에 대한 적절한 연구가 한국정부의 정책수립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비교적 안전하고 수긍 가능한 결론을 내린다.


반면 두 번째 논문은 식민지 경제 성장론에 비판적인데, 이는 한국사 정체성론을 수용하는 것이며, 또한 단지 자본가군의 성장에만 주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근대=자본주의=선이라는 단순 도식을 좇지 않는다면, 식민통치를 받지 않았을 때의 조선의 나름의 발전상을 인정한다면 양자의 조화가 반드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글쓴이는 한국이 빈곤에 허덕이던 시절엔 당시의 경제상을 식민지시기의 그것과 연결시키려는 연구시도가 존재치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식민지 경제 성장론은 한국사회의 모든 병폐가 식민지배에서 기인했다는 것과 유사한 환원주의일 뿐이라 말한다. 기존 연구들이 수탈일변도라 비판하지만 실제론 수탈에 대한 체계적 연구는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세 번째 논문은 조선말기와 아전을 다루는데, 제시된 흥미로운 가설은 이렇다. 1) ‘조선후기 아전계층의 신분상승 시도와 좌절’ 2) 국가권력의 실질적 집행자라는 지위를 이용한 수탈적 치부 3) 근대식 교육의 적극적 수용 4) 일제 식민화에 대한 협력과 이를 통한 신분상승.

황현의 ‘매천야록’과 유형업의 ‘구례유씨가의 생활일기’를 사료로 이 가설을 검증하는데, 아쉽게도 가설들이 검증되어 일반화되긴 힘들다는 조금은 맥 빠진 결론으로 끝맺고 있다. 


그러나 말단 관리층에 대한 분석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조선시기 아전들의 힘은 막강해 감사가 ‘협박’을 받아 허위보고를 올려야 할 정도였고, 조정에서도 아전의 난을 두려워해 그들의 행동을 대충 덮은 경우가 있다 한다. 그럼에도 아전들은 신분상승이 제한되어 있었고 그들의 이러한 욕구불만은 심각했는데, 일본이 신분상승과 경제적 이득이라는 유인을 제공하자 그것에 기꺼이 협력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 일본 입장에선 초기 식민지화 과정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일부에 국한된 것이지만 어찌 되었든 설령 그들을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 구조 아래 친일로 분류한다 해도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것은 왜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제도의 실질적 집행자인 말단 관리층에 대한 합리적인 처우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하겠다.


식민지근대화는 한국사회의 논쟁적 화두 가운데 하나이다. 근대화란 개념 자체가 다분히 논쟁적이며, 서구식 근대화에 대한 맹목적 추종으로 인해 자본주의와 경제성장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단점도 존재하며, 부족한 자료에 기계적 실증주의에 경도된 연구결과, 또한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연구 성과에 대한 맹목적 부정 등 많은 것이 얽혀 더욱 논쟁을 치열하게 만든다. 각종 선입견이 배제되고 특정한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은 총체적인 연구 성과들을 보다 접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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