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드팀전 > 요즘 나를 즐겁게 하는 음반
6월말 부터 거의 한달 가량 주말이 사라졌다.집 안에 들어오면 끈끈이 주걱에 포획된 곤충처럼 벗어날 수가 없다.아침인가 보다 하면 어느 새 저녁이 된다.아이를 돌보는 일은 몇 가지 패턴의 반복이다.기저귀 갈기-울면 안아주기-모유수유 보조-젓병 세척-식사 준비-잠시 휴식 x 여러번.... 그나마 아이가 잠시 잘 때 마트에 간다.와이프가 적어준 메모지를 꼼꼼히 체크하며 물건을 담는다.몇 가지 품목은 집으로 전화를 해서 '이 브렌드와 저 브렌드 중 어느 것'인지 물어봐야 된다.마트에서 쇼핑이 끝나면 수고한 나를 위해 '베스킨 라빈스31'에서 '체리 주빌레'를 먹는다.그리고 스스로에게 '휴...수고했다'라고 격려해준다.
마트 쇼핑을 가급적 빨리 끝내야 바깥에서 내 시간이 확보된다.그 짧은 시간 -대략 30분에서 1시간-은 음반 매장에서 보낸다.음반 구경도 하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숨을 돌린다.
아무래도 바깥 활동이 줄어들다 보니 반사적 탈출구로 음반를 찾게 된다.6-7월 음반 구매량이 평소보다 많이 늘었다.회사에서 인터넷으로 구매하기도 하고 짬 날때 음반매장에서 쉬면서 구하기도 하고...일하러 갔다가 약간 틈나는 시간에 중고 음반 매장을 뒤지기도하고...가끔 풍월당에서 주문하기도 하고..이 네 군데 매장에서 몇 장 씩만 구해도 한 달 예상 음반량을 훌쩍 넘긴다.소스를 하나로 통일해야 될 터인데...어느 곳에 있는 음반이 어느 곳에는 없고 하니까 눈에 보이면 그냥 넘기기가 어렵다.
6-7월에 들었던 많은 음반중에서 처음에 듣고 '아...이거다' 한 음반이 몇 장있다.물론 뒤에도 이 음반이 지금 같은 감흥을 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어떤 음반은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저냥 그렇구나 '하다가 나중에 다시 들으면 '어..이렇게 좋았구나'하고 뒷북치기도 한다.
1.베토벤 현악 4중주 전곡 (1951-1952년 녹음)-부다페스트 사중주단
부다페스트 현악 사중중단은 61년 소니에서 전곡음반이 대표적이다.최근에 나온 음반은 그보다 10년전 쯤 녹음된 음반이다.오래된 녹음이다 보니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음질....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모노 녹음이지만 음질은 깨끗하다.고풍적인 정취가 역시 부다페스트다 라는 말이 나오게 한다.가격 또한 매력적인데 8for 2 가격이다.요즘 아이 자는 동안 헤드폰으로 한 장 씩 듣고 있다.클래식 매니아라면 반드시..라고 말해도 섣부르지 않다.
2.포페 레퀴엠(피아노 편곡반)-Emile Naoumoff
사파이어라는 레이블에서 나온 음반이다.이 음반과 뿔랑의 실내악 음반을 같이 샀다.뿔랑의 음반도 훌륭하다.하지만 그다지 대중적인 작곡가는 아니다보니 이 음반이 먼저 귀에 들린다.포레의 레퀴엠 피아노 버전과 함께 몇 곡의 포레 피아노 음악들이 수록되어 있다.비오는 날 음반매장에서 이 음반을 사서 바로 매장에서 틀었다.피에 예수 부문에서는 숨소리 조차 조심스러웠다.매장 안의 손님들도 제각기 볼 일을 보면서 숨을 죽였다.
3.르 클레어 바이올린 소나타-Patrick Cohen-Akenine
르 클레어의 음악은 아무래도 여름에 잘 어울린다.알파 레이블의 녹음 역시 시냇물처럼 청량하다.천사의 음악이라고 불렸던 르 클레어 음악의 매력이 살아있는 음반이다.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가장 유명한 Le Tombeau가 수록되어 있다.비발디의 화려한 장식음이 부담스럽다면 그보다 훨씬 단아한 르 클레어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아름다운 선율미와 느린 악상에서의 서정미는 일품이다.뛰어난 음질로 인해 여름의 습기를 날릴 수 있다.
이외에도 좋은 음반은 많지만...요즘 가장 아쉬운 건 이 음반을 거실에서 들을 수 없다는 것.그리고 한 장을 다 듣지 못하고 잘라서 들어야 된다는 것이다.조금만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