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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의 문화과학, 한계효용학파의 영향 결정적…10년만에 주류학계 수용
해외동향_ 베버 연구의 새로운 테제

2006년 07월 17일   김덕영 카셀대 이메일 보내기

베버는 문화과학자와 사회과학자들에게 영원한 ‘화두’다. 그들은 베버에게 끊임없이 회귀하고, 묻고, 시비 걸고, 도전하며 그를 더욱 발전시키거나 넘어서려 한다. 심지어 ‘베버 패러다임’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수많은 학자들이 베버를 연구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작고한 프리드리히 텐브룩을 비롯해 볼프강 슐룩터, 빌헬름 헤니스, 요한네스 바이스 등의 명성이 높다. 헤니스만 정치학자고, 나머지는 모두 사회학자다.


역사학자들 가운데에도 베버연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이들이 많다. 그 가운데 볼프강 몸젠(1930~2004)을 첫 번째로 거론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몸젠은 ‘막스 베버와 1890~1920년대의 독일정치’와 ‘막스 베버. 사회, 정치 그리고 역사’라는 저서를 남겼으며, 볼프강 슈벤트커와 함께 ‘막스 베버와 그의 동시대인들’이란 책을 편집했다. 또한 ‘막스 베버 전집’의 편집위원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2004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Sociologia Internationalis’라는 저널에 ‘경제학자로서의 막스 베버. 이론경제학에서 문화과학으로’라는 논문을 기고했다(그의 사후에 게재됐음). 몸젠은 이 논문에서 베버를 오스트리아의 칼 멩거에 의해 창시된 한계효용학파와 연결시키고 있다. 베버가 방법론적 개인주의, 행위, 이념형 등에 기초하는 문화과학 연구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한계효용학파의 이론경제학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게 몸젠의 테제다. 그에 따르면 오스트리아학파의 이론경제학은 문화과학의 “한 특수한 경우”(26쪽)다. 그리고 한계효용학파가 개인의 합리적 경제행위에 대해 제시한 엄밀한 이론과 유형 및 설명모델은 전형적인 이념형적 방법이라고 몸젠은 해석한다. 비록 멩거를 위시한 이론경제학자들이 그렇게 명명하지는 않았지만.


물론 베버가 한계효용학파의 이론경제학에서 문화과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주장할 정도로 몸젠의 논의는 거칠지 않다. 그는 당대의 다양한 철학, 문화과학, 사회과학 등이 베버의 지적 세계를 발전시키는 데 영향을 끼쳤음을 알고 있다. 가령 몸젠은 베버가 문화과학 및 사회과학의 논리와 방법론을 구축함에 있어 어떻게 신칸트주의 철학자 하인리히 리케르트의 가치론을 받아들였으며, 또한 베버가 이론적-역사적 문화과학 연구 프로그램을 제시함에 있어 어떻게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을 받아들였는가를 논증하고 있다.


베버의 문화과학과 한계효용학파의 이론경제학을 연결시키려는 몸젠의 시도는 베버연구의 새로운 방향으로 받아들여진다. 여태껏 베버의 문화과학의 발달과정에 대한 연구는 주로 리케르트의 신칸트학파나 독일역사학파 경제학에 초점을 뒀다. 당대 최고의 베버연구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슐룩터가 전자라면, 정치학자로서 탁월한 베버연구가인 헤니스가 후자를 대변한다.


이에 반해 한계효용학파는 단순히 심리학주의적이고 접근방법은 자연주의적이라며 간과, 무시돼왔다. 더불어 한계효용학파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멀리하는, 이른바 공리주의적 인간유형에 기초한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사실 베버는 바로 이런 오해와 편견에 맞서 한계효용학파 경제학은 합리적 경제행위라는 근대적 문화과정과 시장이라는 근대적 문화제도에 대한 전형적인 이론임을 논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볼프강 몸젠 ©
그런데 연구사적으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으니, 이 같은 몸젠의 시도와 테제가 실상 독일어권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1996년에 몸젠이 논문을 게재한 바로 그 저널에 ‘막스 베버와 칼 멩거 중심의 한계효용학파. 사회학 발달과정에서 이론경제학이 지니는 의미에 대하여’(졸고)라는 글이 게재된 바 있다. 이 논문은 몸젠과 마찬가지로 베버는 한계효용학파의 이론경제학을 문화과학의 “한 특수한 경우”(48쪽)로 받아들인다고 해석하고 있다. 더불어 베버와 멩거와의 관계를 가치론, 이해와 이념형 등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 외에도 여러 논문에서 한계효용학파의 이론경제학이 베버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연구했음). 물론 몸젠은 이들 글이 지니는 연구사적 의미를 잘 인지하며 인용하고 있다. 졸고가 좀더 이론적인 것이었다면, 몸젠의 논문은 역사적 접근방식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강조돼온 지성사적 사실이 왜 10년이 넘어 주목받게 됐을까. 그건 정형화된 베버 해석 때문이다. 베버 하면, 으레 리케르트의 신칸트학파를 연상하는 게 공식이 됐다. 더구나 최고의 베버연구가인 슐룩터는 베버를 칸트에까지 소급시킨다. 이런 지적 풍토에서 한계효용학파의 영향은 그저 공허한 외침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다가 베버가 학생들에게 나눠준 강의원고나 편지 등 다양한 자료가 편집되면서 베버의 지적 성숙과정의 또 다른 면모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특히 몸젠의 섬세한 역사학적 분석은 한계효용학파와 베버의 관계가 단순히 이론적 차원에서나 논의할 문제가 아니라 엄연한 역사적 사실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참고로 슐룩터도 최근의 연구에서 이전보다 강하게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베버는 당시의 수많은 지적 조류를 검토, 비판, 수용하면서 자신의 독특한 문화과학 연구 프로그램을 구축했다. 이제 오랜 동안 간과되어온 한계효용학파의 이론경제학과 베버의 연구프로그램 사이의 관계가 새로운 연구테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는 과연 ‘제3 역사적-이론적 요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향후 수많은 책과 논문이 나와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수많은 반론과 비판이 제기돼야 할 것이다.

김덕영 / 독일 카셀대·사회학


©2006 Kyosu.net
Updated: 2006-07-18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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