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almas > [퍼온글] 한미FTA 시대, 통신산업의 미래가 궁금한가?
민영화·미국자본에 의해 황폐화 된 뉴질랜드의 통신산업
한미FTA는 통신분야에 있어서도,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소유 한도 폐지 압력을 불러오고 있다. 한국통신은 김대중 정부 당시에 이미 완전민영화되었고 외국인 지분 한도가 49%까지 확대됐지만, 2000년도 이후 소유 한도 확대 혹은 폐지에 대한 미국의 압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외국인 소유 한도 확대는 통신산업에 있어서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그 구체적인 사례로서 우리보다 앞서 민영화 및 외국자본의 잠식을 경험한 뉴질랜드 텔레콤(Telecom Nz, 이하 NT)의 사례를 살펴보자.
현재 한국에 머물고 있는 NT사의 전 노조 부위원장 존 가드너. 그는 "뉴질랜드는 한때 통신 산업의 선도적인 국가였으나 현재는 제3세계 수준"이라며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투자되어야 할 돈은 다 유출되었다"고 증언한다.
제1의 경영목표는 주주이익극대화
뉴질랜드 최초의 공기업이었던 NT는 1990년 민영화와 동시에 미국의 Ameritech와 Bell Atlantic이 형성한 컨소시엄에 42억 5천만 NZ달러(약 2조 4650억원)팔리게 된다.
우편, 통신, 전기 등 국가직영부서들(한국의 경우 체신부)에 대한 완전민영화에 앞서 1984년부터 진행된 주식회사화는, 민영화가 몰고 올 파괴적인 효과와 그에 대한 반발을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뉴질랜드는 먼저 주식회사화를 통해 NT의 소유(국가)와 경영을 분리한 후, 완전 민영화에 나섰는데 이같은 과정은 곧 통신산업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제한하고, 공공성 대신 시장주의의 논리가 들어서는 과정이었다.
84년 재무성이 노동당 신정부에 제출한 <경제적 경영>에서는 주식회사화와 관련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제시했다. 그것은 1. 공익목표의 상업적 수단에 의한 달성 2. 국가직영부서에 대한 모든 특혜 철폐 3. 경영목표의 공익에서 시장수익률 제고로의 전환
4. 정보공개 및 책임성 등이다.
민영화 이후 NT사 제1의 경영목표는 주주이익극대화였다. 90년 당시만 해도 주주자금이 총 자산의 58.7%를 차지하는 등 탄탄했던 NT사의 재무구조는, 민영화 이후의 엄청난 고배당 경영으로 인해 날로 악화되었다.
91년 60%, 92년 85%, 93년 104%로 올라간 이후 배당금은 매년 순수입의 100% 내외였고, 2002년에는 300%가 배당금으로 지불됐다. 2002년 NT의 적자는 1억 8천 800만 NZ달러에 달했다.
이렇게 투자해야 할 돈이 모두 유출되면서, 80년대 수준에 멈춰버린 통신설비로 인해 NT는 팩스·발신표시서비스조차 제공하지 못할 정도로 뒤쳐져 있다.
비정규직화와 반노조 정책, 통신공공성의 붕괴
또한 민영화와 외국자본에 의한 잠식은 대규모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 등 노동자들의 고통을 불러왔다. 87년 당시 2만 2천명에 달했던 정규직 노동자들은, 90년엔 1만 5천명으로, 98년엔 8천명으로, 이후 2천명 규모로 줄어들었다. 행정 관련 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가 민간위탁됐으며, 기술자들은 약 50여 명을 제외하고 모두 해고됐다.
투자자의 이윤극대화에 방해가 되는 노조는 장애물로 인식됐다.
NT는 EPMU(Engineering Printing & manufacturing Union, 공업인쇄 & 제조 조합)과의 단협을 거부하고, 노동자들을 단체 협약에서 빼내기 위해 강제퇴직시킨 후 간접고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99%의 조직률을 보였던 NT에는 현재 정규직노조가 없다.
임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존 가드너에 따르면 "원래 정직원으로 통신산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고용 신분이 전환됨에 따라 같은 업무를 훨씬 낮은 급여로 수행하게 되었다"는 것. 그에 따르면 통신산업노동자들의 임금률은 동일하거나 10년 전보다도 적다.
반면 최고경영진의 보수는 2년간 80만 NZ달러에서 1백90만 NZ달러로 폭증하는 등 매년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Ameritech가 지분을 다 팔아치우기 전인 98년, NT 사장의 총보수는 150만 달러(총 13억원)였다.
유선전화 비용도 크게 인상됐고, 통신보급확대라는 정책은 이윤극대화의 논리에 밀려 사라졌다. 98년 선출된 노동당 정부가 의뢰한 '뉴질랜드 통신:경쟁 상태'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Telecom NZ의 상호연결 가격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편에 속하며, 공급시 5배 이상(합당한 수익 포함) 더 높았다".
농촌 지역 등 이용자가 많지 않은 곳은 수십배에 달하는 설치비를 요구받게 됐다. 최근 뉴질랜드 남섬에 닥친 눈보라로 소형 교환국들이 파괴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몇몇 농촌지역들은 3주가 지나서야 복구작업이 이루어졌다.
10여 년 간의 잠식을 통해 더 이상 나올 배당금이 없어지자마자, Ameritech와 Bell Atlantic(2002년)은 모든 지분을 팔아치웠다. Ameritech는 마지막 주식을 매각하면서 38억 NZ달러의 수익을 거뒀고, 2002년 Verizon(당시의 Bell Atlantic)도 마지막 주식을 매각하면서 30억 NZ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이들은 이미 91년에 35억 5천만 NZ달러에 31%의 주식을 팔아치운 바 있다.(구입가격은 42억 5천만 NZ달러)
통신, FTA협상의 '버린 카드'?
한미 FTA 협상을 앞두고, 뉴질랜드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통신분야 만이 아니라 전력, 철도, 체신, 상하수도 등 국가기간산업의 민영화(엄밀히 말하자면 '사유화') 그리고 이어지는 외국 자본에 대한 개방이 불러올 구체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공공재인 통신산업을 특정 사기업에게 넘겨버린 KT민영화는, 이미 '저투자-고배당 경영' '투자축소' '고용불안' '통신의 공공성 훼손' 등의 문제점들을 낳고 있는데, 이 같은 현상은 외국인 지분의 비율이 확대될 수록 더욱 심화될 수 밖에 없다.
2006년 현재 KT의 국내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으로 지분율이 3%대에 불과하나, 미국계인 템플턴 펀드와 브랜디스인베스트먼트는 8%에 가까운 지분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의결가능 주식의 경우만 보자면 이미 2/3가 외국인 지분으로서, 공적인 통제는 사실상 쉽지 않은 상태다.
정부는 현재 기간통신사업체에 대한 외국인 지분 확대 요구를 거부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통신분야는 국제경쟁력이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아, 통신이 18개 협상 분야 중 '버리는 카드'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 역시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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