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측과 논박>. 이 책의 제목은 포퍼의 유명한 반증이론을 그대로 보여준다. 포퍼는 기존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의 '검증이론'을 비판하면서 '반증이론'을 내세웠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과학과 비과학을 나누는 것은 그 이론의 '검증 가능'을 척도로 내세웠다. 그들에 의하면 검증가능하지 않은 것은 과학이 아니고 검증가능한 것은 과학이다. 이를 포퍼가 호되게 비판한다.우선 포퍼는 귀납법을 비판한다. 귀납법은 논리적으로 옳지 못하다. 이는 'A의 부분은 S임으로 A는 S이다' 라고 설명한다. 즉 '이 백조는 희다, 저 백조도 희다' 그럼으로 모든 백조는 희다. 라고 말하는 것이 귀납법이다. 그러나 이는 논리적으로 옳지 못하다. 과학은 때로는 하나의 관찰에서 비약하여 하나의 이론을 내세운다고 포퍼는 말한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위의 '모든 백조는 희다'와 같은 명제는 과학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는 검증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모든 백조의 '하얌'을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무의미한 명제이다. 그러나 포퍼에 지적에 따르면 결국 과학이 추구하는 일반 이론은 전칭명제이다. 위의 '모든 백조는 희다'와 같은 명제가 바로 전칭명제이다. 때문에 포퍼는 논리실증주의자들이 과학과 비과학을 '검증원리'로 나누는 데에 실패했다고 한다. 따라서 포퍼는 <탐구의 논리>에서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주장한 '검증원리'를 거꾸로 변형시켜 반증원리를 주장한다. 포퍼는 어떤 설명적인 보편적 과학이론도 검증(또는 귀납적 방법)에 의해서는 그 무한정성 때문에 완전히 증명될 수 없지만, 그 반증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반증이란 단 하나의'반대적 사례'에 의해서도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을 통해 포퍼는 '반증원리'를 진정한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시켜주는 척도로 삼았다. 포퍼는 베이컨 이후 경험적 지식이 귀납법적으로 획득된다는 입장에 반대하고 '의문제기 - 가설설정 - 가설검증 - 이론수립'으로 이루어지는 가설연역법으로 정립된다고 규정한다. 포퍼에 의하면, 과학적 이론은 먼저 가설의 형태로 제시된다. 이 가설을 우리는 실험과 관찰 같은 경험으로 입증하여 지식으로 삼는다. 실제로 이는 고등학교 과학시간 때에 말하는 과학이다. 즉 고등학교 국정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일반화된 이론이다. 이에 대해 유명한 역사학자인 E. H.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포퍼에 있어 이성의 지위는 집권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들을 집행할 뿐 아니라 그것들이 좀더 효율적인 것이 되도록 실제적인 개선책을 건의할 수 있는 자격은 있지만, 그것들의 근본적인 전제나 궁극적인 목표를 의심할 자격은 없는 영국 공무원의 지위와 비슷하다.' 고 비판한다.나아가 그는 '학문에서든 역사에서든 사회에서든, 인간사에서의 진보는 기존질서의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하는 일에 스스로를 제한시키지 않고 현존질서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이 의지하고 있는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전제들에 대하여 이성의 이름으로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했던 인간들의 그 대담한 자발성을 통해서 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나중에 쿤이 과학에 있어서 진보는 패러다임의 혁명적 변화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포퍼를 비판했던 것과 연관을 지을 수 있다. 그는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포퍼의 주장대로 가설 - 반증을 거치며 합리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아니며, 단순히 '패러다임'의 산물이라고 비판한다. 이렇듯 포퍼의 단점은 이성에 대한 신뢰가 너무 크다는 것에 있다. 그는 과학적 이론을 '반증가능한 잠정적 진리'라고 하고 이것의 반증을 통해 우리는 보다 '옳음'으로 갈 수 있다고 하지만, '왜 이성은 옳은 방향으로 가는가' 라는 것은 반증가능한 가설이 아니라 대전제인 그저 믿음일 뿐이다. 포퍼가 비판했던 비트겐슈타인의 말로 그의 '반증주의'의 핵심을 비판해 본다.'근거가 제시된 믿음들의 바탕에는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믿음이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