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김윤식-김현의 한국문학사

고종석의 연재칼럼이 마무리되면서 어제 읽어본 수요일자 한국일보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그런저런 기사들은 인터넷에서도 읽을 수 있기에). 그간에 목요일자 신문은 주로 경향신문을 봐온 터에 주목하지 않았었는데 '우리시대의 명저50'은 목요일에 연재되는 모양이다.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김윤식-김현의 <한국문학사>가 다루어진 걸 보고 편의점에서 가서 한국일보를 사들고 왔다. 글쓰기는 온라인 공간을 많이 활용하는 편이지만 나는 사실 'e-북'이나 'e-저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그런 경우에도 대개는 프린트해서 읽는다. 물론 서비스되는 거야 편리하고 또 고마운 일이지만) '신문지 세대'이다. 보관상의 난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긴 하지만 글/책은 '만질 수 있어야' 제맛이고 제격이다(그러니까 눈으로 본다는 게 전부가 아니다). 

안 그래도 필요 때문에 한국문학사, 특히 현대문학사를 다룬 책들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아쉽게도 '우리시대의 명저' <한국문학사>는 내 경우 박스보관도서이다(거의 징크스가 되고 있는데, 박스에 집어넣은 책이나 주제에 대해서만 강의나 일거리를 맡게 된다. 집안을 둘러싸고 있는 책들 가운데는 '일없이' 놀고 있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다고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자니 멋쩍고, 다시 구매하자니 부담스럽다. 책보다 비싼 건 책을 꽂아놓을 공간이다. 그나마 이런 류의 기사는 온라인에 보관해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한국일보(07. 03. 01) [우리 시대의 명저 50] <9> 김윤식·김현 공저 '한국문학사'

모자이크화는 작고도 이질적인 단위의 점으로 구성돼 있다. 감상자의 시야가 넓어질수록 그 화소(畵素)들은 한 편의 그림에 충실히 복무한다. 완전히 다른 생명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한국문학사>(민음사)는 견실한 모자이크화다. 김윤식과 김현이라는 빼어난 화가들이 함께 모사해 낸 한국 문학 전도(全圖)다. 그 두 사람이 각각 어느 대목을 서술했는지, 절(節) 단위까지 서문에 명시돼 있긴 하다. 그러나 독자는 읽어가다 보면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두 사람이 교직해 가며 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우리 학술사가 일궈낸 아름다운 풍경이다.

1973년 1판이 선보인 뒤 96년 29쇄로 1판은 마감하고, 다시 그 해에 개정판의 시대로 돌입했다. 여느 개정 작업처럼 내용에 대한 수정이 아니라, 한문 투의 문장을 시대에 맞게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이었다. ‘초판이 곧 정본’이라는 완벽주의적 신념 혹은 염결성(廉潔性) 덕에 책은 전국 대학의 국문과 120여 곳에서 여전히 교재로 쓰이는 등 그 의미를 확인해 왔다. 임화 -백철 - 박영희 - 조연현 등 선구적 학자들의 맥을 잇되, 여전히 현장 교육에서 애용된다는 점에서 새삼 돋보이는 결과물이다.

책은 대단한 자의식, 또는 자긍심의 소산이다. 우리 역사의 운명 혹은 질곡이었던 주변 문화성을 문학적으로 극복한다는 목적의 소산이었다. 한국 문학사 고유의 개별적 추진력을 모색하는 한편 한국 근대사의 추진력이 무엇이었는가를 철학적 면에서 바라보자는 의지의 소산이었다. 자칫 생각만 웃자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수많은 토론과 세미나가 빈 틈을 촘촘히 메워주었다. 두 사람 사이의 굳건한 합치점 덕택이었다. 문학사란 역사와 다르게 예외적 개인에 관심을 쏟지만, 결국 당대 특정 계급의 무의식적 기반을 보여주는 상상적ㆍ풍속적 전거라는 것이다.

책은 서세동점의 위기의식이 그와 짝을 이루던 당시, 의식을 혁파하고자 한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김삿갓의 시를 통해 혁명까지 나아가지 못한 그들의 한계부터 논한다. 권력 구조의 밖에 서 있는 지식인의 쓰디쓴 자기 반성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직접적으로는 19세기말 조선이 서구의 충격에 의해 국가 상실의 위기에 직면할 때, 부자 중심의 가족 관계가 역기능일 따름이었으며, 이후 이광수의 자유연애론과 이상의 가족 콤플렉스 등으로 연결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적극적 의미가 있다면 시조, 판소리, 가면극 등 민중적 예술 양식이었다. 개화기의 표면적 혹은 포괄적 현상을 풍속 혹은 유행의 차원에서 가장 잘 드러낸 양식, 연극은 그 적자였다.

책의 문제 의식은 철저하다. 난세 혹은 전환기에서 진정한 역량은 어디 있는가에 맞춰져 있다. 한국 문화가 중국 문화권의 말단 주변인가 혹은 중간 문화권인가 하는 논란, 문화 수용에서 나타나는 엘리트와 민중 간의 편차 등 역사의 동인에 대한 철저한 자의식이 문학 작품의 형식을 통해 간단 없이 확인된다.

유길준이 탁월한 언어 감각에도 불구, 국한문 혼용체에 머문 것은 신분 사상과 평등 사상이 공존해 있었던 내적 갈등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또 역사 의식이 결여돼 있던 이광수는 작품상에서 혁신적 개념과 보수적 사고 관례가 무반성적으로 공서(共棲)하는 우를 피하지 못했다. 소월은 창가 리듬에서 벗어나 새 운율을 찾는 노력을 보여주었으나, 절대에의 탐구를 포기했기 때문에 결국 새로운 민요 이상이 되지 못했다.

개인과 사회를 발견한 것은 염상섭 최서해 김동인 현진건에 이르러서 였다. 서울 중류 계급의 어휘량. 중인층의 현실 감각을 섬세하게 용해한 염상섭은 계급 해방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조선적인 것의 탐구(궁극적으로는 해방)가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의 묘사는 한국 소설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탁월하며, 특히 <삼대>는 채만식의 <태평천하>와 함께 식민치하 작품 중 최상급에 속한다. 자신은 개량주의적 입장에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다같이 흡수하려 했지만, 그러한 태도가 실제 문학화 하지 못한 점은 염상섭의 유일한 한계다. 이와 반대로 김동인은 계급 문학이 있다면 계급 빵, 계급 음료수도 있는 것이냐며 치기 어린 절규를 해보았지만 퇴폐적 정서로 자신의 이상주의를 오염시키고 말았다.

한편 이상은 ‘태도의 희극’이라는 문학적 주제를 극한에 이르기까지 몰고 간 식민지 시대 유일의 작가다. 자신이 속한 사회와 그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금기 체계, 그 금기 체계 내에서 생존하지 않을 수 없는 일상인들을 그는 다같이 부정했다. 그의 주인공들은 결사적인 자기 폐쇄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은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무리 폐쇄적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는 사회와 은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잔인한 관계를 철저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상은 부정적인 자기 폐쇄를 통해 정당하게 사회와의 통로를 차단당한 인간의 파산을 여실히 보여준다.

격한 직설체, 센티멘털한 열정의 작가 임화는 한국 문학사를 서구 문학이나 일본 문학과의 연관 아래 비교문학적으로 다루려 했으나 방법적으로 실패는 예정돼 있었다. 이상 채만식 박태원 김유정 같은 탁월한 작가들은 현실과의 치열한 투쟁을 작품화했고 이태준 김남천 등은 페이소스, 시니시즘, 유머 등의 수단을 통해 작품을 완성했다.

박태원이, 식민 치하의 가난을 극복할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자유 연애를 은근히 주장하는 것은 서울 서민층의 폐쇄성과 칩거성을 그것으로나마 극복해 보려는 조그만 의지의 소산으로 읽힌다. 단, 콤마의 적절한 사용으로 감각적 탄력성을 획득했다는 점, 지적인 재치와 심리주의로 요약되는 다양한 실험 정신은 높이 살만한 작가다.

한국어 훈련이란 관점에서 주목되는 시인들이 있다. 감정의 절제를 가능한 한도까지 감행해 본 한국 최초의 시인 정지용, 일제 식민 치하 후반기에 민족주의적 시를 당당히 쓴 ‘기적’을 보여준 윤동주, 일본 리듬인 7ㆍ5조로 기울기 일쑤인 정형시를 새 차원으로 격상해 시조를 현대시의 한 장르로 확고히 자리잡게 한 이병기, 시에 회화성을 도입해 끝까지 밀고 간 김광균, 자폐적 리리시즘의 김영랑 등.

해방 공간과 그 이후의 한국 소설은 만주의 대서사시를 쓴 안수길, 낭만주의적 현실 인식의 황순원, 휴머니즘의 기수 김동리, 도회 취미를 띤 과장적 자기 고백의 손창섭, 뿌리 뽑힌 인간을 탐구한 소외 문학의 최인훈 등으로 요약된다.

시로는 진실 탐구로서의 언어와 불교적 인생관을 천착한 서정주, 메시아를 열망한 박두진, 무의미의 미학을 추구한 김춘수, 소시민의 자기 확인과 항의의 김수영. 소멸의 시학을 추구한 고은, 실험의 작가 박목월 등을 주목한다.

조선조 후기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한국 문학을 조감한 책의 말미. 책은 해방 공간의 이데올로기 문제란 결코 간단치 않음을 다시 상기시키고, 대미 관계와 4ㆍ19의 재해석, 작가들의 전기 연구, 나아가 지성사와 병행하는 문학 연구를 갈망하며 화룡점정에 대신한다.(장병욱 기자)

"내가 지금 읽어봐도 명문이네. (지금껏 판을 바꿔 오면서도) 한 자도 안 고쳤네…." 서문을 읽어 가던 김윤식(71ㆍ서울대 명예 교수) 씨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웃음기가 감돈다. 34년 세월을 변함없이 이어 온 초판의 서문은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라는 이 시대를 예감하기라도 한 듯, 비장미마저 감돈다. '문학에 대한 경멸과 백수(白手)에 대한 조소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어져 가고 있어 보이는 지금, 인간 정신의 가장 치열한 작업장인 문학을 지킨다는 것은….'

"당대의 시대적 과제였던 식민사관 극복 작업에서 국사ㆍ국문학자의 자부심은 대단했어요. 독립 운동한다는 심정이었으니까." 당시 김현씨와 밤 새가며 토론했던 문건이 서울대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던 양안(量案ㆍ토지 대장)이었다. 사조나 문단의 흐름이 아니라 사회경제사에 토대를 둔 '과학적 문학사'라는, 미증유의 길은 그렇게 트였다.

"이 책은 전적으로 민족주의적이에요. 문학의 독자성에 대한 고찰이 없다는 게 최대의 약점이랄 수 있을 정도로." 일제와 미군정하 국민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그와, 4ㆍ19 세대인 김현에게 근대화라는 화두는 지고의 이슈였다. 시대 정신에 충실했던 책에 대한 수요는 출간 2, 3년 만에 급상승했다.

내용뿐 아니라, 인세도 한 해씩 번갈아 지급 받을 정도로 이 책을 정확히 공동 소유하는 김현씨. 집필 당시 그와 함께 펼쳤던 풍경은 우리 지성사의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된다. "연구실, 술집 가리지 않고 벌어졌던 토론이었죠. 문학은 물론 경제학, 사회학자들까지 참석했던."

그러나 책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 김현의 부재는 그의 가슴을 무겁게 한다. "후배지만 배울 게 많았어요. 아주 작은 원고지에다 늘 글을 쓰고 있었죠. 풍부한 인간성에, 섬세하면서 자상했었는데…." 공조자 김현은 그의 의식 속에 현존하는 듯 했다. "지금껏 얘기들은 김현의 말이 빠진, 내 개인의 생각이므로 부분에 불과해요. 사실 나로서도 그의 의견이 매우 궁금합니다."

김윤식

1936년 경남 진영 출생, 서울대 국어과 졸업
1975년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2001년 명지대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
주요 저작 <한국 근대 문예 비평사 연구>, <한국 근대 문학 사상사>, <황홀경의 사상> 등

김현

1942년 전남 진도 출생, 서울대 불문과 졸업
1986년 서울대 불문학과 교수
1990년 작고
주요 저작 <현대 한국 문학의 이론>, <시인을 찾아서>, <한국 문학의 위상>, <젊은 시인들의 상상 세계> 등

07. 03. 01.

P.S. 마침 오늘이 3.1절이어서 "당대의 시대적 과제였던 식민사관 극복 작업에서 국사ㆍ국문학자의 자부심은 대단했어요. 독립 운동한다는 심정이었으니까."라는 멘트가 인상적이다(오래전 강의실에서 자주 듣던 회고조의 말씀이기도 하다). <한국문학사>의 초판이 나오던 시점에(도서관소장본은 1974년판이다) 두 저자는 30대 중반의 '청년' 국문학자와 불문학자였다. 누군가 현대는 '에피고넨의 시대'라고도 불렀지만 그만한 패기와 열정으로 무장된 '청년들'을 요즘은 찾아보기 어렵다(조숙한 원로들은 차고 넘친다). 인류의 지성은 혹 진화하는지 모르겠지만(적어도 축적되는지 모르겠지만) 패기/열정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그건 좀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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