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남쪽에 살던 사람 중 일부가 바다 건너 일본으로 긴서 살았습니다. 이 때부터 일본에도 본격적인 농경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와 더불어 일본의 남쪽에 있는 규수는 한반도의 앞선 문화를 받아들이는 역할을 했습니다.이때만 해도 한반도와 일본은 전쟁을 벌이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기술을 전해 주거나 옮겨 가서 이웃 관계였습니다.고려 11대 국왕 문종- 안으로누 효율적인 여러 법을 만듬.- 학문을 좋아하여 철학ㆍ역사ㆍ문학ㆍ천문학 서적들을 인쇄힌여 전국으로 보내게 했으며, 불교ㆍ미술ㆍ공예 등 다방면으로 문화 예술의 발전시킴.고구려 정부는 왜인이 우리나라 지리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육로로 다니는걸 금지하고 예성항을 통해 거라하는 것만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100년 정도 지속되다가 뒤에 일본인 해적이 나타나면서 끊어졌습니다.조선군 침략을 지휘한 일본 총책임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한 사람당 세 개씩 코를 베어 오라'고 명령하여 살인을 부추겼습니다. 명령에 따라 왜군들은 닥치는 대로 조선인 코를 베어 1천 개씩 대나무 바구니에 넣어 일본으로 보냈습니다.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눈 감으면 코 베어 갈 세상'이라누 말이 생겼습니다. 이에 비해 왜군은 전투 결과를 증명하는 증거물로 긴져간 코를 일본 땅 몇몇 곳에 묻었고 코가 얼마나 많은지 큰 언덕만 합니다. 코 무덤이 섬뜩하다고 해서 이를 귀 무덤이라고 부릅니다.강화도 조약은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침략을 전혀 막을 수 없도록 만든 나쁜 조약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세 항구 개항을 통해 자기네 이익이 유리한 무역을 강요했고, 조선 땅에서 '그 나라의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권리'을 인정받아 일본인이 조선 법률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게 했습니다.'명성 황후 시해 사건'일본 사무라이들은 건청궁에서 명성 황후를 찾아낸 다음 죽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그들은 동편 녹원에서 왕비 시체에 석유를 끼얹고 장작더미를 쌓아 얹어 불을 질렀습니다.이는 을미년에 빚어진 참극이라 해서 '을미사변' 또는 '을미참변' 이라고 말합니다.일본은 왜 이처럼 야만적인 일을 벌였을까요?그 이유는 하루빨리 조선을 완전히 지배하고픈 침략 욕망에 있습니다.일본을 견제하는 명성 황후를 제거해야 자기네 뜻대로 정책을 펴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지요.이 사건 이후 고종은 크게 불안해했고, 조서 관리 중 기회주의자들은 재빨리 친일파로 변신했으니 일본의 목표는 어느 정도 이뤄진 셈이 됐습니다.조선인은 풍수신앙을 깊이 믿고 있습니다.일제는 관리들을 시켜 전국 곳곳 명당에 말뚝을 박거나 솟물을 녹여 부어 혈 또는 혈맥을 끊으려 했습니다. '혈'은 땅에서 근원적인 힘이 묘인 자리, '혈맥'은 기운이 흐르는 길을 뜻합니다."급소를 찔러야 힘을 쓰지 못한다"일제는 수많은 곳에 쇠 말뚝을 박았습니다.이 일들은 과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일제는 왜 그런 짓을 했을까요? 그 이유는 맥이 끊겨서 큰 인물이 태어날 수 없다거나 아무 희망이 없다는 따위의 절망덕인 생각을 노린 것입니다.하ㅡ 정말인지 ... 대단하다고 생각하네요..읽는 내내 하ㅡ 하ㅡ 한숨만 나오고 가슴 한편이 먹먹하네요..정말 모두가 꼭 알아야할 안일 외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