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제스 월터 지음, 오세원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일하는 일터는 아침에 내 자리 피시에서 회사 인트라넷에 들어가 사번을 치고 로그인을 해야

근태가 처리된다. 꼭 내 자리 피시에서만 가능해서 사전에 외부 미팅이나 개인적인 약속들이 있다

면 미리 통보해서 처리해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로그인할 때까지 '결근'처리되는 존재

이다. (별 그지같은 회사도 있다. -.-)

 

그런 순간에..또는 뭘 열심히 하다가 무심코 내 목에 걸려있는 아이디카드들, 신분증,출입증, 

뭐가뭐가 잡다하게 달려있는 목걸이줄을 바라보는 그 순간에, 때때로 무섬증이 날 때가 있다.

 

"오늘 아침 로그인 할 곳이 없다면,  또는 

  지금 내 목에서 대롱거리고 있는 이 아이디 카드들을 반납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하는 뭐 그런 것들 말이다.

 

하긴 그런 순간이 온다해도 어쩌겠는가. 작은 나사 하나쯤은 빠져도 시계는 잘 돌아가는게 

세상의 이치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흔쾌히 수긍하기에는 '몰락의 공포'는 아프고 

뒷머리를 써늘하게 한다. 그건 내가 건사해야 할 식솔이 딸린 가장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면야 뭔 걱정이겠는가. 되레 쌍수를 들어 반기며 그날로 산으로 들로 떠나 

매일 술이나 잔뜩 퍼마시며 음풍농월하고 살겠지만) 처성자옥(妻城子獄)이다.

 

이런 ' 가장 딜레마'의 비애와 우수가 한판의 시트콤으로 버무려진 게 제스 월터의 책이다.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김병욱PD의 <하이킥>시리즈다. 

특히 정준하가 취직못하고 빌빌거리며 살던 첫 시즌의 아우라가 생각난다.

(정준하의 해고 소식을 듣고 불꺼진 거실에서 온 가족이 울던 42회 에피소드의

감정선을 생각하면...이 에피소드는 정말 한국 드라마의 빛나는 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이 웃긴다. 그래서 더 무섭다.

 

갑자기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탄 우리의 가련한 주인공 '맷'의 미덕은 그 파란만장,

우여곡절에도  '어설픈 자기 연민'도 없고 '후회와 합리화'도 없다는 것.

단지..."그래도 우짜겠노..살아야지"하는 담담한 긍정만 마지막에 남았다.

태양은 뜨고, 아이는 자라고...길은 있다.  

 

아 ...근데, 이 귀절은 잔향이 크다.

 


 "언제가 우리가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이전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때는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다. 

  이전에 더 큰집에서 더 좋은 가구들을 비치하고 자가용 두 대를 굴리며 살았을 때, 

  네 식구 모두 같이 영화를 볼 돈이 있었던 그 때,

  왜 더 행복할 수 는 없었을까."

 


 

김어준의 적절한 표현처럼 '행복은 저축되는 것이 아니다.

 

주말에 읽다가 맥주만 많이 마셨다.

 

아이고 열심히 일하는척 하러 가야겠다.

나에게도 '세븐일레븐(sic)' (p12) 같은 날이 도적처럼 들이닥쳐

마리화나를 팔러 다닐까 고민해야 하는 철이 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40대 중반의 남자에게는 디디는 발마다 무저갱이 입을 벌리고 있다.

아. 무섭다. 그리고 우습다.

Ps. 대체 이 책의 편집자는 '교정'과 교열을 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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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never 2014-09-18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다 검색을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고군분투 생활기를 번역한 사람입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해 본 번역이어서 많이 애착이 남는 책이에요.
말씀대로 맞춤법도 틀리고...여러모로 부실한 구석이 많았을 겁니다.
나름으로는 재미있었던, 그리고 울림도 있었던 책인 것 같은데 출판사 사장님이 애초부터 이천부면 만족한다고 낸 책이어서....
재미있게 읽어주신 것 같아 반가워서 한 줄 남겼습니다.

http://blog.naver.com/asnever

알케 2014-09-19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ㅎㅎ 역자 선생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건필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