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추리에서..기륭전자 정문 경비실 옥상에서..한진중 85호 크레인 앞에서..
희망버스에서 아픈 다리로 절뚝거리며 투쟁하던 해사한 얼굴의 시인을
이 엄동에 감옥에다 두고 또 한 해가 간다.
고졸, 소년원출신, 일용직 노동자, 시인으로 줄여지는 그의 프로필에 숨겨진
열정과 분노, 이해와 통찰 그리고 애정과 연민이
그보다 더 배우고 그보다 더 잘사는 내 삶을 비루하게 만든다.
늘 싸우거나 수배중이었던 아빠를 이젠 한 곳에서 자주 볼 수 있어
좋아한다는 그의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를 돌려주어야 한다.
송경동을 석방하라.
이 무도한 새끼들아.
<외상일기>
- 송경동
셋방 부엌창 열고
샷시문 때리는 빗소리 듣다
아욱, 아욱국이 먹고 싶어
슈퍼집 외상장부 위에
또 하루치 일기를 쓴다
오늘은 오백원어치의 아욱과
천원어치 갱조개
매운 매운 삼백원어치의 마늘맛이었다고
쓴다. 서러운 날이면
혼자라도 한 솥 가득 밥을 짓고
외로운 날이면 꾹꾹 누른
한 양푼의 돼지고기를 볶는다고 쓴다
시다 덕기가 신라면 두 개라고 써 둔
뒷장에 쓰고, 바름이 아빠
소주 한 병에 참치캔 하나라고 쓴
앞장에 쓴다
민주주의여 만세라고는 쓰지 못하고
해방 평등이라고는 쓰지 못하고
피골이 상접한 하루살이 날파리가 말라붙어 있는
슈퍼집 외상장부 위에
쓰린 가슴 위에
쓰고 또 쓴다
눈물국에 아욱향
갱조개에 파뿌리
씀벅 나간 손 끝
배어나온 따뜻한 피 위에
꾸물꾸물
쓰고 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