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철학사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 지음, 박민수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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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루 살아가는 일이 전쟁같다. 박노해가 노래한 것처럼 '전쟁같은 밤일'이라고 부를만큼 몸으로 일하는 건 아니라지만

'생업의 고단함'이야 너나없이 힘든 세월이다.

일을 마치고 늦은 밤 돌아와 아내와 아이는 잠들고 나는 밤이 깊도록 서재에서 이 책을 읽고 있다.

읽고나면 부자가 되는 법을 일러준다는 수많은 실용서들을 두고 이 어지러운 시절에 철학사를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

이 어지럽도록 변화하는 세계와 나이 마흔이 넘도록 살아도 알 수 없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의구심과 미련 때문일까 ?

그리고 삶이란, 사유란, 가치란 ?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서일까 ?

(누구도 답할 수 없는 허망하고 객쩍은 질문들을 나열하지니 우세스럽기만 하구나.)


실상 그 이유는 이 책이 나에게 pain killer이기 때문이다. 

나이 마흔이 넘어보니 삶이 고달플수록 진통제와 각성제가 필요하는 순간이 있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내 몸과 머리는 예전같지 않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외면하기에는

처성자옥(妻城子獄)의 현실이 엄혹하기만 하다. 이런 시점이 각성제와 진통제가 필요한 순간이다.

 밀리지 않고 깨어있으려면 각성제가 필요하고 그 스트레스를 없앨려면 진통제가 필요하다.

그래서 어떤 인사들은 자동차를 매년 바꾸고 또 어떤 이들은 카메라를 사고 오디오 앰프를 산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는다. 카메라와 자동차와 오디오와 책은 같은 함량의 진통제일 뿐이다.


참 재미있는 책이다.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임이 분명했을 저자의 성격이 곳곳에 배어있다.

그 결을 살린 번역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어떤 당파적 시각이나 철학적 전제나 선입견없이

인도철학부터 현대철학까지 인간의 사유방식을 큰 틀로 조망힐 수 있는 점은 큰 미덕이다.

(철학전공자가 아니니 세세한 리뷰는 내 몫이 아니다.)

각성제가 필요한 '아저씨'들에게 권한다.

P/S

80년대 어두웠던 대학시절에 철학사를 소위 '세철'이라 줄여 부르던  녹두에서 나온 세계철학사로 읽었다.

구소련 정치철학아카데미에서 엮은 이 책은 마르크스 철학의 전반을 조명하고 유물론적 시각에서 역사를

짚어봄으로써 소위 신입생이었던 나의 '인식교정'에는 기여한 바가 크지만 도무지 뜻을 알수 없는 조악한 번역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었다. 그래서 이 책의 번역은 큰 상찬을 받아야 한다.

다시금 파시스트들이 준동하는 이 시절에 누군가 다시 '커리'를 짠다면 부디 한스 요아힘의 이 책으로 시작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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