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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 프랑스 현대문학선 22
조르주 페렉 지음 / 세계사 / 1996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의 욕망은 치유할 약이 없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던 소설 속 한 구절이다. 샤를르 쥘리에 소설 속의 문장,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 문장이 내내 생각났다. 욕망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환상들, 끊임없이 떠올라서 괴롭히는 영상들. 물론 욕망의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계속 이 문장을 되뇌이고 있었다. 우리의 욕망은 치유할 약이 없다...  TV를 켜는 순간 넘쳐 나는 물질적인 환상들, 혹은 거리의 쇼 윈도우에서 만나는 유혹의 손짓들. 우리는 그 강렬한 유혹에 이미 강하게 중독되어 있으니까.

책의 서두. 마치 카메라가 촬영하듯이 방안의 풍경이 묘사된다. 다소 이국적인 풍경이긴 하지만 늘상 꿈꾸어 오던 장면과 거의 다르지 않다. 커다란 가죽소파, 고풍스런 장식품들, 영국풍의 커다란 침대, 책장 가득 꽂힌 책들. 단순하면서도 풍요로운 삶이 있는 풍경. 느지막한 아침, 저절로 눈이 떠지면 일어나서 토스트와 커피만으로도 풍요로운 아침식사를 하고 늦은 오후 슬슬 카페로 나가 커피 한 잔에 신문을 읽는 그런 모습. 그런 모습엔 소설에 나오는 문장대로 물질적인 삶과 관련된 모든 의무들과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되어 있을 테고 그저 간단하고 쉬운 삶만이 있을 것이다. 그래, 사실은 내 머릿속 어디엔가에도 이런 풍경이 꿈의 한자락처럼 고이 접혀져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뜨끔했던 것도 내 머릿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롬과 실비,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꿈꾸면서 늘 '부자가 되고픈 욕망'에 시달리는 그들, 그들은 "좀 더 넓은 방과 샤워실, 식단이 다채로운, 학생식당보다는 좀더 양이 많은 식사, 그리고 자동차와 레코드, 바캉스, 옷"을 원한다. 마치 부에 대한 환상에 취해 있는 것처럼 안락한 생활에 대한 환상과 현실적인 생활 사이에서 아슬아슬 오고 가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 위태해 보였다. 그들은 꿈꾼다. 백만장자가 되기를, 좀더 넉넉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기를. 그렇게 비현실적인 꿈만을 바라보는 생활 속에서 일상은 당연히 후줄근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어느 정도의 부가 안정적인 생활의 바탕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부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때 삶은 너무나 황폐해진다. 그렇게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물질적인 것에 맞춰졌을 때 황폐해질 수밖에 없는 삶의 모습을 페렉은 제롬과 실비라는 두 인물을 통해 쓸쓸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현대 소비사회에 관한 탁월한 사회학자의 보고서>라는 평을 받으며 '소설이냐, 비소설이냐'로 논란이 되기도 했던 작품. 페렉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단순한 방법으로 살기를 방해하는 수많은 사물들에 대한 광고의 유혹"이라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경제의 안정성은 노동자 계급을 생산력이라는 차원에 강제적으로 복종시키는 것보다 여가의 정신적 성격을 어떻게 조작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비평가의 해설 중 한 부분은 그런 점에서 매우 귀담아 들을만 하다. 노동력보다 욕망에 집착하는 소비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광고는 그 역할을 아주 충실하게 잘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통제가능한 욕망을 즐겨라, 욕망의 노예가 되지는 말아라. 광고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말라. 이 책을 읽고 나서 대충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는데 부자가 되라고 충고하는 서적들이 붐을 이루는 요즘, 가난은 죄이고 부는 신성한 것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는 현실 속에서 현실적인 수단과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의 연결지점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정할 수 있을지 나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조금 쓸쓸하게 들렸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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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
장 필립 뚜생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4년 7월
평점 :
절판


조금 이상한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루한 영화가 좋다. 어떤 특별한 사건도 없이 그저 일상적인 삶을 군더더기 없이 보여주는 영화, 그런 영화가 좋다. 그 일상의 틈 속에서 삐죽이 새어나오는 의식의 면면을 느낄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고. 이 책이 마음에 든 것도 어쩌면 그때문이었을까.

별다를 것 없이 무의미한 일상들, 운전교습을 시작하게 된 그가 운전학원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파스칼이라는 이혼녀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되는 그녀와의 자잘한 일상들, 이를테면 그녀의 아들 피에르를 데리러 학교에 가기도 하고 빈 가스통을 채우러 돌아다니는 그런.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 전개. 게다가 문득 문득 끼어드는 음울한 사색의 편린들. 어쩌면 이렇게 문득 문득 끼어드는 냉소적인 또는 다소 절망적이기까지 한 그의 의식마저 없었다면 더 지루했을 수도 있겠다.

그래, 한가지 더. 이 소설은 조금 우울하기까지 하다. 평범하다고 생각되는 하루 하루의 일상 속에서도 가끔씩 몰려드는 알 수 없는 우울함이 있지 않은가. 그런 우울, 나른한 일상의 한켠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그런 우울함들이 소설의 중간중간에서 스며나온다. 나른하다는 느낌, 그 느낌에도 슬픔이 배어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즐거웠던 기억들이 한 순간의 시간에 고정되어 버린 사진 속에서 왠지 모를 우울한 기분을 느꼈었던, 언젠가 암실에서 사진을 현상하면서 느꼈었던 그런 감정들과도 비슷한 느낌이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직 어두운 새벽길을 혼자 나설 때의 그 느낌, 혹은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그 기분 같은.

"너와 현실과의 싸움에서 의욕을 버릴 것"
집요한 공격으로 저항을 잃고 흐물흐물해지는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 그의 상념을 느릿느릿 따라간다. 캄캄한 사진 박스, 주유소 화장실, 마치 세상과 격리된 듯한 어둠 속의 컴컴한 공중전화 부스같은 고립된 장소만 있으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의 상념들. 그 고립된 세계 속으로 끊임없이 침잠해 들어가는 우울한 내면 풍경들. 더이상 가라앉을 찌꺼기마저 없을 것 같은 그런.

이렇게 우울하면서도 이 소설은 역설적이게도 무척이나 아름답다. 여행 중에 충동적으로 남의 사진기를 훔치고 남은 필름으로 사진을 마구 찍어대고 그리고 바다에 사진기를 던져버리는 장면, 깊은 밤 공중전화 부스에서 깊은 사색에 빠져드는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나른하면서도 감각적인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 이 소설은 "언어 기호가 영상 기호보다 화면적으로 풍부한 울림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소설가 윤대녕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찬가지로, 이 소설이 뚜생의 소설 중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데에 수긍할 수 있었던 것도 나른한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감각적인 사유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척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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