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과 여전사 1 - 21세기 남과 여
이명옥 지음 / 노마드북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꽃미남과 여전사. 책의 제목에서부터 강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이 책은 21세기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메트로섹슈얼과 콘트라섹슈얼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21세기에 들어와 왜 우리는 꽃미남과 여전사에 열광하게 된 것일까, 라는 호기심 말이다.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성스러운 여자, 여성스러운 남자는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던가. 여성과 남성의 아름다움은 지나칠 정도로 고정되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여 남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미지가 쉽게 바뀔 수 있었고, 우리는 그것의 아름다움에 매료당하게 된 것일까.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한다.

이 책은 크게 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장에서는 세계 신화, 연금술, 종교, 심리학, 예술에 나타난 양성미를 살펴보고, 두 번째 장에서는 메트로섹슈얼과 콘트라섹슈얼의 아름다움을 구현한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책을 준비하면서 놀랍게도 신화, 종교, 예술에 나타난 인간의 원형은 남녀양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남자다운 외모, 여자다운 외모에 집착한 것은 전통과 관습의 잘못된 결과라는 것이다. 결국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인간의 원형을 남과 여로 구분하게 만들었다는 애기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남과 여가 하나였던 인간의 원형을 여러 가지 자료들을 통해 증명해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의 모든 그림들은 ‘우리가 하나였다’는 사실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남녀의 성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인물이 나오는 세계 신화를 통해서, 그리고 남성적 원리와 여성적 원리를 사랑의 불길로 결합해서 초월적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연금술의 궁극적인 목적을 통해서 저자는 남녀양성이라는 인간의 원형을 탐색하고 있다. 또한 남녀는 외형적 성별은 다르지만 영혼은 남녀양성이라는 융의 아니마·아니무스 이론과 양성미를 자랑하는 기독교의 천사들과 불교의 관세음보살 또한 인간의 원형을 설명하기 위한 중요한 뒷받침 자료가 된다.

이렇게 신화와 종교, 연금술, 심리학을 오고가는 저자의 탐색은 다시 현실로 되돌아온다. 인간의 원형이라 여겨졌던 남녀양성의 이미지는 결국 관념상의 이야기이다. 현실에서는 남녀양성의 이미지는 금기시되었다. 이상향이긴 하지만 용납될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인간의 욕망은 늘 분출되기 마련. 성 역할 바꾸기와 복장 전환의 관습을 통해 인간은 그러한 욕망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렇게 인간은 남녀 구별이 없었던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지녔다. 예술가들이 양성미에 탐닉한 것도 바로 그러한 시각에서 풀어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스의 아름다운 조각품들은 양성미를 지닌 남성들을 표현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꿈꾼 인류의 이상형, 즉 양성형 인간을 비밀 초상화에 담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다빈치가 그린 세례자 요한 또한 숨 막힐 정도의 요염한 미소를 통해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아름다운 미소년의 그림들에 탐닉한 카라바조의 그림들은 진정한 아름다움은 성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그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이렇듯 예술가들은 남녀가 하나라는 이상적인 관념을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즉, 진정한 미는 성별을 초월해서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아름다움에 성별 구분은 의미 없다는 그들의 생각이 그림을 통해 표현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자료들과 갖가지 그림들을 통해 결국은 남녀가 하나일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꽃미남과 여전사에 열광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간단할지도 모른다. 남녀의 구분 없었던 인간이 존재한 태초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본연적 욕망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꽃미남과 여전사가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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