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울 준비는 되어 있다>의 에쿠니 가오리가 마음에 들었었다. 적당히 서늘하고 적당히 건조하고 적당히 지루한 그런 어떤 것이 나의 어떤 부분에 적당히 들어맞는 느낌이 좋았었다. 아무튼 자연스런 다음 단계처럼 나는 노을빛 표지의 이 책을, 낙하하는 저녁을 읽게 되었다. 표지에 "에쿠니 가오리의 실연을 담은 소설"이라고 적혀 있다. 사실 그냥 지나쳐도 상관없을 그 말에 조금 신경이 쓰였다. 쓰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이다. 조금 상업적인 냄새가 난다고 느껴지는 건 내가 지나치게 민감하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책표지가 노을빛인 건 마음에 들었다. 해질 무렵의 싸한 느낌을 그대로 전해주는 것만 같은, 그런 슬프고도 아릿한 저녁의 색깔. 저녁 나절에 가장 맑고 냉철하다는 에쿠니 가오리. 냉철하고 차분하고 그러면서도 절망하고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그녀. 그런 저녁의 차분하고 맑은, 그러면서도 절망적인 어떤 무언가. 그런 작품을 쓰고 싶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낙하하는 저녁은 그런 소설이다. 저녁의 차분함과 냉철함과 슬픔과 절망이 적당히 섞여 있는. 그리고 나의 마음과 적당히 들어맞았던 부분도 어쩌면 그런 차분함과 절망의 이상한 조합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8년간 같이 살던 남자가 갑자기 이별을 통보한다. "미안해"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괜찮아"라고 말한다. 그동안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남자는 떠나고 여자는 남는다. 아니, 남겨진다. 남자에게 이별이란 그저 짐을 꾸리고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과 같다. 그의 흔적이 남겨진 곳에서 떠나지 못하고 그저 그 흔적들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건 여자의 몫이다. 여자는 의외로 담담하게 일상을 꾸려 나간다. 담담하고 차분하게 생활하는 듯 하면서도 가끔씩 치밀어 오르는 슬픔이나 절망같은 것을 완전히 떨쳐 버릴 수는 없는 듯 보인다. 떠나간 그의 전화를 받는다든지 할 때 그녀는 고통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집세가 비싼데도 그녀는 그 곳을 떠날 수가 없다. 남자와의 기억이 완전히 끊겨질까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여자가 그녀의 일상에 불쑥 끼어 든다. 그를 떠나가게 한 여자. 하나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녀의 집으로 들어와 살게 된다. 그가 있었던 그 자리에 이제 그의 새로운 여자가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 이상하게도 그의 새로운 여자와의 일상에 서서히 익숙해져 간다. 하나코가 없는 집안을 적막하게 느낄 정도로. 하나코가 있는 집은 이상하게 생기가 넘친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하나코와의 생활을 통해 그녀는 서서히 그의 부재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소설은 떠나간 남자와 남겨진 여자, 그리고 그 속에 끼어든 새로운 여자의 일상을 오고가면서 진행되지만 이상하게도 새로운 여자 하나코가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실연을 당한 여자 리카보다 그녀의 사랑을 빼앗아간(?) 여자, 사랑을 받고 있지만 외롭고 어딘가 절망적인 여자, 하나코에게 자꾸만 시선이 간다. 자유롭게 삶을 즐기는 듯이 보이고 사랑이라는 집착에 연연해 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그 서늘한 캐릭터의 매력을 표현해 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미워해야 하는 여자를 더 돋보이게 만들어 내다니!

소설은 남자의 갑작스런 떠남과 여자가 그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 그리고 남자가 새로 사랑하는 여자의 일상이 두 가지 선율로 변주되는 듯 하다. 소설의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새로운 여자의 일상이 더욱 더 큰 소리를 내며 울려온다. 한 사람의 부재에 서서히 익숙해져 가면서, 자유로운 영혼이 서걱대는 듯한 여자의 삶에 빠져 들면서 천천히, 천천히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소설이다. 에쿠니 가오리가 좋아하는 저녁의 시간. 그 저녁의 색깔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소설이다. 해질 무렵, 그 진한 주황색으로 물든 하늘을 바라보는 데에는 서늘한 가슴이 필요하다. 그 서늘한 가슴으로 읽어 내려가야만 하는 소설. 아무렇지도 않게 책장을 덮을 수 있으려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책장을 덮기전 역자후기를 읽으면서 나는 화가 났다. 역자후기의 끝에 짤막하게 덧붙여진 번역의 오류에 대한 변명이 너무 어처구니없었기 때문이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 남자 이름을 다케오라 읽었고 나중에 그것이 겐고라는 것을 알았지만 소설의 이미지상 겐고보다 다케오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듯하여 굳이 오류를 범하였다는 번역가의 말은 한마디로 독자를 조롱하는 처사다. 작가가 가장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여 만들었을 인물의 이름을 번역가 마음대로 고치는 행위는 아무리 너그럽게 받아들일려고 해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무리 유명한 번역가라 해도 번역의 원칙은 지켜져야 하는 것 아닐까? 소설의 잔잔한 여운이 역자후기에서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번역가의 엉뚱한 고집을 받아들이는 출판사의 행동도 이해할 수 없다. 소설의 뒷맛을 어처구니없이 구겨버린 것, 어떻게 보상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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