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덜컹거리는 기찻간, 나지막이 흘러가는 풍경들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 터미널에서 낯선 곳의 이름이 적힌 티켓을 받아 들었을 때의 그 묘한 떨림, 낯선 곳의 새로운 풍경들이 주는 이국적인 즐거움들. 그런 여행의 매력들이 바쁜 일상의 와중에서도 사람들을 어딘가로 떠나게 만드는 것 아닐까. 지금 혹시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여행을 떠날 여유는 없지만 간절히 여행을 바라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책은 유용할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은 여러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여행에 대해 말한다. 보들레르, 호퍼, 플로베르, 워즈워스 등의 예술가들의 삶 속에서 여행은 삶의 자연스런 방식으로 물들여져 있다. "자신의 집보다 여행을 하다 잠시 머무는 곳에서 더 편안함을 느꼈던" 보들레르나 휴게소, 고속도로의 외로운 주유소, 호텔 등의 공간 속에서 스케치를 하며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던 호퍼. 그들에게 있어 '여행'은 단순한 떠남이 아니라 삶을 이어주는 하나의 방식이고 존재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여행과 관련된 공간을 통해 고독을 표현하는 호퍼의 그림 속에서 저자는 낯선 환경들이 안겨다 주는 이로움들에 대해 말한다. 오직 여행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호퍼의 그림을 통해 다시금 상기된다. 그의 말처럼 휴게소와 호텔, 기차 같은 곳에서 아름다운 한 편의 시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어딘가로 떠난다고 해서 기대했던 것만큼의 만족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라고 저자는 충고한다. 여행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면 어딜 가나 현재의 문제는 따라가게 마련인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현재의 공간을 새롭게 보지 못하는 사람에겐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의 여행 또한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것 아닐까. 어쩌면 멀리 떠나는 것보다 마지막 장의 '귀환'에서 저자가 실천한 방식대로 주위의 것들, 동네의 단조로운 풍경들에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한다면 그것 또한 멋진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드 보통은 예술가들의 여행에 덧붙여 자신의 여행 체험을 말하면서 어떻게 여행을 할 것인가에 대해 의미있는 여러 가지 사색의 편린들을 펼쳐놓고 있다. 그가 말하는 여행은 그냥 즐기고 보는 여행이 아니라 삶의 깊이를 풍부하게 해주는 체험으로서의 여행이다. 그의 문장을 따라가는 일은 예술가들의 삶과 그들의 작품 속에서 어우러져 있기에 또한 자신의 체험들도 그속에 녹아 있기에 더욱 아름답다. 여행에 관해 이처럼 아름다운 사색들을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알랭 드 보통, 그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사실,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여행에의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려야만 했다. 어쩌면 지금 어디론가 간절히 떠나고 싶지만 떠날 여건이 안된다면 이 책은 당분간 보류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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