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 좀 들어 봐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동연출판사 / 1997년 7월
평점 :
품절


삼각관계라니. 이제는 진부하고 식상한 소재다. 그런데도 재.미.있.다. 재미있다는 표현외에 달리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줄거리의 큰 맥락은 스튜어트와 결혼한 질리언이 스튜어트의 절친한 친구인 올리버의 구애에 넘어가서 그와 다시 결혼한다는 이야기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아온 소재임에도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줄리언 반즈의 문장이 주는 즐거움 때문인 것 같다. 그의 문장은 그의 소설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보다 훨씬 발랄하다. 그리고 이 소설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세 인물의 독백체로 소설이 진행되어 하나의 사건에 대해 각기 다른 말들을 뿜어대는 관점의 차이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튜어트 : 당신에게 얘기하겠다. 그래,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다. 나는 아내를 잃었다. 그것도 나의 절친한 친구 올리버에게 빼앗겼다. 나는 아내를 사랑했다. 그리고 특별히 내가 잘못했던 것도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질리언을 데려갔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이제 내게 남은 생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질리언 : 나는 스튜어트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결혼했다. 그런데 어느날 올리버가 나타났고 그리고 이제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도 죄책감을 느낀다. 그런데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처음에는 스튜어트가 좋았고 이제는 올리버가 좋은 것뿐이다. 다만 그뿐이다.

올리버 : 질리언에게 스튜어트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에게 어울리는 내가 그녀를 가로챘다. 이게 뭐가 잘못됐나? 순전히 시장원리에 따른 것뿐이다. 사랑도 일종의 시장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내게 더 이상의 비난은 하지 말아 달라.

세 사람의 각기 다른 목소리를 통해 사건의 흐름을 짚어가다 보면 그들의 각기 다른 진실 속에서 허둥거리게 된다. 그래서 서로가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는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난감하기까지 하다. 스튜어트는 아내를 빼앗겼기 때문에, 상처 입을 사람은 바로 나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질리언은 두 남자가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가운데 끼여서 짓눌려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토로하며 자신이야말로 상처를 입었다고 말한다. 또한 올리버는 온갖 비난을 들어야 하는 자신이야말로 창문에 머리를 박아대는, 그래서 자꾸만 부딪치고 또 부딪치는 그런 연약한 나방 같은 심정이라고 자신의 상처를 항변한다.

그들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전혀 듣고 있지 않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열심히 할뿐이다. 이들에겐 어떤 대화도 필요치 않다. 그래서 올리버가 질리언과 결혼하려 할 때에도 스튜어트와 올리버 사이에는 어떤 진지한 대화도 오고가지 않았다. 스튜어트와 질리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타인과의 소통보다는 자신만의 연극이 얼마나 더 진실되게 보이느냐가 더 중요하니까 말이다. 자신만의 공간에 갇혀 있는 이들에겐 처음부터 '사랑'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그들의 각기 다른 독백들 속에서 소통되지 못하는 사랑의 서글픈 풍경들을 느꼈던 것. 그게 바로 줄리언 반즈의 문장이 주는 즐거움 속에서도 그리 유쾌하지 못했던 이유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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