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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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 두 시간을 걸려 도착한 지방의 소도시, 어느 카페에 앉아 당신의 책을 읽었어요. 왠지 그곳이 당신의 소설을 읽기에 아주 좋은 장소 같았거든요. 지나간 팝송이 희미하게 흘러나오고, 깔깔거리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 틈에 앉아 당신의 소설을 펼쳐 들었습니다.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넘기며 당신의 문장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가라앉았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잠시 생각해봅니다. 조금 침울한 표현 같기는 해요. 아니면, 마음을 담그었다고 할까요. 당신의 이야기 속에 천천히 내 마음을 모두 맡겼어요. 많은 말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어요. 차마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말들이, 그저 내 안에서 삭히려고만 했던 말들이 어두움 속에서 천천히 올라와 나를 흔들어 놓았어요. 그리움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외로움, 그리고 내 생을 단단히 감싸고 있는 슬픔 같은 말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이 흔들리고 흔들렸을까. 얼마나 많은 말을 걸러 내고, 걸러냈을까. 이 한 권의 책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 당신 안에서 얼마나 많은 말들이 풍화 작용을 거쳤을까. 그 시간들을 상상하는 일이 나에겐 얼마나 아득하고 또 아득해지는 일인지. 당신은 알까요.

태어나자마자 소멸해 가는 존재를, 이토록 눈물나게 그려내기 위해, 당신은 얼마나 아프고 아픈 시간을 견뎌냈을까. 사진으로 손을 건네는 서하처럼, 어쩌면 당신도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의 손을 건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그 손을 오래도록 잡고 있고 싶어요. 마주잡은 손의 온기만큼 삶은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를 늘어놓던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또 새로운 이야기를 늘어놓는 카페. 그 안에서 꼬박 몇 시간을 앉아 당신의 소설을 다 읽었습니다. 천천히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 나는 ‘이야기’로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누군가를 따뜻하게 만들고, 누군가를 흔들어 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를 생각하며 책을 덮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자꾸만 매끄러운 책의 표지를 쓰다듬었어요. 마땅히 그래야만 할 것 같았지요. 당신이 건넨 편지에 한동안 또 내 마음이 애틋해지고, 아득해질 거라는 걸 예감하면서요.

‘이야기’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건, ‘이야기’로 누군가를 울 게 만들 수 있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무슨 말이라도 써서 편지를 보내야만 할 것 같게 만드는 사람. 바로 당신이에요.

 

말을 가져서 덜 아플 수 있다는 것.

아름의 편지에 나오는 이 말에 내 마음은 또 얼마나 애틋해졌는지. 애틋하다는 표현밖에 쓰지 못하는 나는 또 얼마나 작고 초라한 말을 가지고 있는지. 그래도 참 다행이에요. 이렇게 말이 있어서 당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읽을 수 있으니까요.

너무 아스라해서 손에 쥐면 꺼질 것 같은 이야기를, 너무 아득해서 그려볼 수 없는 이야기를, 너무 슬퍼서 꺼내기 힘든 이야기 속에서 고요하게 가라앉도록 만들어준 당신. 그런 당신에게 고맙단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당신의 이야기를 읽으며 강렬하게 살고 싶었던 한 순간을, 삶이 너무나 아름다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던 순간을, 누군가를 보고 참 아름답다 생각했던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든다면 견딜 만해진다. 라는, 극작가 딘센이 했던 말도 함께 떠올랐어요.

당신의 이야기를 읽었던 시간은 내가 했던 수많은 말들과 그 말들 속에서 겹겹이 쌓여 있는 그리움을 꺼낸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내 마음의 물결이 얼마나 찬란한 빛으로 일렁거렸는지, 당신은 알까요.


이제야 알겠습니다. 당신의 편지를 기다리는 일이 내게는 참 행복하고 애틋한 일이라는 것을요.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김애란. 당신의 다음 편지를 기다리며 조금 더 두근두근거려도 괜찮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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