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편집자란 무엇인가 - 책 만드는 사람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김학원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S로부터 이 책을 선물받은 건, 아마도 최종 교정을 보느라 신경 쇠약의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너에게 꼭 필요한 책 같아서”라며 건네주는데 넘겨보니 면지에는 신문에서 오려낸 듯한, 이 책의 소개기사가 붙어 있다. 신문에서 보고 부리나케 주문했을 S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무엇보다 그 마음이 고마웠고. 면지에 빼곡히 적어놓은 S의 사랑스러운 잔소리 같은 글을 뒤로 하고, 책장에 책을 꽂아두고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 책을 들여다 본 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인쇄가 끝나고 이래저래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던 때, 이 책을 들여다보며 찬찬히 지난 시간들을 떠올렸다. 마치 열정적인 연애에 빠진 사람처럼, 책에 빠져들던 그 때의 시간들을.
밑줄을 치며 꼼꼼하게 책을 읽었다. 그저 편집자를 꿈꾸었던 시절에 읽었다면 마음에 와 닿지 않았을 말들이 읽는 순간, 푹푹 스며들었다. 잘 알지 못했다면, 그저 흘러들었을지도 모를 말이 때로는 후회로, 때로는 생생한 충고로 스며들었다. 저자는 독자를 세 집단(편집자 지망생, 1∼3년차 편집자, 5∼7년차 편집자)으로 생각하며 썼다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책의 핵심 독자는 1∼3년차 편집자가 아닐까 한다. 편집자 지망생에게는 어쩌면 마음에 바로 와 닿지 않을 충고들이 많다. 그것은 지금 한창 일에 빠져든 시기, 현실에 바로 적용해볼 수 있는 조언들이 많다는 얘기도 되겠다.
“편집자는 책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전문가이다.” 179쪽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편집자는 자신의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책을 쓰는 저자보다도 더 전문가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문성을 쌓는 과정은 참으로 험난한 과정이라는 것. 편집자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한 권의 책이 그저 저자가 뚝딱 만들어내는 것인 줄만 알았다. 한 권의 책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길고 험난한 과정이 숨어 있는지 미처 몰랐을 때 얘기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편집의 영역 중에서 기획에 비중을 두었다. 어떻게 저자를 섭외하고, 기획안을 작성하는지 책의 밑바탕을 그리는 작업을 상세하게 알려준다. 하지만 이 책은 책의 내용을 어떻게 구성하고 저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조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책의 디자인에서 책이 나온 후 홍보까지, 그야말로 책의 탄생에서부터 날개를 입히는 일까지 책 만드는 일의 거의 모든 것을 다룬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거의 각 장마다 끝에 있는, 놓치기 쉬운 결정적인 실수,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 현장에서 쓴 편집자 노트였다. 잊어버리기 쉬운 사실이나 잘 알면서도 매번 실수하게 되는 것들을 지적해준 부분이었다. 오랜 시간,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얻은 사실들이기에 더 생생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포스트잇에 써서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읽으면서는 얼마나 마음이 많이 찔렸는지 말하고 싶지 않다. 한 가지 더. ‘한국의 편집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제목이 붙은 12장은 편집자의 세계를 다시금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55명의 편집자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정리한 결과물인데, 현장에서 일하는 편집자들의 생생하고 다양한 조언들과 경험담을 엿볼 수 있었다. 읽으면서 계속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또는 ‘맞아, 맞아.’ 또는 ‘어머, 어떡해!’하는 말을 속삭였던 것 같다.
편집자로 일하면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 답답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좋은 선배나 상사를 만나지 못한다면,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편집자를 위한 책이 너무 늦게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어서 참 기쁘고 좋다. 정말 책 만들기에 미쳐 있고, 평생토록 책 만들기에 빠져들고 싶은 사람. 매일매일 책과 연애에 빠져있는 사람. 좀 더 잘 만들고 싶고, 좀 더 근사한 책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싶은 사람. 이 책은 그런 사람을 위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