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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도 아끼다 자린고비 일기 ㅣ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49
정해왕 지음, 오승민 그림 / 시공주니어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으며 아주 오랜만에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진정한 구두쇠란 바로 이런 것’임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구수한 입담으로 실려 있으니 웃음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담이 할머니가 300년 전의 자린고비 일기를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책 속의 책’이라는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담이가 되어 할머니가 풀어 적은 일기를 읽는 것처럼 일기를 들여다보면 할머니 무릎을 베고 듣던 옛이야기 같은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또 하나 독특한 형식은 각각의 일기가 속담과 연관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각각의 일기에는 하나의 속담이 어우러져 있어 읽는 맛을 더한다. 알뜰한 어머니로부터 절약정신을 물려받았다는 일기에서는 ‘콩 심은 데 콩 난다“라는 속담이, 자신보다 더한 구두쇠를 만나게 되는 일기에서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는 속담이 들어가 있다. 각각의 일기 속에 맛을 더해주는 양념처럼 들어간 속담들이 이야기의 흐름과 잘 어우러져 있어 약간의 감탄까지 하게 된다. 속담으로 풀어낸 자린고비 이야기라고 해도 될 정도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진정한 묘미는 바로 우리가 알고 있었던 자린고비에 대해 새롭게 알게 해주는 점이 아닐까. 자린고비 일기를 읽기 전의 담이처럼 자린고비는 놀부나 스크루지 영감처럼 지독한 구두쇠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고 나면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다’라는 속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자린고비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책의 마지막에 가면 처음의 웃음이 감동으로 변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책의 끝부분에는 친절하게도 자린고비 생가에 관한 자료도 실려 있다. 푸근한 옛이야기 속의 인물이 실존 인물로 다가오는 순간, 현실과 상상의 묘한 경계를 느끼게 된다. 아울러 그 속에서 힌트를 얻어 신선한 형식으로 이야기를 빚어낸 작가의 솜씨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사랑하는 아들에게도 천장에 매달린 고등어자반을 너무 오래 바라보지 말 것을 주문하는 자린고비. 왠지 곁에 가면 짭조름한 소금냄새가 날 것만 같은 자린고비라는 인물이 이제 새롭게 기억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아껴서 모은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 줄 아는 넉넉한 마음씨를 지닌 사람으로.
책을 다 읽고 나면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든다. 이제 ‘자린고비’라는 이름은 지독한 구두쇠에 붙여주는 이름이 아니라, 아끼되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에게 붙여주는 훈장과 같은 이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이제 내게 ‘자린고비’는 아름다운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