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북 - 젊은 독서가의 초상
마이클 더다 지음, 이종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좋아하는 책을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순례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라면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사서 떨리는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쳐들 때의 기분을 좋아하는 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 책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들을 선사하는지를. 마이클 더다의 <오픈북>은 그런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책이 자신의 성격을 어떻게 형성했는지를 돌이켜보고 싶었다는 저자는 유년시절부터 대학시절까지 자신의 삶 속에 녹아들어 있는 책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많은 책들이 나오지만, 책들의 내용은 일부러 서너 줄을 넘기지 않도록 애썼다고 하는 저자의 말에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유년 시절부터 대학시절까지 일어났던 책과 관련한 삶의 에피소드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화책에 빠져들었던 유년 시절, 도스토옙스키와 카네기, 셰익스피어를 만났던 중학 시절, 공산당 선언에서 음란 서적까지 섭렵했던 고교 시절, 시의 매력에 빠져들었던 대학 시절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부드러운 품속에 파고들어 편안하게 책을 읽고 아버지를 따라 도서관에 가면서 자연스럽게 책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시간들, 거의 활자 중독에 가까웠던 어린 시절의 풍경들, 휘트먼의 시를 떠올리는 가출 소년의 모습까지 흥미로운 책벌레의 삶을 읽으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겹쳐진다. 다음 사건이 궁금해서 밤이 새도록 책장을 넘겼던 기억이나 해질 무렵까지 학교 도서관을 빙빙 둘러보던 기억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이 책에는 책읽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만한 감미로운 순간들이 등장한다. 책을 펴들면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서, 밥 먹으러 오라고 불러도 ‘이 장만, 이 장만’하면서 한없이 페이지를 넘기는 시간이나 헌책방을 뒤적이며 이 곳이 바로 나의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혹은 비오는 날 안락의자에 앉아 따뜻한 이불을 덮고서 추리소설을 읽어 내려가는 시간 같은. 이 책을 읽으며 살포시 떠오르는 웃음을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은 그런 행복한 순간들에 대한 묘사 때문이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서평가이자, 서평기사로 퓰리처상까지 받은 마이클 더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다채로운 독서 이력을 읽으면서 완전히는 아니겠지만, ‘마이클 더다’라는 사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가 말하는 대로 어떻게 해서 “역마살이 끼었고, 독립적이며, 멜로드라마의 성향이 강하고, 낭만적이면서도 내성적인 성격”의 마이클 더다가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 이 책은 중요한 힌트들을 제공해주는 건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회고를 통해 책이 어떻게 한 사람의 성격을 형성시키고, 삶에 녹아드는지를 추측해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읽었던 그 무수한 책들을 기억하고 있는 저자의 기억력에 놀라기도 했고, 고교 시절 읽었던 책들의 목록을 보고는 감탄이 절로 나오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내가 읽었던 도서 목록은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지는지) 책의 향기를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다면 이 책은 유용한 힌트를 제공해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잊고 있었던 책에 관한 추억들만으로도 마음 넉넉해지는 경험을 하게 했을 것이다. 

“나의 스토리란 결국 책과 독서에 관한 것”이라고 확신하는 저자처럼 나도 책들로 이루어진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의 성격을 이루고 있는 것 또한 내가 읽어온 책들이 대부분을 차지할 테니까. 내가 읽어왔고,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이루어나가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누군가의 집에 가면 제일 먼저 책장의 책들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는 것도, 그리고 처음으로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을 때 책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는 것도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제 나는 누군가를 만나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불쑥 이런 질문부터 던질지도 모르겠다.

“당신을 이루고 있는 책들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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