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슬플 때 내가 하는 일은 책을 펼쳐들고 무한한 어둠 속의 우주를 바라보는 일. 그 짙은 어둠의 장막 속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곤 한다. 그 무한한 공간의 어둠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너무나 하찮게 느껴져서 지금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들 쯤이야 아무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우주비행사가 된 고모를 찾으러 가는 이야기라고 들었을 때부터 기다려왔던 이 소설을 받자마자 단숨에 읽었다. 소설은 고모가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와 할머니로부터 고모가 우주비행사가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고모를 만나러 가는 화자의 이야기가 이중적인 구조로 펼쳐져 있다. 우주비행에 관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는 고모의 편지는 그 사실적인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것은 취업에 실패해 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주인공 '나'의 이야기와 배치되어 있기에 더 이질적이면서 환상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소설은 이렇게 두 개의 세계를 오고 간다. 꿈과 현실.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과 지극히 현실적인 감각들. 그것은 할머니의 세계와 할아버지의 세계로 대변되면서 소설의 기본 축을 이루고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느껴졌던 따뜻한 감촉은 우주비행에 대한 달콤한 상상 때문이었을까. 우주비행에 관한 고모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내 자신이 마치 무중력의 상태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만 기분에 사로잡혔다. 거추장스러운 장치 없이 마치 공원의 잔디밭을 걷듯이, 그 무한한 어둠 속을 가뿐하게 걸어 다니는 기분. 한편으로는, 그 무한한 어둠의 끝으로 사라지고픈 이상한 충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달콤하면서도 슬픈 감정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기 싫은 사람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래서 애써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는 기분 같은.

 

   
  꿈에서 깨고 나면 갖고 있던 걸 뺏긴 것처럼 허허로운 마음이 되지만, 그래도 저는 멈추지 않고 다시 꿈을 꾸려고 이불을 끌어당겨요.  
   


수상 소감에서 "슬픔을 느낄 때마다 자랐다"고 말하는 작가는 소설 속에서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은 상처의 연속일" 거라고 말한다. 삶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알아버린 듯한 작가는 소설 중간 중간에 아픈 장치를 넣어두었다. 지금의 현실과 너무 다르기에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꿈들. 막상 그 꿈에 다가갔을 때 느끼게 될 어떤 슬픔. 원하는 대로 살 수 없기에 포기해야만 하는 그 수많은 것들. 소설은 따뜻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듯 보이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가슴을 아프게 건드리는 힘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일 듯 보이는 슬픔 같은 것.

 

슬플 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슬픈 이야기들이다. 맘껏 울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한다. 그것은 삶에 대한 기대를 줄여가는 일이기도 하다. 어차피 삶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끔은 따뜻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소설 속 고모의 말처럼)내 자신에게 작은 위로 하나쯤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즐거움을 위해서. 만약에 우리가 원치 않는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런 작은 위안도 누리지 못할 이유는 없잖니.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기 싫은 사람처럼 다시 소설을 펼쳐든다. 그리고 “회색빛의 우울한 모래더미”가 아니라,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달의 바닷가” 어딘가에서 “둥글고 환한 지구”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상상해본다. 그것은 감미롭고 부드러운 꿈. 그리고 소설이 내게 주는 따뜻한 위로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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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2007-08-10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제가 느꼈던, 그러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말들입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

ALINE 2007-08-11 00: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주드님.
이 책 참 따뜻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