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펀맨 One Punch Man 1 - 일격
ONE 지음, 무라타 유스케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원펀맨] 애니메이션 2편을 핸드폰에 넣고 나와 출근길에 한 편, 퇴근길에 한 편을 보면 시간이 정확하게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다.(웃음)


     #.


    '그냥 재밌게 즐기는 것'에 익숙한 요즘 세대가 보기엔 쓸데없는 짓이겠지만, 인문계 출신 30대 후반 아저씨가 [원펀맨]을 보면서 지금의 사회의 젊은이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떠올리지 않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원펀맨]의 시작부터가 너무 직접적인데. '구직활동'을 하던 젊은이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는 구직활동을 때려치우고 '취미로 히어로'를 시작한다. 별다른 보상도 없고, 폼이 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좋아지지도 않았으니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그가 히어로 활동을 얼마나 하든 세상은 여전히 똑같은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자기만족만이 그가 추구하는 유일한 가치가 되었다.


     #.


     김영하는 [퀴즈쇼]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우린 단군 이래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야. 2~3개 국어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고, 각종 툴에도 능숙하며, 심지어 예전엔 전문인력들만 할 수 있었던 동영상 편집까지 쉽게 해내는 인재"들인 요즘의 젊은이들이 왜 이렇게 무기력하고 하찮게 취급받는지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해가 갈수록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인재들의 퀄리티는 점점 높아진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 사회의 최상층부에는 윈도우 비밀번호조차 바꿀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의 기성세대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괴인들은 요즘의 젊은이들에게는 '원펀치'로 해결되는 문제이지만, 꼰대들로 구성된 협회는 그런 실력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은 사이타마에게 C등급을 주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실적을 보여줄 것을 강요한다. 킹 같은 운 좋고 사회생활 잘하는 인물은 별다른 성과나 실력도 없이 상위 랭크를 차지하고 있지만, 사이타마는 실력을 보여주면서도 의심받거나, 다른 히어로들에게 성과를 빼앗긴다. 그리고 상위 랭커로 가기 위해서는 파벌과 줄서기도 잘해야 하며, 다른 히어로들의 텃세도 존재한다.


   #.


  강해지기까지 무엇을 했느냐, 라고 물었을 때 사이타마는 매일 러닝과 스쿼트, 푸쉬업을 거르지 않고 3년 동안이나 했다고 말했다. 버블의 시대에서 '누구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듣고 믿고, 오직 성실함만으로 자신만의 실력을 갖추고 강해졌을 때, 이 세상은 실력이든, 강함이든 상관없는 시대가 되었다. 히어로를 꿈꾸며 공부하고 노력했지만, 이미 주변에는 히어로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히어로는 등급화 서열화 되어 있으며, 괴인을 물리쳐봤자, 그것은 성공이나 성취가 아니라 단순한 '실적'이 되어버리는 시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스스로 자기 만족을 느끼는 방법이란, 매일 작은 내 방으로 돌아와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은 깨끗한 장갑을 씻으면서, 나는 '취미'로 , 내가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답하는 것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


  안녕하세요, 저는 취미로 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21세기에 새롭게 나타난 고전. '거대한 자연과 이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이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노인과 바다'처럼 처연하게 그린 것도 아니고 '백경'처럼 비장하게 쓴 것도 아니지만, 적당히 라이트하고 적당히 위트있게 만들어낸. geek과 인문학의 만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 


     육아에 힘쓰느라 영화는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돌이가 아니라서, 소설에 등장하는 과학적인 실험들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 


     누군가가 - 정확히 말하자면 '씨네타운 19'의 이승훈 PD가 - [마션]을 가리켜 '긴 세월이 지나도 널리 읽힐' '고전의 반열에 올라갈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언급했을 때, 그 표현에 그리 무게감을 두진 않았습니다. 사람은 늘 그럴 때가 있죠. 뭔가 새로운 아이템을 만났는데, 그게 예상 외로 너무 괜찮을 때 잠깐 들떠서 본연의 가치보다 그것을 더 크게 평가하게 되고, 그게 지나쳐서 과장하게 되는 경우 말입니다. 특히 이승훈 PD의 언행은 - 때로는 고의적으로, 때로는 비고의적으로 - 종종 그러한 경향을 보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괜찮은 소설이겠구나' 정도로만 받아들였단 말이죠.


   책을 1/4쯤 읽었을 때, 저는 그 표현을 더 이상 과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문학적으로 그렇게 대단한 기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심오한 철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작가가 삶의 무언가를 더 파헤치고 논의하고자 쓴 글이 아닌 것도 알겠구요. 그냥 그는 등장인물을 도저히 살 수 없는 공간에 던져놓고 과학적인 테크닉으로 살아남는 과정을 묘사하고 싶었을 뿐이겠죠. 문제는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스스로 굉장한 주제와 철학을 표현하고 있다는 겁니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투블럭 컷을 하고 유니클로 캐주얼을 입고 있는 모양이라고 해야 할까요. 거리에 흔하게 보이는 대중적인 장르문학인 듯 하지만, 어느새 문학의 가장 핵심적인 코어와 테마를 건드리고 있는 소설이었다는 거죠. 


  #. 


  클래시컬하게 이야기 해봅시다. 위대한 문학은 오래 전부터 인간에게 정복되지 않은, 거대한 자연에 맞서는 외로운 인간의 투쟁을 그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삶의 가치와 희망을 이룩하는 인간에 대해 써왔구요. '모비딕'이 그러하고, '노인과 바다'가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또? '마션'이 그렇습니다. 


  20세기 초반의 작가들에게 인간에게 정복되지 않은 거대한 자연의 표상은 비바람과 거친 파도, 그리고 거대한 고래가 있고, 상어가 득시글 대는 바다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바다조차도 이제 더 이상은 '정복되지 않은 위대한 자연'의 아이콘이 아닙니다. 고래는 멸종을 걱정해야 할 정도이고, 상어는 거대한 크루즈와 핵잠수함을 탄 인간들에게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20세기의 빛나는 영문학적 성취를 감상한 21세기의 너드는, 그래서 인간에게 정복되지 않은 자연으로 모래폭풍 부는 화성을 택했습니다. 화성에 남겨진 고독한 인간. 그리고 끊임없이 그를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대자연. 그 안에서 '삶'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 '마션'은 가장 고전적인 주제를 트렌디한 하드 SF라는 장르 속으로 끌어온 끝내주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21세기가 되었으니, 자연과 투쟁하는 인간의 태도에도 변화가 있습니다. 마크 와트니는 에이헵처럼 비장하거나 산티아고 노인처럼 처절하지 않습니다. 화성에 홀로 남았지만, 대자연과 맞서기 위해 그의 육체와 정신을 지키기 위한 무기로 감자와 70년대 시트콤, 그리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을 선택합니다. (디스코는 제외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혼자 있지만, 고독한 존재도 아닙니다. 산티아고 노인의 바다 위에는 무선전신도 와이파이도 없었습니다만, 그는 인류의 다른 존재와 소통할 수 있는 엄청난 출력의 통신기를 찾아 모험을 떠납니다.


  #.


  뼈대만 남겨놓고 보면, 이 소설은 위험하고 거대한 자연에 남겨진 한 외로운 인간 존재가, 생존을 위해 투쟁하고, 행복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나아가 다른 인류와 소통하고 외연을 넓혀 나가고, 마침내 전 인류와 함께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베이스에는 삶에 대한, 그리고 지금의 문명을 이룩한 인류의 기술력에 대한 긍정과 따뜻한 시선이 깔려 있습니다.


  #.


  '마션'은 얼핏 하드 SF의 외피를 뒤집어 쓰고 있습니다만, 사실 '마션'이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고 있는 부분은 소설 내에서 맥가이버 식으로 언급되는 과학적인 디테일들이 아니라 그 밑바탕에 이러한 고전적인 인문학적 테마를 깔아놓고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인터넷 문학으로 시작된 것이라 - 블로그에서 연재했었죠 - 문장 등의 부분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 소설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찾아헤맨 '새로운 시대의 문학'의 프로토타입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전적인 인문학적 테마가, 21세기를 만나 어떤 옷을 입고, 그것이 아직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앤터니 호로비츠의 <셜록 홈즈-모리어티의 죽음>에는 두 가지의 텍스트 트릭이 있습니다. 하나는 작가가 의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와 상관없이) 출판사인 황금가지가 의도한 것이죠. 작가가 의도한 트릭을 밝히는 것은 엄청난 스포일러가 될테니 그만두죠. 사실상 이 소설에서 그 트릭은 80% 이상에 가까우니까요. 하지만 추리물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정확하게는 아니라도, 대충 그 트릭의 모양새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텍스트 트릭이라는 것 자체가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으니까요. 더군다나 이 분야에는 너무나도 엄청나고 유명한 레퍼런스가 있지 않습니까.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 소설 말입니다. 텍스트 트릭하면 떠오르는 작품들이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 소설과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 정도일텐데, 앤터니 호로비츠가 <살육에 이르는 병>을 읽어봤을 리는 없을 것 같고, 애거서 크리스티를 참조한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별 상관 없지만, 개인적으로 텍스트 트릭을 사용한 작품 중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를 좋아합니다. 어쨌든 저는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몇 가지 지침(?)들을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낯선 화자를 조심하라. 홈즈의 이야기를 왓슨이 기록하지 않거나, 포와로의 이야기를 헤이스팅즈가 기록하지 않았다면,그 기록자를 100퍼센트 신뢰해선 안 되는 것이죠. 작가가 쓸데없이 새로운 기록자를 만들어 내진 않았을테니까요. 새로운 기록자가 나타났다면 텍스트 트릭을 의심해봐야 할 것입니다. 


  #. 


  기본적으로 클래식한 수수께끼 풀이형 추리소설의 임무는 작가와 독자가 두뇌싸움을 벌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작가와 독자에게 공평하게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죠. 독자가 보지 못한 증거나 단서를 갑자기 탐정이 들고 나와서 사건을 해결해 버리면, 독자는 작가에게 속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가는 독자가 눈치채지 못하는 하찮은 사실인 것처럼 중요한 단서들을 흩뿌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텍스트 트릭은 이러한 경향을 극대화 한 것이죠. 작가는 서술과 텍스트를 통해 독자를 속입니다. 추리물을 읽는 독자 중에 모든 문장을 곰씹어 넘기는 독자는 확실히 드물죠. 그러므로 작가는 애매모호한 문장들을 통해 독자를 속이려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 작가는 신경써서 공정한 게임을 하려 했지만, 황금가지가 그 위에 텍스트 트릭을 한 번 더 덮어씌움으로써 그런 노력이 상당부분 희석됩니다.


  앤터니 호로비츠가 지은 원래 타이틀은  'Moriarty'입니다. 여기엔 다른 어떤 트릭도 없을 뿐더러, 중요한 단서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황금가지에서 출판한 번역제는 <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입니다. 이건 명백한 트릭이죠. 왜 이 제목이 트릭이 될까요?


 그것은  이 소설에는 셜록 홈즈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목은 또 한 가지 거짓말을 감추고 있습니다)


  #. 


  아, 물론 사전적인 의미로 셜록 홈즈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셜록 홈즈는 주 등장인물들의 대화에서 여러 번 언급되며, 에필로그로 덧붙여진 사건에서 잠깐 무대의 주인공이 됩니다. 하지만 작품의 메인 스토리에서는 (그로 의심되는 인물만 맥거핀으로 등장할 뿐) 그가 등장하진 않습니다. 저는 작품을 읽는 내내 어딘가에서 홈즈가 "사실은 내가 셜록 홈즈였어!"라고 등장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그런 순간은 오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독서 경험이 즐겁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기대가 깨지는 그 순간도 나쁘진 않았습니다. (추리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즐거운 경험은 독자가 작가에게 한 방 먹었다, 라고 생각하는 그때 오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출판사의 명백한 의도가 보이는 잘못된 제목짓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다지 기분 좋은 일로 받아들이긴 힘들지요.


  물론 이해는 갑니다. 이 책에 '셜록 홈즈'라는 타이틀이 떨어지는 순간, 판매량은 급감하겠죠. 홈즈 컨텐츠의 라이트한 소비자들도 모리어티라는 이름은 들어봤겠지만, 제목에 단지 '모리어티' 네 글자만 박혀 있다면 큰 매력을 느끼기는 힘들테니까요. 


  #. 


  셜로키언들은 코난 도일이 남긴 단편 56편, 장편 4편을 가리켜 정전(正典)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예수의 흔적을 기록한 성경 역시 저마다의 기록에 오류와 기록의 상충되는 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코난 도일이 남긴 정전 역시 마찬가지죠. 앤터니 호로비츠의 <모리어티>는 바로 정전 상의 미심쩍은 부분들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 소설입니다. 또한 정전이 셜록 홈즈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의 역할을 한다면, 이 소설은 그러한 홈즈가 사라진 세상에서 창궐하는 범죄를 막기 위해 홈즈의 추종자들이 어떻게 그의 가르침을 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도행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홈즈는 부활하여 다시 세상에 재림하죠)


  라이헨바흐에서 실제로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가, 에 대한 문제는 실제로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왓슨의 기록이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왓슨이 모리어티의 수하에게 속아서 홈즈를 폭포에 놔두고 돌아갔을 때 왓슨은 폭포에서 내려오는 데 한 시간, 올라가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고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칼 베데커의 <이탈리아, 사보이, 티롤 인접 지역과 스위스: 여행안내서>에 따르면 라이헨바흐 호텔에서 아래쪽 폭포까지는 15분, 위쪽 폭포까지는 45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홈즈가 그 시간에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보았다고 말한 부분은 더 큰 문제입니다. 왓슨이 왕복에 3시간이나 걸렸다면 이미 시간은 밤 10시를 훌쩍 넘어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죠. 


  #. 


  앤터니 호로비츠는 정전에서 보이는 이런 헛점들을 가지고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모리어티라는 대악당이 지배하는 영국의 범죄세계와 그에 침입한 클래런스 데버루라는 인물의 대결로 이루어진 흥미진진한 이야기죠. 조지 오웰은 <영국식 살인의 몰락 Decline of the English Murfder>라는 에세이를 통해, 동기와 이유를 가지고 저지르는 '나름의 명분이 있는' 영국식 살인보다 최근의 범죄는 더 잔인하고 무차별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 소설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도 마찬가지죠. 클래런스 데버루는 나름대로 모리어티가 세우고 있는 범죄 세계의 철칙들을 모두 다 깨버리고, 오직 돈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탐욕스런 미국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 쿨럭, 죄송 - 가 아니라 범죄의 모습을 런던에 끌고 옵니다. (그러나 나 책을 다 읽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리어티 잔당 쪽이 훨씬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고 다녔다는 생각이 들죠) 그래서 이 소설은 기존의 홈즈 소설에 비해 훨씬 잔인한 묘사가 많습니다. 홈즈 소설 역시 잘린 귀 등의 신체 훼손이 등장하고, 여러 종류의 살인을 다루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렇게 역동적인 문장들로 묘사하진 않죠. 적어도 앤터니 호로비츠의 잔인한 장면 묘사는 영국식(?) 보다는 미국식(?)에 가깝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의 화자가 미국인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건지도 모르겠군요. 


  #. 


  셜로키언이 되기엔 믿음이 좀 부족하지만 나름 셜록 홈즈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앤터니 호로비츠의 모리어티에 대한 가설은 꽤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읽는 시간도 꽤 빨랐구요. 셜록 홈즈만큼이나 모리어티에 대한 학설도 꽤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이를테면 크리스 콜럼버스가 각본을 쓰고 배리 레빈슨이 연출한 - 우리에게는 <피라미드의 공포>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 <젊은 셜록 홈즈 Young Sherlock Holmes> 란 영화에선 모리어티의 기원을 또 재밌는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방영되고 있는 <엘리멘터리 Elementary>란 미드는 모리어티를 아이린 애들러와 동일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죠. 앨런 무어의 <젠틀맨 리그 The League of Extraordinary Gentlemen>엔 셜록 홈즈는 등장하지 않지만, 모리어티는 등장합니다. 그러고 보니 모리어티는 단순히 '셜록 홈즈의 숙적'으로 불리고 있을 뿐, 별로 알려져 있는 것이 많지 않은데, 그렇게 묻혀있기에는 아쉬운 인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대학교수이면서 타고난 지능을 이용해 영국 전역의 범죄를 지휘하는 인물이라면 홈즈만큼이나 매력적인 인물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그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셜록 홈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제한적인 것들 뿐입니다. 셜록 홈즈는 물론 탐정으로서는 세계 최고입니다만, 결코 남에 대해서 편견없이 공정하게 말하는 인물이라고 보긴 어렵죠. 특히 모리어티에 대해서는요.


  아마 앤터니 호로비츠가 해낸 이번의 작업도 거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로비츠는 셜록 홈즈에 의해 폄훼되어 왔던 모리어티를 끄집어 내서 매력적인 악당의 자리로 끌어올리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단순히 생각해 보건대, 그가 왓슨과 홈즈가 말하는 대로 악하기만 한, 실수투성이의 악당이라면 홈즈의 호적수가 될 정도로 큰 인물이 되지도 못했을 겁니다. 호로비츠는 그래서 모리어티에게 그에 알맞은 캐릭터를 다시 부여하는 작업을 수행했고, 제목에서 홈즈를 지우고 그의 이름만을 남겨 놓았습니다. 근데 황금가지는 거기에 다시 셜록 홈즈의 이름을 크게 붙이고, 그의 이름을 작게 만들었죠. 그래서 우리가 읽는 표지에는 지금 이렇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셜록 홈즈-모리어티의 죽음. 


ps. 이 리뷰는 황금가지의 사전서평단에 선정되어 가제본된 책을 미리 제공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호의적인 리뷰를 작성하진 않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이스 오프 밀리언셀러 클럽 139
데이비드 발다치 엮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 

  예전 친구와 함께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현세 만화에 등장하는 오혜성, 설까치, 마동탁, 백두산과 이상무 만화에 등장하는 독고탁, 김준 등이 같은 해 드래프트에 등장한다면 과연 누굴 먼저 지명할 것인가. 독고탁이 던진 드라이브볼을 마동탁은 칠 수 있을 것인가. 
  따지고 보면, 너댓 살부터 남자아이들은 태권 브이와 마징가 제트가 싸우면 누가 이길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열 살 쯤 되면 <소년중앙> 같은 잡지에서 에어울프와 키트가 대결하면 어떻게 될까 다룬 기사를 읽어보죠. 조금 더 머리가 크면 추리소설을 읽고,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이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 하죠. 심지어 모리스 르블랑은 셜록 홈즈를 자신의 작품으로 끌고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정한 게임은 아니었죠. 전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명탐정 셜록 홈즈는 모리스 르블랑이라는 작가의 농간에 놀아나 아르센 뤼팽에게 농락당하고, 고삐리 이지도르 보트를레만도 못한 추리 실력을 보여줬으니까요.  (물론 르블랑은 셜록 홈즈 Sherlock Holmes를 헐록 솜즈 Herlock Solmes - 혹은 솔메스 - 로 위장하는 꼼수를 쓰기는 했지만요)

  국제 스릴러 작가 협회가 기획하고, 데이비드 발다치가 편집을 맡은 <페이스 오프>는, 모리스 르블랑의 꼼수와는 달리 스릴러 작가들의 자발적이고 충성스런 움직임 끝에 나온 선집選集입니다. 데니스 루헤인이나 마이클 코넬리, 제프리 디버와 리 차차일드 같은 작가들이 스스로 자신의 캐릭터를 낯선 다른 작가들의 세계 속으로 보내는 것에 동의했고, 함께 작업을 해서 11편의 단편을 써냈죠. 저마다 내로라 하는 명탐정과 수사관들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크로스오버를 합니다.

  #. 

  물론 멋지게 보일 수도 있지만, 얼핏 듣기에도 진입장벽이 만만찮아 보이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추리물이라면 히가시노 게이고 정도를 연상하는 일반적인 한국의 독자들에겐 더욱 그렇죠. 데니스 루헤인이나 마이클 코넬리, 제프리 디버, 리 차일드  정도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익숙할 만 하지만, 나머지 작가의 작품과 캐릭터를 아는 독자들은 그렇게 흔치 않을 겁니다. 평소의 활약상을 잘 모르는 탐정들이 나와서 만나봤자, 그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나 케미스트리를 이해하긴는 쉽지 않죠. 즉 이 11편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이해하자면, 최소한 22 작가의 작품과 캐릭터를 익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지만, 짧은 단편에서, 그것도 만만찮은 유명세의 캐릭터와 만나서 그 매력을 발휘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조금 더 복잡한 또 하나의 문제도 야기합니다. 

  #. 

  에른네스트 만델은 <즐거운 살인- 범죄소설의 사회사 Delightful Murder - A Social History of the Crime Story>라는 책을 통해 범죄 소설을 작가 개인의 영향보다 사회적인 맥락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범죄는 사회를 반영하며 그 범죄를 다루는 범죄 소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범죄가 일어나는 매커니즘을 반영한다는 것이죠. 재밌게도 이 선집의 작가 중 사회파 추리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이러한 만델의 이론에 대한 좋은 케이스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데니스 루헤인이 그렇죠. <가라, 아이야, 가라>의 초반 20페이지는 미국 동부 빈민가의 숨막히는 생활에 대해 끝내주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에서 범죄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관계를 보여주죠. 패트릭 켄지는 그런 동부의 생활 속에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탐정입니다.  반면 마이클 코넬리의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미키 할러는 전형적인 LA식 뺀질이 캐릭터입니다. 적당히 불법과 협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요란한 변호사죠. 해리 보슈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LA소속의 형사다운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집의 첫 작품인 <야간비행>에서 패트릭 켄지와 해리 보슈가 나누는 대화는 굉장히 유의미하게 다가옵니다. 

   "내가 만약 LA에 가게 된다면."
  보슈가 그 손을 잡고 흔들었다. 
  "우습군. 당신이 LA에 있는 건 상상이 안 되는데."
  패트릭이 대꾸했다.
  "나도 당신이 LA말고 다른 곳에 있는 건 상상할 수 없어요."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코틀랜드 탐정인 이언 랜킨의 존 레버스와 잉글랜드의 로이 그레이스가 만나는 두 번째 단편 '인 더 닉 오브 타임'도 마찬가지죠.제임스 엘로이는 이언 랜킨을 '타탄 투아르의 왕 the king of tartan noir'라고 불렀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타탄 누아르란 도덕적 모호함을 매력으로 하는 스코틀랜드 문학의 전통을 범죄 소설에 끌고 온 스코틀랜드 특유의 장르입니다. 하지만 로이 그레이스의 경우엔 조금 더 스트레이트한 스타일의 경찰이죠. 그래서 이런 물음이 발생합니다.

  로이 그레이스와 존 레버스는 세대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다.
  그리고 이 둘은 법 집행에 대한 생각도 아주 다르다.
  또 이들 사이에는 800킬로미터란 거리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이 두 남자가 어떻게 현실적으로 만나서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을까?

  조금 더 심한 경우에는 리얼리즘 세계의 인물이 환타지나 호러의 세계로 들어가 헤매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물론 독자들의 경우에는 그 두 세계관에 대해 충분한 학습이 없는 상태에서요. 
  다시 말하지만, 진입장벽이 만만찮은 기획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에 익숙하다면 정말 재밌고 흥미로운 컬래버레이션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김용 세계관에 완벽하게 통달한 사람에겐 왕가위의 '동사서독'은 어마어마하게 흥미진진한 텍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세계에 대해 잘 모르거나, 혹은 일부만 아는 독자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만 중얼거리는 영화에 다름 아니죠. 

  #. 

  그러므로 대개 이런 류의 기획은 - 안타깝게도 - 흔한 시쳇말의 확인으로 끝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레토릭 말이죠. <페이스 오프>는 국제 스릴러 작가 협회가 기획한 '소문난 잔치'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들이 각자 자신의 소문난 재료들을 들고 온다는 점에서 '소문난 포틀럭 potluck' 에 가깝죠. 작가들은 저마다 자신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파티장에 왔습니다. 그리고 짝을 지어서 재료들을 섞고 솜씨를 더해 결과물을 테이블에 차려 놓았습니다. 결과는요? 다행히도 '먹을 것 없다'라고 혹평할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일류 주방장들이 일류 재료들을 가지고 만들었으니 맛이 없으면 아무래도 곤란하겠죠. 하지만 파티의 주인은 음식 준비를 모두 참석자들에게 일임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비슷한 요리가 나오기도 하고, 어떤 요리의 경우에는 다소 엉뚱하기도 합니다. 기대하던 것과 많이 다른 모습도 보이고, 주문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돌파한 경우도 있죠. 결과는요? 상다리 부러지게 여러 개의 요리가 올라 있기는 합니다만, 풍성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재료는 다양한데 요리가 다양한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독특한 맛을 내는 몇 개의 요리와 맛있는 요리 몇 개를 위주로 집어먹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요리의 시작은 데니스 루헤인과 마이클 코넬리의 <야간비행>입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의 지명도가 높은 두 작가이고,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 데니스 루헤인을 좀 더 - 작가들이라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패트릭 켄지의 동네에 놀러 온 해리 보슈가 아직은 동부의 공기에 적응이 덜 된 느낌이 듭니다. 소품 형식이라 벌어지는 사건은 그닥 흥미가 당기는 것이 아니었고, 가장 재밌는 장면은 역시 패트릭과 해리가 재즈와 CD, mp3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음 작품인 이언 랜킨과 피터 제임스의 <인 더 닉 오브 타임>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어벤저스2>에서 가장 재밌는 장면은 신나는 액션 씬보다도 캡틴 아메리카, 토르, 아이언맨이 거실에 모여서 망치 가지고 장난 치는 장면이 아니던가요?

  그리고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번역의 문제. 이 작품에서 해리 보슈는 패트릭 켄지에게 반말을 쓰고, 패트릭 켄지는 해리에게 존댓말을 씁니다. 해리가 나이가 많기 때문일까요, 아님 거친 LA의 캐릭터인 해리와 깔끔한 동부 탐정인 패트릭 켄지의 차이 때문일까요? 비슷한 문제가 <대단한 배려>에서도 발생하는데 잭 리처와 닉 헬러는 서로 존대를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리처는 반말을 쓰고 헬러는 존댓말을 씁니다. (아마 중간에 잭이 나이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긴 합니다) 어쨌든 해리와 패트릭의 경우엔 서로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니 상호 존대를 하는 편이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상관없는 이야기인데, 말 나온 김에 번역 얘기 하나 더. 장르 소설 번역본의 경우, 대화가 아닌 지문에도 구어체로 번역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그것은'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을, '그거는'이라고 하는 경우) 이것은 혹시 원문이 구어체라서 그것을 살리기 위한 번역일까요, 아니면 그냥 번역가가 문장에 익숙치 않은 탓일까요? (이 책에서도 종종 보입니다)

  #.

  갈 길이 머니까 각 작품별로 포인트를 조금만 살펴 보겠습니다. 이언 랜킨과 피터 제임스의 <인 더 닉 오브 타임>은 재밌는 소품입니다.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레버스 경위와 로이 그레이스가 등장하는 오 헨리의 단편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가스등>은 흔한 호러 설정의 이야기입니다. 80년대 <환상특급>류의 미드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죠. 개인적으로는 두 등장인물 간의 밸런스 조절에 실패한 이야기로 보이는데, 사실상 등장인물들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리 많아 보이진 않습니다. 그래도 너무 전형적인 스타일로 흘러간 게 좀 아쉽네요.<웃는 부처>는 한국의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이야기로 보입니다. 저도 추리물과 초자연적인 현상을 결합시키거나 혹은 추리물과 포스트모던, 아니면 환타지를 결합시킨 소설(추리물의 적통인 영국 작가들이 요즘 이런 짓을 많이 하더군요. 재스퍼 포드의 <제인 에어 납치사건>이나 더글러스 애덤스의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 혹은 재더다이어 베리의 <탐정매뉴얼> 같은 경우)을 몇 개 읽어봤는데 취향에 맞지 않더군요. 개인적으로 추리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닫혀있는 구조와 앞뒤가 완벽하게 짜맞춰지는 느낌이 좋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열린 결말 스릴러'라든지 - 실제로 장윤현 감독의 <텔미썸띵>이 쓴 표현입니다 - 범인이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고 모호하게 끝나는 요즘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클래식하게 수수께끼가 완벽하게 풀리는 것을 좋아하죠. 물론 <웃는 부처>는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추리소설에 초자연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는 거죠. 
  <팬더를 찾아>와 <링컨과 프레이>는 그나마 전통적인 미스테리 소설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특히 제일 맘에 드는 게 <링컨과 프레이>인데요. 정말 전통적인 작법으로 기대한 딱 그만큼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짧지도 않고, 충분히 복잡한 사건을 구성했으며, 적당한 트릭과 미스테리도 있고, 안락의자 탐정인 링컨 라임과 몸으로 움직이는 루카스 데븐포트가 자신의 역할을 정확하게 분배받아 비슷한 비중으로 활약합니다. 심지어 둘 사이의 갈등도 약간 보여주죠. 작업방식도 정확합니다. 서로 번갈아 쓰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플롯을 만들고 각자가 자신 있는 부분을 쓴 뒤, 합치고 다시 한 번 다듬는 거죠. 
  <지옥의 밤>은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 중에서 조금 후진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입니다. 특히 결말 부분의 권선징악은 너무 진부해서 '설마 이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딱 맞더군요. <정차>는 스피디한 문장이 돋보입니다만, 솔직히 션 라일리가 등장할 필요가 있는 이야기였나, 싶은 스토리입니다. 배경 설명 없이 딱 본문의 사건만 가지고 흘러가는 드라이한 스타일의 추리소설인데,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등장인물들을 끌어오려면 그들의 개성이 조금 더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글렌 카버 같은 경우엔 린우드 바클레이의 등장인물 중에 그렇게 중요한 비중의 캐릭터도 아니라고 하더군요. 
  <침묵의 사냥>과 <악마의 뼈>는 쉽게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입니다. 다만 <침묵의 사냥>은 또 한 번 제3세계-서방구원자 시각의 이야기라는 점이 살짝 걸리죠. <악마의 뼈>는 흔한 이야기입니다만, 악당 캐릭터가 귀엽습니다. 거기에 맞서는 두 히어로의 콤비 플레이도 심심하지 않구요. 
  <대단한 배려>는 잭 리처와 닉 헬러가 만나는 이야기답게 하드 보일드한 소품입니다. 딱 에필로그로 쓸 정도의 소소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포틀럭을 주최할 때는 두 가지 스타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손님들에게 자유롭게 자신들의 요리를 들고 오게 하는 것입니다. 주최자는 손님을 정해서 초대하고 희미한 아웃라인만 정해줄 뿐 구체적으로 그들의 요리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페이스 오프>는 이 경우에 속합니다. 손님들은 자신이 만나서 자유롭게 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작품의 편차가 좀 있고, 겹치는 요리도 좀 있고, 재료들이 불균질하게 섞인 경우도 좀 생기게 된 것이죠. 뭐 그래도 즐길 수 있다면 상관없겠습니다만.
  다른 방법은 주최자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프로듀싱하거나 어레인지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짝만 맞춰줄 것이 아니라 작업방식이나 장르, 플롯 등에 참견하는 것이죠. 이것보다 좀 더 참신한 이야기로, 가능하면 두 주인공의 비중이 비슷하도록, 반드시 하나 이상의 미스터리가 등장하고, 하나 이상의 트릭이 있는 이야기를 쓸 것, 두 주인공이 직간접적으로 갈등하는 장면을 넣을 것 등등. 작업하는 것에 조금 더 많은 룰과 제약을 걸었다면 어땠을까요. 
  <페이스 오프>란 제목은 하키가 시작할 때 자세를 말하며, '시합개시' '대결'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알고 있습니다. 두 주인공의 '대결'을 위해서는 운동장만 마련해주고 마음껏 뛰어노는 방식보다는 조금은 그에 걸맞은 룰을 주는 것이 어땠을까요. 쉽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은 듭니다. 어쨌든 유명한 작가들에게 작품을 기부 받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띠지의 표현처럼 이것이 소문만큼 엄청나고 대단한 구경거리라는 생각은 그렇게 들지 않네요. 

ps. 본 리뷰는 도서출판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 받아 작성 되었습니다만, 읽어보셨다시피 할 얘기를 못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pps. 위의 ps.는 제가 블로그들을 다니면서 저런 문구를 볼 때마다 '나도 한 번 저런 걸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 때문에 쓴 것 뿐이지, 강제 의무사항은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