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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플랜 ㅣ 노블우드 클럽 3
야나기하라 케이 지음, 이은주 옮김 / 로크미디어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유괴라는 설정,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발상 자체를 새롭게 하는 이야기였다. 작가의 상상력과 치밀한 구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온갖 최신 기술과 개념, 다양한 캐릭터들이 쏟아져 나와 정신없이 버무려 놓으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끌어간다.
인터넷, 온라인 거래, 주가 조작, 태아세포, 대리모, 클론, 해킹, 순간 기억능력, 거기에 생명공학을 이용한 최신 성형 기술까지. 이런 것들을 나열해 놓아도 더이상 SF가 아닌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게 새삼스럽다.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현실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들은 이미 우리의 뒷통수를 치고 있다.
이 책은 유괴 소설이고 미스터리 소설이면서, 중간중간에 드러나는 과학 기술과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종종 우리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누군가는 그것으로 이득을 보고, 누군가는 재미를 보고, 누군가는 그로 인해 희생된다. 전자파로 뒤덮힌 세계에서 그럼에도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개미처럼 느껴진다.
유괴이지만 죄가 아니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유괴를 해야만 했던 아이러니한 상황. 작가의 발상은 기발하면서도 절묘한 은유로 다가온다. 죄를 지었어도 영웅이 되고, 정의를 행하다 범법자가 되기도 하는 모순 투성이 현실처럼 말이다.
여기에는 참 다양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대리모로 생계를 이어가는 여자, 자폐증 증상이 있는 아이, 컴퓨터에 의존해 주식 거래로 돈을 버는 남자, 해킹 기술에 재미들인 형사와 방구석폐인 등등. 서로 협력하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한다. 자기들 끼리 싸우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엉뚱한 사람이 말려들거나 희생되기도 한다.
과연 그게 전부일까? 지구를 구한다고 설치지만 결국 주위를 온통 파괴하고 마는 만화속 주인공들 처럼, 자신은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주변에 온갖 피해를 줬을 지도 모른다. 미처 담아내지 못 한 이 책 밖에서는 사실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왠지 그런 생각이 들만큼 끈적한 여운을 남긴다.
도시나리는 알고 있을까. 우리가 놓쳤던 많은 사건과 그 속에서 스쳐지나간 사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