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듯 시크하게 Nobless Club 17
한상운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약부터 비리 경찰, 사회 계층간 위화감과 해외 입양에 이르기까지. 심각하다면 심각한 문제들이 곳곳에 퍼져있는 이야기다. 그중에 아무거나 붙잡고 늘어지자면 한없이 진지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뒷맛이 좀 무심해 보인다.

제목은 ’무심한 듯 시크하게’이지만 등장 인물들은 전혀 시크하지 않다. 타인에게는 신랄하면서, 사회 정의를 실현한다고 뛰어다니는 경찰들이면서, 정작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주인공과 여타 인물들의 모습이 이 책의 주요 감상 포인트중 하나이기는 하다. 그리고 거기에 허세와 가식으로 찌든 현실 사회의 모습을 겹쳐놓으면 한 편의 풍자 소설로 보이기도 한다.

개성 강한 주인공, 매력적인 범죄자, 그들의 동료와 가족, 애인 등 주변인물들을 적절히 버무려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일상이 녹아든 대사속에서 종종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식상함을 느끼며 책을 덮어버린 순간도 많았다.

중년의 위기가 느껴지는 형사와 어중간한 젊은 형사의 조합이나, 겉모습은 엄친아이지만 어두운 과거를 지닌 남자, 그런 남자들과 사랑에 목메는 여자들.

남자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남자들의 심리를 나름 잘 묘사한 듯 보이기는 한다. 괜히 힘자랑 하다가 삐끗하는 남자라면 주위에서 곧잘 발견하니까. 근데, 너무 남자 이야기에만 치중해서 그런지 오히려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저런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거의 결혼/연애 대상으로만 다뤄지고 있는 여성 캐릭터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공감이 안 갔다.

그냥 무료한 저녁 시간에 채널 돌리다 우연히 발견한 괜찮은 드라마 한 편을 보고 난 기분이랄까. 좀 진부하고 식상한 감도 없지 않지만, 웃고 떠들며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먼 곳의 바다 Nobless Club 16
민소영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누군가는 사람을 섬에 비유하기도 했다. 개인은 섬처럼 떠 있는 존재이고 서로 뭔가 공감하거나 공유한다고 느끼는 건 모두 착각이라고.

이 책에는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가족, 친구, 연인 등등 그들은 혈연으로 혹은 흔히 운명이라고 부르는 우연한 사건으로 서로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그 관계에는 언제나 일정한 거리가 존재한다. 어느 정도의 비밀과 어느 정도의 상처와 어느 정도의 경계를 품고 있다.

이야기가 현실감을 갖는 것은 단순히 현대의 한국땅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실상은 이계니 용이니 하는 것들이 등장하며 판타지에 가까워 보이고 말이다.

겉으로는 화목해 보이고 같은 지붕 아래 살면서 서로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더 많은 가족, 매순간 거리를 재고 감정을 확인해야 하는 연인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동지이자 적이 되기도 하는 급우들. 이 책은 그런 인물들의 경험과 감정의 흐름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건이 해결되고 결말을 향해 흘러가도 여전히 가족간의 비밀,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존재하고 일상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모두 '섬'이니까.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기만 했던 형제 나무 처럼 어쩌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거리인지도 모른다.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착각은 오히려 서로에게 고통만 안겨준다.

섬사이를 흐르던 물이 결국은 하나의 바다인 것처럼 서로 갈라져 있다 해도 멀게만 보이던 그들의 인연은 언젠가 따로 또 같이 한 곳으로 모인다.



민소영 작가라고 하면 <꿈을 걷다>에서 단편을 접하긴 했지만, 평소 잘 모르던 작가다. 아마도 장편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리라. 하지만, <홍염을 성좌>, <적야의 일족>을 비롯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고 들었다. 그런 '내공'이 쌓여서일까, 과연 이야기를 풀어가는 균형과 노련함이 느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래선혈 Nobless Club 15
하지은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끼고 아끼다 이제서야 읽은 모래선혈. 여러가지 의미에서 감동이었는데, 그 첫번째는 읽기가 편했다는 것. 노블레스클럽의 전작이었던 모 소설을 읽으며 엄청난 불편함을 겪은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이렇게 편하게 글을 써주는 작가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역시나 이틀만에 가볍게 클리어.

이야기가 서로 독립되어 있고, 소재도 다르긴 한데, 같은 작가의 작품인 <얼음나무 숲>과 이번 작품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본문에 전작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두 작품은 다른듯 하면서도 닮았고, 어떤 면에서는 <모래선혈>을 이해하기 위해 <얼음나무 숲>을, <얼음나무 숲>을 이해하기 위해 <모래선혈>을 봐야 할 수도 있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같이 쌍을 이루는 이야기다. <얼음나무 숲>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이해해 줄 단 한 사람의 청중을 찾아 헤맨 예술가의 이야기라면, <모래선혈>은 자신을 감동시켜줄 한 명의 예술가를 찾아 나선 어느 독자의 이야기다. 전작이 음악으로 상징되는 젊은이들의 꿈과 이상을 다루고 있다면, 이번 작품은 사랑으로 대표되는 보다 보편적 주제를 이야기한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솔직히, <얼음나무 숲> 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뒤지지 않았다. 처음 열 장 정도를 읽은 것만으로도 이미 가슴의 두금거림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책은 잔인하고 섬뜩하고 괴기스러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유쾌하고 따뜻하며 아름답고 심지어 귀엽기까지 하다.

<얼음나무 숲>의 주인공들이 음악에 모든 것을 걸었다면 <모래선혈>의 주인공은 사랑에 모든 것을 내맡겼다. 단순한 로맨스 소설 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동시에 그 과정은 과거를 잃고 색깔을 잃은 한 남자의 자아찾기 이기도 하다.

<얼음나무 숲>에서도 고요와 바옐을 비롯해 개성 강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메뉴가 더욱 다양하고 화려해졌다. 특히나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이면서도 어린 아이 같은 순진한 면이 있는 레아킨이라는 캐릭터는 어지간한 순정 만화(?)에 갖다놔도 밀리지 않을 것 같이 매력이 철철 넘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중반 이후 환상성이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단순한 이야기속 환상으로 볼 수도 있으나 내 눈에는 레아킨의 자아처럼 보이기도 했다. 억압되고 거부당했던 또다른 자아. 궁궐에서의 완벽한 삶을 버리고 지상으로 내려온 순간 그는 일탈과 타락을 택한 셈이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그에게 이국으로의 여행은 가출이었고, 감정이 지워졌던 그에게 사랑은 그 자체로 타락이었다. 정해진 길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타락일 수 있으나 한편으로 가려져 있던 진실을 보는 통로이기도 했다. 비록 그 끝이 파멸이라고 해도.

그전에 사랑에 빠지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환상이다. 그것도 속국의 평민 출신 여자와 제국의 태제의 만남이라니, 완전히 판타지다. 괴로운 과거를 잊고 화려한 궁궐에 갇혀 살았던 시간과 소설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에 빠져 감정을 찾아 사랑을 쫓던 시간 중 레아킨에게는 어느 쪽이 현실이고 어느 쪽이 환상이었을까.



무척 만족스럽게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소리 듣겠다"싶은 생각도 들었다. 본문중에는 모 일본 만화를 바로 떠올릴 법한 내용이 나오기도 하고. 이야기의 흐름이 진부한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런 재료들과 보편적인 주제를 잘 짜여진 이야기속에 녹여내는 것은 분명 작가의 능력이다. 여전히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에 걷다 노블우드 클럽 4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존 딕슨 카의 <밤에 걷다>. <퍼펙트플랜>이후 오랜만에 보는 노블우드클럽의 신간이다.

탐정 만화를 간혹 보긴 하지만, 이런 장르의 소설을 그닥 자주 읽는 편은 아니다. 존 딕슨 카라는 이름도 이번에 처음 들었고.

게다가 이 책이 쓰여진 게 1930년이랜다. 요즘엔 소설이든 영화든, 범죄를 저지르는 쪽이든, 해결하는 쪽이든 첨단 장비로 무장하고 덤비는지라 과연 20세기 초의 과학 기술로 얼마나 대단한 걸 끌어낼 수 있을까 싶었다.

확실히 장비는 한참 구식 티가 났다. 일일이 화학약품을 사용해 플래시를 터뜨려야 하는 구식 카메라부터 요즘 사용하는 디카에 비할 바가 아니니까.

하지만, 시대가 그러니 장비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사건에 접근하는 방법은 미국 드라마 CSI를 연상시킬 만큼 과학적이고 체계적이었다. 현장 사진을 찍고 시체를 부검하고 지문을 채취하고 현장에 남아 있던 작은 흔적까지 모아 분석하고, 심지어 전문가를 불러 심리분석까지 한다.

처음에는 그냥 '아, 밀실살인...(김전일의 단골 메뉴지. -_-;)'이런 정도였는데, 뒤로 갈수록 서서히 밝혀지는 인물들간의 관계와 냉철하게 사건에 접근하는 수사관의 모습이 교차하며 긴장감을 더했다.

아무래도 추리 소설이다 보니 사소한 내용도 천기누설이 될 수 있어서 여기에 자세한 걸 적기는 그렇지만, 설사 범인을 미리 알고 결말을 예측한다고 해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다.

앞으로 노블우드클럽에서 존 딕슨 카의 작품들이 계속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다음 책도 기대.

 

기억에 남는 대사를 하나 꼽으라면 이거.

"박사는 소중하니까." - 110쪽 15줄

원서에는 뭐라고 나오는지 심히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곱 번째 달의 무르무르 Nobless Club 13
탁목조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설정부터가 무척 흥미롭다. 프롤로그를 지나고 첫 장(chapter)을 넘어갈 때쯤, 머릿속에는 이미 하나의 행성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어둠속에 묻힌 작은 달위에 하나씩 생명이 꿈틀거린다.

책을 읽어가면서 문득 아이작 아시모프의 <전설의 밤(Nightfall)>이 떠올랐다. 태양이 여섯개나 되는 그 행성에는 낮이 계속된다. 그곳에 사는 인간들에게 밤은 말 그대로 ‘전설’이다. 이와 반대로 가이아의 일곱번째 달은 항상 어둠에 덮여 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행성의 그림자에 가려져 이곳에 사는 인간들은 태양을 직접 볼 수 없다.

<전설의 밤>에서는 2천년에 한번 일식이 일어나 어둠이 대지를 덮는데 반해 무르무르의 달은 시작도 끝도 없이 일식 상태가 계속되는 셈이다. 그들은 별을 모르고 무르무르는 태양을 모른다. 그나마 주기적으로 찾아 오는 ‘전설의 밤’과 달리, 이미 행성의 그림자에 갇힌 일곱번째 달은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구미가 당기는 흥미로운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이 이야기는 무르무르족 스포러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다루며 마치 한 영웅의 일대기처럼 보인다. 남다른 출생 배경속에 영웅이 태어나고 자라고 여러 모험을 겪으며 성장해 마침내 운명과 마주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일곱번째 달 그 자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 세계는 치밀하고 유기적으로 구축되어 있다. 수십종에 이르는 인간형 종족, 다양한 식물과 동물, 심지어 사후세계라고 할 수 있는 영혼까지도 작가가 창조한 세계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전설의 밤>에서 인간들이 천문 현상을 ‘전설’로 취급하는 것처럼, 일곱번째 달의 각 종족들 사이에 전해져오는 온갖 전설들도 결국은 자연 현상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전설 뒤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것은 마르지 않는 호기심과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스포러 같은 인간이리라.

저주네 유배네 하지만, 나는 이 달이 오히려 축복받은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토록 다양한 생명이 온땅에 퍼져 살아가는 그것을 과연 저주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일곱번째 달이 키운 위대한 탐험가들은 이제 대지를 박차고 신세계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달 전체를 덮는 결계란 것도 안에 있는 것을 가둔다고 볼 수도 있지만, 보호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밖은 물도 공기도 생명도 없는 진공의 우주 공간이니 말이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 대지를 벗어나려고, 결계밖으로 나가려고 몸부림친다. 끊임없이 또다른 세계를 꿈꾸고 우주를 동경하는 우리 지구인들 처럼.

키메리에스가 몸을 숨겨도 스포러는 그의 존재를 알아 차리는 것 처럼 일곱번째 달이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고 해도 밖에서 그 존재를 인지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 가이아가 빛의 고리 모양으로 보이고 낮과 밤을 구분하는 것으로 봐서 태양을 직접 보지는 못 해도 약하게 나마 간접적으로 빛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혹은, 다른 여섯 개의 달과 가이아의 궤도를 통해 또다른 천체의 존재를 유추할 수도 있다.

그림자 뒤에 가려진 진실을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창한 힘이나 화려한 기술이 아니다. 돌아서서 어둠속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편견이나 두려움 없이 있는 그대로.

*‘무르무르(Murmur)’라는 이름이 낯설다는 독자들이 간혹 보이더라지. 무르무르는 마족의 일종으로 죽은 영혼을 소환해 부리는 능력이 있다. <판타지의 마족들>(들녘) 참고. 다른 종족들도 작가가 완전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라기 보다 기존의 전설 등을 어느 정도 참고한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